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 전통, 현대와 완벽한 혼합 꿈꿔”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4-26 03:00 수정 2022-04-26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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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출-의상 맡은 정구호 디자이너
수십명 무용수 같은 동작 움직여… 전통무용이지만 현대적 감성
3막서 새로운 해석 선보여… 한국무용은 상상력의 바탕
춤 명인들 한분 한분 몸짓… 기록 남기는 프로젝트 하고파


정구호가 디자인한 ‘일무’의 무대의상. 그는 “예전엔 선명한 색상을 사용했는데 이번엔 관객들이 무용수의 동작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채도를 낮췄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10년 전, 보수적이고 문이 좁기로 유명한 한국무용계에 한 패션디자이너가 무대 연출가로 발을 디뎠다. 원로 무용수를 중심으로 “패션 하던 사람이 무용 무대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세련된 색감의 무대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한국무용의 격을 높였고, 공연은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매진 행렬을 이뤘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KUHO(구호)’로 이름을 알린 뒤 2012년 국립무용단 ‘단’을 시작으로 ‘묵향’ ‘향연’ ‘춘상’ ‘산조’ 등 공연을 연달아 성공시킨 패션디자이너 정구호(60) 이야기다.

그가 다음 달 19∼22일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일무(佾舞)’를 선보인다. 이전처럼 무대 연출뿐 아니라 의상, 조명, 소품 디자인까지 맡았다. 종묘제례악에 포함된 춤 일무가 정구호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 바뀔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22일 그를 만났다.

“수십 명의 무용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춤인 일무만큼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은 없어요. 움직임이 크지 않은 동작을 선보이려면 숨고르기와 균형 잡기를 통한 절제가 요구되죠. 전 세계적으로도 그런 형태의 군무는 거의 없어요.”

혹자에게 일무는 그저 오래된 궁중 의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일무에서 전위성을 발견해냈다. 일무에 대한 그의 재해석은 3막에서 두드러진다. 전통의 틀을 크게 흔들지 않는 1, 2막과 달리 ‘신일무’라 명명한 3막에선 음악과 안무, 의상, 무대 연출까지 모두 새롭다.

“3막은 지금 시점에서 일무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자는 접근에서 출발했어요. 제가 추구하는 ‘신(新)전통’이죠. 처음 한국무용을 할 때 목표는 장르 구분 없이 전통과 현대가 완벽하게 혼합된 장르를 만들자는 거였는데….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정구호
이번 작품도 전작들처럼 화선지를 은유하는 흰색 무대를 사용한다. 일무에 무용수로 등장하는 조선의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의 의상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아닌 자주색과 청록색으로 채도를 낮췄다. 무용수의 몸짓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단출한 무대만 선보이진 않는다. 2막 춘앵무(春鶯舞)에선 무대 전환도 시도한다.

“화문석 돗자리 위에서만 추는 춘앵무는 ‘봄날에 날아든 꾀꼬리의 몸짓’이라는 상징 자체가 너무 아름답잖아요. 무대적 상상력을 가미해 춘앵무가 갖는 의미를 현대적으로 보여줄 거예요.”

한국무용이야말로 예술적 상상력을 풀어낼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몸의 실루엣을 대놓고 드러내는 옷들을 보세요. 상상력을 없애버리니 재미없잖아요.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해내는 서양무용과 달리 한국무용은 내향적이에요. 에너지를 안으로 누름으로써 미세한 동작의 차이를 만들어내거든요. 비우고 숨겨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한국무용은 제게 최적화된 재료입니다.”

한국무용계에 입성한 지 10년, 그는 또 다른 목표를 꿈꾼다.

“한국 춤의 명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록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제대로 된 자료가 없는 게 늘 안타까웠거든요.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기회만 있다면 명인들 한 분 한 분의 몸짓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한국무용계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종적인 기여가 되었으면 합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8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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