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질 진단하려면? 호흡소리-배 움직임으로 숙면 상태 파악

김하경 기자

입력 2022-05-11 03:00 수정 2022-05-1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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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 Change]〈12〉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 이동헌 대표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가 서울 강남구 에이슬립 사무실에서 호흡 소리를 측정할 수 있는 앱을 켠 스마트폰과 신체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와이파이 기기를 손에 들고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하루 24시간 중 깨어 있는 시간에 대한 솔루션은 많은데, 왜 수면에 대한 솔루션은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을까.’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28)는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 CES에 방문했다가 호기심이 생겼다.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등이 주목받는 가운데서도 방문객들의 소리 소문 없는 발걸음이 슬립테크(sleeptech·수면 기술) 기업 부스로 이어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의 창업 실패를 겪은 이 대표의 뇌리에는 ‘세 번째 창업은 슬립테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부스를 마련한 슬립테크 회사 40여 곳을 만나 시장 상황을 파악했다.
○ “수면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꿈”
에이슬립은 이 대표가 KAIST 석사 시절 연구실 동료 및 선배 6명과 함께 2020년 7월 설립한 슬립테크 스타트업이다. 슬립테크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수면 상태를 분석해 숙면을 돕는 기술이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세계 슬립테크 기기 시장이 2027년 406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슬립테크는 수면 습관을 추적·진단하는 기술과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방법 등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수면 추적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은 주로 스마트 시계 등 웨어러블 기기에 초점을 맞춰 왔다. 수면의 질과 연관된 심박수나 호흡수, 뒤척임 등은 몸에 부착하는 센서를 통해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을 잘 때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면 이물감이 느껴져 오히려 평상시보다 수면의 질을 나쁘게 할 수 있다. 에이슬립은 기기를 착용하거나 부착하지 않는 ‘비접촉식’ 방식을 모색했다.

수면과 연관되면서도 센서 부착 없이 측정할 수 있는 생체신호를 찾아야 했다. 에이슬립이 ‘호흡 소리와 흉부 및 복부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수면 상태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우게 된 배경이다. 호흡 소리는 스마트폰의 마이크로 녹음하고, 흉부와 복부의 움직임은 와이파이 신호 차이를 통해 파악한 뒤 AI가 분석해 수면의 질을 측정하도록 했다.

3개월 만에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확도를 입증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 대표는 무작정 병원으로 찾아갔다. 진료를 받으러 온 척하다가 의사에게 기술을 선보이기도 하고, e메일도 보냈다. 다방면으로 문을 두드린 끝에 국내 수면학계 최고 권위자인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었다.
○ “‘꿀잠’을 시작으로 라이프스타일을 혁신할 것”
사실 이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창업에 도전했고 에이슬립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첫 번째는 22세 때 창업한 원격 법률자문 서비스 플랫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뒤 임금을 떼이고도 변호사 수임료가 부담돼 고통받는 지인들을 보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의 원격자문은 변호사의 신성한 행위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일부 로펌의 반발을 샀다. 두 번째는 AI로 배터리 폭발을 감지하는 사업이었다. 학계의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배터리 제조회사들은 그의 기술을 반기지 않았다. 배터리 폭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해도 배터리의 결함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실패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는 첫 번째 실패에서는 업계 종사자들의 입장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실패에서는 시장이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에이슬립은 창업 1년 9개월 만인 지난달 1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해 기업가치가 900억 원으로 올라섰다. 국내 수면헬스케어 분야에서는 1위다. 에이슬립은 다음 달 수면 분석 앱을 출시하고, 하반기부터는 아마존의 AI 스피커를 비롯해 디스플레이와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도 협력한다. 이 대표는 “잠자는 시간은 깨어 있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꿀잠’을 시작으로 전체 라이프스타일을 혁신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창업 팀 구성에 대한 생각: 성향이 100% 맞는 사람을 찾다가 시작조차 못 할 수 있다. 70% 정도만 맞으면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맞춰나가 볼 만하다.

#실패에 대한 생각: 최선을 다했으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온전히 실패는 아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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