복잡하게 바뀐 노인의 몸, 질병만 봐서는 치료 어렵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2-05-15 07:00:00 수정 2022-05-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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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의료, 노쇠의 악순환 끊어내는 일부터
의료부터 복지까지 중재 나서는 연령친화 의료 시스템
의사 약사 간호사에 의료사회복지사까지 협업
초고령사회 맞이하는 의료현장의 움직임


4월16일자 ‘100세카페’에 실린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인터뷰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이 각별했다. 인터뷰 계기는 그가 최근 낸 저서 ‘지속가능한 나이듦(두리반)’이었지만, 다중질환에 시달리는 노인일수록 환자 위주의 종합적인 진료가 필요하다는 노년의학의 취지에 적잖은 응원 댓글이 달렸다. 정교수로부터는 기사를 보고 노년내과를 찾아와 약의 처방연쇄에서 벗어난 환자분이 여럿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노년의학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번 인터뷰에서 소화하지 못했던 의료현장의 움직임을 서울아산병원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다음 기회에는 노인의 약에 얽힌 문제도 다뤄보고자 한다.


노화가 축적돼 노쇠한 노인의 몸은 매우 복잡하게 변한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한국. 급증하는 고령 환자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진지한 준비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DB


● 폐렴 생겼는데 섬망이…노년의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권영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병원 내 유일한 ‘노년전담간호사’다. 매일 새로 입원하는 65세 이상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점검한 뒤 노쇠와 질환이 겹친 환자를 찾아가 적절한 지원프로그램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1년 전 병원 측이 시니어 환자관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권영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이 병원 유일한 ‘노년전담간호사’다. 노년의 입원환자들을 찾아 적절한 지원프로그램과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입원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점검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권 간호사.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그는 노년 환자의 임상적 특성을 ‘비전형성’이라고 말한다.

“이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엉뚱한 데서 증세가 나타납니다. 예컨대 뇌경색으로 입원한 80대 환자가 식사량이 줄고 섬망(갑자기 의식과 주의력이 흐려지고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 증세를 보이는데, 원인을 추적해보면 폐렴이 와 있는 식입니다. 폐에 염증이 생겼지만 열이 나거나 호흡에 문제가 생기는 대신 축 처지고 섬망이 나타난 거죠. 다행히 환자가 입원중이라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보호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이 환자는 뇌경색을 앓은 뒤 안면이 마비되고 음식물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연하장애가 왔다. 연하보조식을 먹었지만 음식물이 조금씩 폐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을 일으킨 것. 노인환자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노인의 몸은 아주 복잡하게 변합니다. 노쇠가 쌓인 위에 더 큰 스트레스가 오면 가장 취약한 곳에서 터집니다. 댐에 물이 한방울씩 차오르다가 일정 수위를 넘기면 넘쳐흐르는 것과 비슷하죠. 예컨대 같은 폐렴이 생겼다 해도 평소 근력이 약했던 노인은 넘어져 낙상을 당하고 인지기능이 약했던 노인에게는 섬망이 옵니다. 비뇨기계가 안 좋았던 노인에겐 실금(失禁)이 오지요. 노년의학 의사들은 의료기록과 현재 환자의 모습, 말, 보호자 증언 등 데이터를 조각조각 모아 종합판단을 해야 합니다.” 정희원 교수의 말이다.

● 각 과 뺑뺑이 돌던 환자, “내 말 들어주는 의사가 없었다”

노년내과 외래 환자들의 케이스만 살펴봐도 종합판단이 도외시된 노인 진료가 얼마나 위험한지 금새 드러난다. 휠체어에 의지해 찾아온 80대 여성환자 A씨는 1년 반 동안 체중이 16kg나 빠져 40kg이 됐다. 항우울제를 복용한 지도 반년이 돼 간다. 그의 처방이력을 약물조화클리닉 이미리내 약사가 면밀하게 조사했다. 정교수가 이런 기록들과 A씨 진찰을 통해 내린 진단은 이렇다.

평소 먹는 고혈압약이 부종과 변비를 불렀다. 여기 더해 골다공증에 대처하기 위해 먹은 칼슘약도 변비를 일으켰다. 메스껍고 못 먹고 체중 빠지고…. 이때 내과에서 준 소화제에는 항콜린성 성분이 있었다. 이 성분은 온몸의 민감도를 낮추다보니 노인들을 처지게 만든다. 우울증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체중증가 효과가 있는 우울증 약을 처방해줬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견딜 수가 없었다. 약을 못 먹겠다고 의사에게 호소하자 연배가 있는 이 의사는 “환자가 약을 먹어야지 무슨 소리냐”고 꾸짖으며 계속 그 약을 처방했다. 심지어 다른 약도 추가했다. A씨는 이 모든 약을 먹고 돌덩이같은 변을 보며 점점 더 우울해졌고, 활동감소와 식욕저하의 악순환 속에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정 교수는 “환자의 처방전과 병력을 살펴본다면 어떤 의사라도 약을 바꿔보고 변비를 해결해줄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환자가 그간 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본인의 병력에 대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의사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저마다 ‘3분 진료’에 쫓기는 의사들이 다른 병원 다른 과의 처방내용이나 병력을 살펴볼 여력은 전혀 없었을 테니까요.”


