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폐페트병 재활용 원단 제공… 폐업 위기 스타트업 기사회생

신동진 기자

입력 2022-04-29 03:00 수정 2022-04-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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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2부 기업, 함께하는 성장으로〈5〉친환경 상생 나선 롯데


계효석 LAR 대표가 22일 서울 성동구 LAR 매장에서 친환경 운동화와 그 원료로 쓰인 폐페트병을 들고 웃고 있다(위쪽 사진). ‘신동빈 운동화’로 화제를 모아 완판되며 한동안 품절됐던 이 제품은 다음 달부터 6개월 만에 다시 판매된다. 롯데뮤지엄 주관으로 김정기 작가와 LAR가 협업해 제작한 친환경 파우치(아래쪽 사진).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롯데케미칼 제공

《“롯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단으로 친환경 운동화를 만드는 스타트업인 엘에이알(LAR). 지난해까지만 해도 폐업 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한 달에 고작 100∼200켤레 팔리던 운동화는 지난해 10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LAR 운동화를 신고 찍은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하루 만에 1000켤레가 동날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덕분에 지난해 최고 매출을 올리게 됐다. LAR의 비상을 이끈 건 롯데의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인 ‘루프(LOOP·고리)’다. 롯데케미칼은 2020년 화학업계 최초로 국산 폐페트병 재활용 원료로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제품 파트너로 LAR을 점찍었다.》

22일 서울 성동구 LAR 사무실에서 만난 계효석 LAR 대표(33)는 “인지도 낮은 소셜벤처가 대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큰 기회인데, 물심양면의 지원까지 받으며 기업 가치가 300배 이상 성장했다”며 “재활용 원단 제공부터 연구개발(R&D), 각종 협업 기회와 판로까지 ‘자회사’ 수준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 폐업 직전 벤처 살린 ‘루프’ 프로젝트
2011년 군 제대 후 미국 패션스쿨 FIMD에서 공부한 계 대표는 현지 패션업체에서 일하면서 엄청난 양의 재고가 소각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친환경 패션 사업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평소 선교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많이 접했던 그는 사업을 통해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2017년 창업한 LAR은 ‘Look ARound’의 앞글자로, 주변 이웃과 지구를 둘러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업 초기 버려지는 자투리 가죽으로 친환경 운동화를 만들고 켤레당 5000원씩 기부했다. 하지만 수익은 악화됐다. 2019년 착화감 향상을 위해 남은 자금을 전부 아웃솔(밑창) 개발에 쏟아부었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2020년부터는 사무실 운영도 빠듯한 보릿고개가 시작됐다.

롯데와의 만남은 ‘가뭄에 단비’였다. 때마침 프로젝트 루프를 준비하던 롯데는 LAR 투자사인 임팩트스퀘어를 통해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신발 제작을 제의했다. 한국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98.2kg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였지만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0%대에 그쳐 일본, 대만 등에서 폐페트병 원단을 수입하는 상황이었다.

롯데케미칼은 금호섬유공업,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함께 연합군을 결성했다. 롯데케미칼이 자원 회수업체인 수퍼빈을 통해 폐페트병을 수거하면 금호섬유공업이 이를 분쇄해 원료로 만들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이렇게 만들어진 원료로 원사·원단을 제작했다. LAR은 2020년 말부터 이들이 만든 국내산 폐페트병 재활용 원단을 공짜로 제공받았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단의 국산화는 LAR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유럽을 순방할 때 오스트리아 대통령 부인에게 LAR 운동화를 선물했다. 국빈 선물에 이어 ‘회장님 스니커즈’로 소개되면서 LAR은 이제 없어서 못 파는 신발이 됐다.

롯데는 ‘라이브 드로잉’ 대가 김정기 작가와 LAR의 협업을 주선하며 파우치, 카드지갑 등으로 제품군을 늘렸다. 롯데케미칼 ESG펀드에서 지원받은 R&D 비용으로 대나무, 인진쑥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든 특허 인솔(깔창)과 한국인 발에 더 편한 족형(라스트)도 개발했다. 롯데벤처스는 지난해 LAR의 초기 단계(프리A) 투자에도 참여했다.

롯데의 전폭적인 지원에 LAR은 현재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일상화로 소개되면서 미국 일본 대만 등 현지 편집숍과 바이어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계 대표는 “2024년 해외 진출을 목표로 R&D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며 “국내 재활용 문화와 설비가 확산돼 세계에 ‘K친환경슈즈’를 판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 ESG 선순환에 계열사 시너지 집결
롯데는 프로젝트 루프를 필두로 계열사 역량을 총집결해 자원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년간 LAR 등과의 시범사업 성과를 토대로 최근 루프 소셜벤처(1기) 5곳을 선정했다. 재활용 소재 범위를 기존 페트(PET) 외에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등 플라스틱 전반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그룹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식품 패키징, 의류, 신발 등에도 롯데케미칼 기술을 바탕으로 재활용 페트 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롯데마트와 세븐일레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 50곳에 설치된 폐페트병 회수 장비를 올해 인천 지역 학교 20곳 등에 더 추가할 예정이다. 올해 리뉴얼해서 문을 연 롯데인재개발원 경기 오산캠퍼스에는 가전제품 등을 수거해 만든 폐플라스틱 재활용 소재 의자가 있다. 또 롯데자이언츠 선수단과 엔제리너스 직원들에게 리사이클링 소재로 만든 유니폼을 지급했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는 “폐플라스틱 이슈는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대기업과 스타트업, 나아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및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견고한 고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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