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을 가장한 정서적 폭력 ‘가스라이팅’ [여기, 이슈!]

홍은심 기자

입력 2022-04-27 03:00 수정 2022-04-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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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코리아

계곡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31)가 남편 윤모 씨(39)에 대한 가스라이팅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은해는 2019년 5월, 경기 용인시 낚시터에서 윤 씨를 빠뜨려 숨지게 하려 했던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에도 윤 씨는 “은해야, 너가 나 밀었잖아”라고 했으나 이은해가 “내가 오빠를 왜 밀어? 술 취했다”는 식으로 얘기하자, 자신이 취했다며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상대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영화 ‘가스등’에서 아내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이 가스등을 어둡게 한 뒤, 아내가 어둡다고 할 때마다 “당신이 잘못 본 거다” “왜 엉뚱한 소릴 하느냐”며 핀잔을 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가스라이팅은 정신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친구·연인·가족 등 친밀한 관계는 물론 학교나 직장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특히 가해자는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기 때문에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찬승 마음드림 원장은 “가스라이팅 학대 과정은 처음에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점차 상대를 고립시키면서 이뤄진다”며 “피해자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가해자 생각에 동조하며 의지하게 되면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은해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머리채를 잡히는 등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윤 씨가 고통을 호소하자 이은해는 “내가 있잖아, 술 먹으면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막 대하거나 막 괴롭히거나 그래” “오빠를 무시하고 막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라 그냥 그래”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씨와 찍은 사진에 이은해는 ‘넌 벗어날 수 없어’란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윤 씨는 사망 5개월 전인 2019년 1월엔 조현수에게 문자를 보내 “은해에게 쓰레기란 말 안 듣고 싶다. 존중 받고 싶다” “무시당하고 막말을 듣는 게 힘들다”고까지 밝혔으나, 결국 이은해의 심리적 조종과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나르시시즘(자기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자기애적 성격이 강한 사람은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수단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 원장은 “자기애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기 위한 방어 행위”라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지배력을 발휘했을 때 커다란 정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멈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불안에 취약하다”며 “소외되고 버려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클수록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가스라이팅을 오랜 기간 당하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 정 원장은 “정서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만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라며 “정서적 학대·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가스라이팅 판단법
1. 왠지 몰라도 결국 항상 상대방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2. 상대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이게 네가 무시당하는 이유야” “비난받아도 참아야지” “나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 너 혼자 상상한 것이겠지” 등의 말을 들은 적 있다.

3.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변명한다.

4. 상대방을 만나기 전 잘못한 일이 없는지 자주 변명한다.

5. 상대가 윽박지를까 봐 거짓말을 하게 된다.

6. 상대를 알기 전보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삶을 즐기지 못하게 됐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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