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열린 연등회서 대면시대의 기쁨 빛났다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2-05-06 03:00 수정 2022-05-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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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부처 탄생 축하하는 불상행렬… 1500년 전통의 동아시아 축제
코로나로 인해 전시로 대체했다가, 지난달 종로에서 환하게 빛 밝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와 우정국로 일대에서 진행된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행렬.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3년만에 재개된 행렬을 사진으로 남기며 반겼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가야산 해인사의 진입로 입구 언덕에 룸비니 동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아기부처님을 둥근 돌기둥 위에 높다랗게 모신 구역이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미흡하지만 그래도 산속인 걸 감안하면 꽤 넓은 마당이다. 들어가는 입구 길 양편에는 1929년 임환경(林幻鏡·1887∼1983·해인사 주지 역임·서예가) 스님의 글씨를 새기면서 표면처리를 의도적으로 거칠게 한 사각형 석주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공식 명칭은 ‘사자문 석주’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인도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無憂樹) 나무를 대신하고 있다. 마야부인께서 몸을 풀고자 친정에 가는 길에 잠시 쉬다가 무우수 나무의 꽃가지를 잡는 순간 부처님이 태어났다고 한다.

학인(學人) 시절 부처님오신날 무렵에는 인근 중고교 동아리팀과 함께 흰색 솜을 붙인 대형 코끼리(흰코끼리는 마야부인의 태몽)를 만들었다. 갖가지 깃발을 필두로 며칠 동안 수고롭게 만든 장엄물과 연등을 들고서 행렬을 지어 룸비니 동산으로 내려와 아기부처님을 가마(輦)에 모시고 다시 해인사로 올라갔던 그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가마를 ‘시련(侍輦)’이라고 불렀다. 행사장에 탄신불상을 모시면 비로소 관불(灌佛·목욕의식)의식이 시작됐다.

불상행렬과 관불의식을 했다는 것은 4, 5세기 남북조(南北朝)시대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15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동아시아 축제인 셈이다. 불심천자(佛心天子)로 불리는 양무제(梁 武帝·464∼549)가 달마대사를 만났고 중앙아시아 사막의 오아시스 국가인 쿠차(龜玆) 출신의 유명한 번역가 구마라집(鳩摩羅什·344∼413)이 중국으로 왔을 무렵이다. 진(晉)나라 이후 수(隨)나라에 이르는 중간시대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명 관광지인 운강석굴 용문석굴이 당시의 유적이다.

탄신불상과 관불의식에는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많은 상징들이 숨어 있다. 탄신불은 왼손이 하늘,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땅의 세계는 물론이고 하늘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존재를 감싸고 구원하는 인천(人天)의 스승임을 온 세상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지위가 하늘같이 높은 사람이거나 지위가 땅바닥같이 낮은 사람일지라도 모두가 똑같이 귀한 사람이니 평등하게 대하라는 무언의 의지를 표시한 것이기도 하다. 즉, 요새말로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홉 마리의 용이 날아와서 물을 뿜으면서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용은 왕이다. 구룡(九龍)은 아홉 국가의 왕을 상징한다. 아홉은 단순한 9가 아니라 ‘모두’라는 의미다. 법왕(法王·종교 지도자)의 탄생을 온 세상 모두가 축하했다는 뜻이다. 법왕과 국왕은 영토나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닌지라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욕물은 더운물과 찬물의 조화가 필요하다. 목욕물의 적절한 온도 조절처럼 왕 역시 강경론과 온건론의 적절한 조정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또 어떤 일이건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인 중도(中道)의 묘미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왕으로서 자격미달이라 하겠다.

관불 행사도 자기수행으로 환원할 수 있을 때 참다운 의미를 가진다. 약산유엄(藥山惟儼·745∼823) 선사와 준(遵)이라는 이름의 포납(布納·옷을 기워 입은 스님)이 관불을 하면서 ‘육신뿐만 아니라 법신(法身)도 씻을 수 있느냐?’는 선문답이 오갔다. 눈에 보이는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함께 씻어야 제대로 관불을 하는 것이라는 당나라 선사들의 대화도 이 무렵이면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3년 만에 서울 종로거리와 우정국로 일대에서 연등회를 펼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천년을 이어온 연등회조차 두 번에 걸쳐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에 장엄등 전시 형태로 대신하게 했다. 서운함을 달래려고 해가 지면 뜻 맞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등 구경을 위해 나들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비로소 3년 만에 비대면시대에서 대면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보니 202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지정을 받은 후 첫 대규모 야외행사인 셈이다. 대면시대가 도래했음을 사방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기쁨을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환호를 맘껏 지를 수도 없고 마스크까지 버릴 수는 없었지만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원철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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