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환자 위한 의료계 협업 부정하나[기고/이필수]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

입력 2022-04-21 03:00 수정 2022-04-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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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 놓고 엇갈리는 의료계 입장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료 행위의 법적 근거는 의료법에 기반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모든 보건의료 인력들이 이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일해 왔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최근 수년간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을 지키는 간호 돌봄 체계 마련을 위한 것이라며 의료법을 폐기하고 간호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간호법이 의료법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삐 돌아가는 보건의료 현장을 떠올려 보면 자명하게 나온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여러 직종의 인력들은 인간의 생명 보호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직종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적용되는 규율과 법령이 필요하다. 이는 상호 모순되지 않고, 통일적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현재 발의된 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을 벗어나 별도의 법률로 의료 현장을 규율하자는 것이다. 법률의 체계 정당성이 무너지고, 관련 법률들 간에 상치되고 모순되는 요소가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그 결과 보건의료 현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위법 사항까지 초래해 결국 업무 수행을 제한하거나 유기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커진다. 무엇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범(汎)보건의료계가 단독 간호법 제정을 우려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 대응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의료법이 보건의료 시스템과 보건의료인의 자격 면허를 규율하는 체계하에서는 간호사의 처우 개선만을 위해 간호법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직역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행정조직의 방만한 운영과 예산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간호법을 단독 입안하면 환자 진료의 질과 안전성이 높아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기존 의료법을 정비해 현재 간호협회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의 해결책을 충분히 도출할 수 있다. 이미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고 개정하는 방안도 있다. 보건정책심의위원회를 가동할 수 있으며 보건의료 인력 지원 전문기관도 운영되고 있다.

근거와 정당성이 미약한 간호법 신설로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기에는 현재 국내외 의료 상황이 준엄하다.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간호인력의 근로 조건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논의는 보건의료 체계와 조화를 모색하는 ‘합리적 협력’을 통해 추진하는 게 필수다.

간호계가 진정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고통받는 환자의 마음을 다시금 기억하기 바란다. 동료 보건의료 종사자들을 배척하기보다 상생의 자세로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함께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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