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건설업계의 호소 “정부 주도 개편으로 큰 혼란… 생존권도 위협”

조선희 기자

입력 2022-04-26 03:00 수정 2022-04-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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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한전문건설협회 기자회견 현장.

전문건설업계가 정부 주도의 건설산업 생산체계 개편으로 큰 혼란과 함께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정부에 전달한 호소문이다. 이달 12일 전문건설업계를 대표해 모인 ㈔대한전문건설협회 소속 업계 종사자 299명은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전문건설 생존권 방치 국토부 규탄대회’를 열고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전문건설업계의 요구사항은 명확하다. 전문·설비업계의 건설업역 복구 등 정부가 추진하는 건설업 생산체계 개편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업역 폐지와 종합·전문 건설업종 간 상호시장 개방이 소규모 전문건설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상호시장 개방으로 전문건설업 존폐 우려
세종시국토부앞에서개최한‘전문건설생존권방치국토교통부규탄대회’의행사장현장.
지난해부터 공공 발주공사에 있어서 종합·전문 건설업종 간 상호시장 개방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문업체의 수주 물량이 대폭 감소했다.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업역 구분이 사라지면서 전문건설업계가 설 공간이 사라져 존폐를 우려할 정도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종합·전문 건설업종 간 상호시장 개방의 결과가 생산성 향상, 공정 경쟁 촉진이라는 정책 취지가 무색할 만큼 종합건설업체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전문건설업계의 불만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의 노석순 회장(직무대행)은 “종합·전문 간 상호시장 개방은 당초 취지와 달리 종합업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에 반해 전문의 종합공사 진출 시 해당 종합공사에 해당하는 전문 업종을 모두 등록하도록 하고 기술자와 자본금을 종합의 등록 기준에 맞추도록 하는 등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건설업계는 상호 시장 개방의 불합리성을 꾸준히 정부에 제기해 왔음에도 정부는 노사정 및 종합건설업계와의 합의사항이라는 이유로 경직된 태도로 일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제도 시행 불과 4일 전인 2020년 12월 28일 ‘건설공사 발주 세부기준’과 ‘종합·전문업종 간 상호시장 진출을 위한 건설공사실적 인정기준’을 졸속 발표하는 등 충분한 의견 수렴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상호 시장 개방으로 인해 전문건설업체들은 수주 물량이 대폭 감소했다. 또한 단순 수주 물량 변동뿐만 아니라 40년간 쌓아온 기술력, 경쟁력의 퇴보가 심각히 우려되는 수준까지 내몰렸다는 게 전문건설업계 입장이다. 정부가 마련한 ‘건설공사 발주 세부기준’은 종합공사에 전문건설사업자 참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상호 시장 개방을 의무화했지만 전문건설업계에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전문건설업계와 종합건설업계 격차 심각
피켓시위 현장.
전문건설업계는 상호 시장 개방 탓에 결과적으로 사실상 종합건설사업자가 모든 전문공사에 참여하게 돼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로 내몰렸다고 주장한다.

노 회장은 “전문건설업체는 대부분 1∼2개 업종만을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문건설업체이기 때문에 종합건설업 사업을 수주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공사를 시공해야 하는 종합업체가 소규모 전문공사 시장까지 잠식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소규모 전문건설업계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주장대로 현재 등록된 전문업체 5만214개사 중 91.1%(4만5701개사)가 1∼2개의 면허만 보유하고 있다. 면허를 1개만 보유한 전문업체도 70%(3만5126개사)에 달한다.

등록 기준에 있어서도 양측 차이가 크다. 전문건설업 등록 조건은 기술인력 2인 이상, 자본금 1억5000만 원인데 반해 종합공사업은 기술인력 5∼6인, 자본금 3억5000만∼5억 원 수준이다.
정부가 전문건설업계를 사지로 내몰아
대한전문건설협회 행진 현장.
전문건설업계 종사자들은 정부의 즉각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12일 시위 당시 기자회견에서 대한전문건설협회 핵심 관계자는 “전문건설업계는 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과 주거시설 등을 건설하면서 그동안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며 “그러나 정부는 건설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전문건설업계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랜 기간 전문건설업이 이룩해 온 사회적 공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참석한 전문건설업체 또한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으므로 잘못된 정책은 과감히 폐기함으로써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건설 산업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노 회장은 “정부가 혁신이라고 추진한 업역 규제 폐지와 상호 시장 개방이 건설 참여자 간 갈등만 조장하고, 실질적으로는 종합건설업계와 경쟁이 어려운 전문건설 사업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밝힌 종합·전문 건설업종 간 상호시장 개방의 문제점이다. 또한 “수천억원 대 규모 공사를 시공해야 하는 종합업체가 2억∼3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건설시장까지 진입해 공사를 수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 교란의 심각성을 우려하면서, 대형사는 비슷한 규모의 업체들과 어깨를 맞대고 기술 경쟁을 펼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손쉽게 소규모 시장까지 노리게 된 현재 상황에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건설현장 일선에서 직접시공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건설업이 붕괴되면 결국 안전사고, 공사품질 저하 등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건설산업 전반에 끼칠 악영향 차단 또한 업계가 거리로 나선 배경의 하나라고 언급했다.
요구사항 관철될 때까지 강력한 행동 이어갈 것
2월 국회 앞에서 개최한 ‘전문건설 생존권 보장 촉구대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건의방문에 이어 이날 집회까지 건설산업 생산체계 개편의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문건설업계는 공사금액 기준 30억 원 이상에만 상호 진출을 허용하는 개선안 등 업계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강력한 행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노 회장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던 대한민국 정부가 몇 줄 안 되는 법 규정으로 7만 전문건설사업자와 이들 가족의 꿈과 희망을 풍비박산 냈다”며 “다른 산업에서는 소규모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는데 국토부는 약자를 도와주지는 않고, 오히려 소규모 전문건설업을 말살하고 있다”며 “200만 전문건설 가족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생산체계 개편 정상화를 위한 전문건설업계의 거리투쟁과 관련해 국토부는 업계의 개선요구안 등을 고려해 보완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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