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위기 권투로 극복…스트레스 해소에도 최고”

김상훈기자

입력 2022-04-22 11:11 수정 2022-04-22 11:34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중년 세대에게도 권투는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운동이라며 추천했다. 서 교수가 체육관의 사각 링에서 스트레이트, 어퍼컷 등 그동안 배운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종종 있다. 불안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자꾸 나이는 먹는데 이룬 게 없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중년 이후에 나타나는 이런 증세를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Midlife Crisis)’라고 한다. ‘중년의 위기’라는 뜻이다. 의학 용어는 아니지만 중년 이후에 닥치는 심리적 위기감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50)도 3년 전에 이런 증세를 겪은 적이 있다. 환자는 진료했지만 타성에 젖어 연구나 논문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집에서도 멍하니 TV 드라마만 볼 때가 많았다. 이유 없이 지쳤고,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우울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서 교수에게 중년 위기 극복기를 들어봤다. 서 교수는 치매와 알츠하이머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현재 이 병원 치매융합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 “무기력 극복 위해 권투 시작”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중년 세대에게도 권투는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운동이라며 추천했다. 서 교수가 체육관의 사각 링에서 스트레이트, 어퍼컷 등 그동안 배운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서 교수의 아내 또한 의사다. 아내는 무기력해 보이는 그에게 운동을 권했다. 종목이 다소 특이했다. 바로 권투. 왜 하필 권투였을까.

부부는 ‘약간의 일탈’이 무기력 해소에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서 교수는 초등학교 때 딱 2개월 태권도를 한 것을 빼면 평생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다. 간혹 운동을 하더라도 걷기나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주로 했다. 그런 서 교수에게 권투는 ‘일탈’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접한 적이 없기에 도전하면 신선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마침 주변에 권투 체육관이 있었다. 서 교수와 아내, 10대 두 자녀까지 한꺼번에 회원으로 등록했다. 가족이 함께 하면 운동 효과도 높이고 중도 포기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때가 2019년 12월이었다. 매주 1, 2회 체육관에 가서 40분 정도 운동했다. 처음 10분 동안은 줄넘기를 했다. 이어 체육관 관장에게 권투 기본기를 10분 정도 배웠다. 나머지 20분 동안 샌드백을 쳤다.

운동을 시작해 보니 체력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깨달았다. 끊기지 않고 2분 동안 줄넘기하는 것도 어려웠다. 10분 동안 줄넘기를 끝내면 체력이 바닥났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요즘도 매주 2, 3회 권투장에서 50분 동안 운동한다. 그 어렵던 줄넘기에도 여유가 생겼다. 보통은 3분 줄넘기한 뒤 30초 쉬는 방식으로 3세트로 진행한다.

● “스트레스 해소에 권투가 최고”


서상원 교수는 권투를 하기 전 줄넘기로 몸을 푼다. 보통은 3분 줄을 넘고 3분 쉬면서 3세트로 운동한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사실 그동안 다른 가족은 모두 중도 포기했다. 유일하게 서 교수만 2년 넘게 꾸준히 권투를 하고 있다. 서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에 권투만큼 좋은 운동이 없었다”고 했다.

2020년 중반에는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많았다. 정부 연구과제를 준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럴 때면 권투장에 가 샌드백을 쳤다. 효과는 매우 컸다. 서 교수는 “아무 생각 없이 샌드백을 두들기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운동을 끝낸 후에는 꽉 막혔던 업무가 거짓말처럼 술술 풀렸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권투장에 갔다. 운동 시간도 40분에서 1시간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도 이런 경험을 했다. 서 교수는 지난해 4월부터 병원 내 바이오 벤처 창업을 준비하면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여러 차례 했다. 투자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막혔을 때 샌드백을 쳤다. 그러면 신통하게도 다음 날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게 아닌가.

이토록 권투를 즐기지만 스스로를 권투 초보자라 부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 체육관은 문을 닫았다. 이럴 때면 권투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권투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강도를 크게 높이지 않는다. 서 교수는 자신의 권투 스타일을 ‘슬로 복싱’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 동작을 취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두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여야 하는데, 힘이 들어 1분만 지나면 동작이 흐트러진다. 서 교수는 “좀 더 멋진 폼이 나오면 좋겠는데…”라며 웃었다.

● 아내와 매일 저녁 1시간씩 걷기


권투 외에도 즐기는 운동이 있다. 아내와 함께 야외를 걷는 것이다. 사실 전에도 실내 헬스클럽에서 가끔 걷기는 했다. 하지만 지속적이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권투를 시작할 무렵 걷기도 병행했다.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권투와 걷기를 동시에 시작한 것이다.

매일 오후 10시가 되면 아내와 집을 나섰다. 시속 4㎞의 속도로 1시간 동안 집 주변을 걷는다. 2년 가까이 하다 보니 부부만의 코스가 생겼다. 오르막길도 곳곳에 있어서 운동량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란다. 산책에 가까운 이 걷기를 하면서 아내와 일터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또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단다. 휴일에는 부부가 지하철을 타고 남산에 가서 또 걷는다.

권투와 걷기를 병행한 지 2년여. 서 교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단 체중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2년 새 83㎏에서 70㎏으로 크게 줄었다. 인바디 측정 결과도 달라졌다. 체지방량은 크게 줄었고, 반대로 근육량이 크게 늘어났다. 서 교수는 “권투와 걷기의 조합이 최고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이후 권투 도전 괜찮을까





서상원 교수는 샌드백을 칠 때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샌드백을 치는 모습.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50대 이후에 권투를 시작한다면 무리일까. 서상원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추천하는 편이다. 서 교수가 다니는 체육관에는 50대 이상의 회원이 적잖다. 심지어 70대 회원도 있다.

그는 의학적으로 권투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매일 7500보 이상 걸으면 치매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서 교수는 “근력 운동 또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많다”며 “격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권투도 좋다”고 했다.

다만 격한 만큼 관절 보호에 신경을 써야 한다. 샌드백을 치기 전에 하는 줄넘기는 체중 감량에 큰 효과가 있다. 하지만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샌드백을 치다 보면 어깨 관절에도 무리가 갈 수 있다. 따라서 운동 강도를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줄넘기를 할 때 충분히 쉬는 게 좋다. 어깨가 아프다면 샌드백을 치는 대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게 좋다.

머리에 펀치를 맞는 것은 피해야 한다. 서 교수는 “머리에 펀치를 자주 맞으면 치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타우 단백질’이 쌓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건강 증진이 목적이라면 굳이 스파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 교수도 스파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반드시 헤드기어를 착용해야 한다.

운동 강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50대 이후에 새로운 종목의 운동에 입문하면 신선한 느낌이 들어 ‘운동 과잉’이 될 우려가 있다. 특히 격하게 움직이는 권투 종목의 경우 운동할 때는 개운한 것 같지만 운동을 끝내고 나면 후유증이 심하게 올 수 있다. 심지어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서 교수 또한 “한창 재미가 붙을 때 샌드백을 오래 쳤더니 어깨에 무리가 가거나 꼭 탈이 나더라”고 했다. 서 교수는 “다른 운동과 병행하면서 너무 강하지 않은 강도로 권투를 지속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상쾌한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