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엔화… ‘나쁜 엔저’에 일본경제 ‘휘청’

박민우 기자 , 도쿄=이상훈 특파원

입력 2022-04-19 03:00 수정 2022-04-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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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126엔… 엔화가치 20년來 최저
무한정 돈풀기 ‘아베노믹스’ 유지
美는 긴축 고삐로 금리차 확대…달러-엔 환율, 126엔까지 치솟아
日, 수입물가 상승에 서민-中企 고통…재무상-日銀총재 등 구두개입 나서
엔저 하반기 지속땐 韓 피해볼 수도



미국 달러화에 버금가는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고꾸라졌다. 미국이 고강도 긴축에 나서고 있지만 일본은 돈 풀기를 유지하면서 미일 간 금리 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통화당국은 무한정 돈을 풀어 ‘엔화 약세’(엔저)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를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엔화 추락에 대한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엔저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물가가 치솟아 일본 경제가 크게 휘청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 ‘나쁜 엔저’의 역습?
1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달러당 126.75엔까지 오르며 2002년 5월 17일(127.99엔) 이후 19년 11개월 만에 엔화 가치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엔화 가치는 올 들어 9% 가까이 하락하면서 주요 선진국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도 15일 기준 971.59원으로 2018년 1월 23일(966.06원)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는 원화와 엔화의 상대 가치는 달러화 대비 가치를 환산한 재정환율로 비교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적완화를 이어가고 있다.

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일본 당국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재무상은 이날 중의원에 출석해 “지금 상황은 가격 전가 및 임금 인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나쁜 엔저”라고 구두 개입성 발언을 했다. 최근까지 엔저가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이날 “급속한 엔저는 경제에 미치는 마이너스(좋지 않은 영향)가 커진다”고 밝혔다.
○ “미일 엔저 공조에 대응해야”
엔저는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겨냥한 △양적완화 △확장재정 △구조개혁 등 ‘세 개의 화살’ 중 첫 번째였다. 엔저가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주가를 끌어올려 임금 상승과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경제 환경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 차질이 지속되고 있어 엔저가 수출 확대로 이어지기보다는 수입품 및 에너지 가격 부담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엔저가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겨 서민과 중소기업, 수입업체의 고통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본 무역수지는 올해 2월까지 7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하는 등 경제 기초체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서예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엔저에도 일본 경제는 당분간 부진할 것이며, 일본 기업들의 마진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엔저가 한국 수출 기업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엔저가 하반기(7∼12월) 내내 이어질 경우 수출경합도가 높은 국내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의 업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이 중국 제조업체의 약진을 견제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엔저를 용인하면서 달러-엔 환율이 150엔대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며 “‘나쁜 엔저’로 평가절하하지 말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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