정희원 교수는 병원 내에 시니어위원회를 만들고 약사 간호사 의료사회복지사 등과 협력하며 병원내에 연령친화적 의료시스템을 갖추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노년내과 간판을 배경으로 선 정 교수.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연령친화적 의료시스템 만들기


서울아산병원의 환자 중 65세 이상이 40%를 차지한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약사, 간호사, 의료사회복지사가 협력하는 시니어환자위원회를 중심으로 연령친화의료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모색이 한창이다. 그 시범사업이 권 간호사가 하고 있는 일이다. 고령 환자가 입원에서 퇴원까지 순조롭게 치료할 수 있도록, 환자를 전체로 파악하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먼저 차트를 본 뒤 직접 환자를 찾아가 신체적인 노쇠 정도를 파악하고 복용약물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봅니다. 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지, 퇴원 뒤 돌봄 여부, 치료비용 문제까지도 종합적으로 물어봅니다.”(권 간호사)

이때 사용하는 것이 ‘4M’ 개념이다(표 참조). △상황 관리(What Matters) △약제 관리(Medication) △정신 관리(Mentation) △거동 유지(Mobility)의 4M의 영역을 두루 물어보고 파악한다. 질환을 살펴보고 약을 관리하고 인지와 우울 등 정신적인 부분을 해결하며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미국에서 개발한 연령친화의료시스템 내용을 노년내과에서 번안해 한국의료시스템에 맞게 디자인했다.

약물조화클리닉도 같은 맥락에서 운영된다. 다중질환을 가진 노인환자들은 노년내과의 표현대로라면 여러 약물로 ‘떡이 져’ 있다. 증상에 따라 대응하며 다양한 전문과를 돌다보면 처방연쇄가 일어나 증상의 무한반복이 벌어지게 된다. 이 연쇄의 악순환을 끊고 약을 걷어내는 일을 맡는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노쇠 정도에 따라 치료법 달리 적용

지난해 가을부터는 환자의 노쇠 정도를 점수로 객관화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임상노쇠척도(CFS)는 1-9점까지 나뉘는데(표 참조), 서 있던 사람이 점점 침대로 다가가는 과정을 점수화한 것과 비슷하다.

CFS 척도에 따라 치료방법이 확연히 달라진다. 가령 같은 77세 환자라 해도 CFS 7점인 환자와 3점인 환자는 딴판으로 다르다. 7점은 휠체어에 의지해 간신히 온 환자인데 이송부터 시작해 기저귀와 간병인이 필요하고 밤에 섬망을 일으킬 수 있고 욕창이 생길 가능성에 대비해 체위변경도 해줘야 한다. 약을 조심해서 써야 하고 대변을 파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3점은 어느 정도 젊은 성인에 준한 치료를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임상에서는 ‘경미한 노쇠’인 CFS 5점 이상 환자는 작은 실수만 있어도 순식간에 6점 이상으로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한다.

“노쇠는 노화의 축적된 결과입니다. 노쇠의 원인과 결과가 상호작용하며 악순환 사이클에 들어섭니다. 노인환자의 치료는 이 악순환을 끊어내고 하나씩 선순환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과정이죠. 궁극적으로는 4M, 즉 질환과 약, 정신상태, 움직임을 모두 선순환으로 되돌려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몸이 안 좋으니 식욕 떨어지고 우울해지는데, 우울하고 잘 안 먹으면 몸은 더 안 좋아지죠. 밥을 못 먹는 원인도 여러 가지입니다. 소화기관에 질병이 있을 수도 있고 약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겼을 수도 있고, 심지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요. 전체적으로 봐야 하고 해결도 전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노인의학적 중재’가 필요한 이유죠.”

● 급성기 퇴원환자, 요양병원 아닌 집으로

시니어환자위원회가 지향하는 것은 노쇠가 진행된 어르신들이 급성기 병원을 이용한 뒤에도 기능을 잃지 않고 퇴원해 살던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관절 골절 환자에 대해 과거 병원에서는 뼈를 붙이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했고, 이후 환자 대부분이 요양병원으로 전원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돌봄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지만요. 집에서도 자활할 수 있지만 케어해줄 환경이 안 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기저질환이라도 있으면 더욱 엄두를 못 내죠. 하지만 이렇게 요양병원으로 보내진 노인 중 완쾌해 집으로 돌아가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노년에 낙상사고를 당하면 수술 뒤에도 오랜 재활기간을 거쳐야 한다. 사진은 어느 요양병원에서의 재활훈련. 동아일보 DB


그래서 시니어위원회는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시범케이스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1월 고관절 골절과 탈수 증세로 입원했던 80대 여성환자를 본인과 딸의 희망에 따라 집으로 돌려보냈다. 콧줄과 소변줄이 필요한 환자였지만 딸에게 간단한 가정간호법을 가르쳤고 데이케어센터 간호사와 연결해줘 수시로 상의할 수 있게 했다. 방문간호사가 정기 방문하고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해 낮시간에는 딸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요즘 환자는 많이 호전돼 의자에 앉아 지내며 인지기능도 좋아져 입원 전의 ‘귀여운 할머니’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면 기능이 떨어진 분들도 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요. 연령친화 의료시스템은 궁극적으로는 병원 의료뿐 아니라 약, 커뮤니티 케어 등을 묶어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영연방 국가들에서 이런 개념의 노인의학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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