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없는 소년이 홀로 남겨진 후, 인생 무대를 감흥으로 꽉 채우다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4-19 03:00 수정 2022-04-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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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원작 ‘아몬드’ 뮤지컬로
감정 표현 못하는 소년 이야기
‘원작 그대로 재현’ 목표로 연출
웅장한 노래들, 극적 매력 배가


감정 표현 불능증에 걸린 윤재가 엄마의 이름을 딴 ‘지은이책방’에서 엄마와 할머니에게 감정을 배우는 장면이다. 세 사람을 둘러싼 앙상블 배우들은 ‘희로애락애오욕’을 뜻한다. 라이브 제공

뮤지컬 ‘아몬드’의 주인공은 뇌 속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아 선천적으로 감정 표현이 불가능한 16세 소년 윤재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소년. 죽어가는 사람을 봐도 그저 태연하기만 한 윤재를 두고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른다.

또 한 명의 소년이 있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며 ‘괴물’처럼 거칠게 자라난 곤이. 다시 친부모를 찾았지만 어릴 때 겪은 상처로 인해 작은 파장에도 크게 동요하는 감정 과잉을 겪는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초연된 뮤지컬 ‘아몬드’는 괴물 같은 두 소년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윤재의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된다.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괴물’이라 불러주는 가족을 잃은 윤재는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다. 하지만 가족들의 빈자리는 곤이, 도라, 신 박사 등 친구와 이웃으로 채워진다.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감정을 배워 나가는 윤재는 특히 친구 곤이와의 사건으로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작품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7년 3월에 출간된 소설 ‘아몬드’는 국내 누적 판매량 90만 부, 해외 20개국 출간을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영화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이 들어왔지만 원작자인 손원평 작가는 오직 뮤지컬 제작만 허락했다.

“원작의 장면과 스토리를 거의 똑같이 무대로 옮겼다”고 말한 김태형 연출의 말대로 뮤지컬은 소설을 ‘그대로’ 무대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부분적으로 모티프를 따오는 각색이 아니라 인물, 사건, 구성도 원작 소설을 충실히 따랐다. 그래서인지 사건을 쌓아올려 서사의 강도를 높여가기보다는 인물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인물의 내면 상태를 직접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소설과 달리 인물이 겪는 사건을 통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하는 공연에선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다른 작품에 비해 인물의 독백을 자주 활용하지만 장면을 소개하는 기능에 그치는 것도 아쉽다.

잔잔한 서사 대신 무대를 가득 메우는 건 웅장한 넘버들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이성준 작곡가가 쓴 넘버들은 곡 안에서 기승전결을 확실하게 매듭지어 뮤지컬의 극적 매력을 배가시켰다. 세련된 디자인에 색감이 다채로운 무대도 주요 볼거리다. 감정 표현이 커질 수밖에 없는 무대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문태유 홍승안)의 안정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 5월 1일까지. 5만5000∼9만9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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