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근현대 위인들 만나며 역사 순례

사지원 기자

입력 2022-04-18 03:00 수정 2022-04-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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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스트리트]〈18〉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길

역사-숲-산책로 갖춘 ‘힐링 명소’ 17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봄 향기를 머금은 산책로를 걷고 있다. 이곳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이중섭 화백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빛낸 인물 80여 명이 잠들어 있는 ‘역사박물관’인 동시에 울창한 숲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힐링 명소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4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산 자락의 망우역사문화공원길. 5.2km 둘레의 넓고 쾌적한 순환로에는 벚꽃과 개나리 같은 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발걸음도 경쾌했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며 ‘근심을 잊었다’고 말한 데서 유래된 망우(忘憂)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큰길 사이로 난 조그만 나무계단 30여 개를 밟고 내려가자 조금 더 고요한 풍경을 마주했다. 시인 박인환이 잠든 묘와 그의 대표작 ‘세월이 가면’ 구절이 새겨진 비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이곳에는 박인환뿐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인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 ‘망자의 안식처’가 시민의 ‘힐링 명소’로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성된 ‘망우리공동묘지’에 있다. 1973년 공동묘지 폐장 전까지 대한민국의 굽이진 역사를 겪은 수많은 망자들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최대 4만7000여 기에 달했던 무덤은 각지로 이장됐고 지금은 7000여 기만 남았다. 그리고 25만 평의 울창한 숲과 둘레길이 갖춰진 시민들의 ‘힐링 명소’로 탈바꿈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자 숲, 산책로라는 삼박자를 갖춘 소중한 자원”이라며 “근현대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공원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존하겠다”고 설명했다.

박인환의 묘소를 지나 순환로로 이어진 흙길을 200m가량 따라 내려오면 그림 ‘황소’로 유명한 화백 이중섭의 묘를 만날 수 있다. 기자보다 먼저 도착해 이중섭의 묘를 바라보고 있던 이동희 씨(70)는 “젊었을 때 이중섭의 그림을 많이 감상했는데 이곳에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공원과 함께 묘소를 꾸며놓아 산책하기 좋다”고 말했다.

순환로를 한 바퀴 돌면 소파 방정환, 만해 한용운 선생 등 역사적 인물의 묘소에 들를 수 있다. 특히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합장비도 있는데, 합장비까지 가는 덱길에는 인근 학교의 학생들이 쓰거나 그린 추모 문구와 그림들이 가득했다.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묘도 남아 있는데 흐려진 비석의 글씨가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가끔 알록달록한 꽃이 놓여 있는 묘도 보였다. 중랑구 관계자는 “가족들이 와서 관리하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 새 랜드마크 ‘중랑망우공간’
순환로 중간에는 ‘망우전망대’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높은 아파트와 낮은 단독주택까지 중랑구의 모든 건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북한산부터 수락산, 불암산 등 푸른 산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금 힘들면 순환로 곳곳에 있는 용마천·동화천·동락천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걸을 힘을 얻는 것도 추천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랜드마크 ‘중랑망우공간’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순환로 초입에 있어 산책 전후에 편하게 들를 수 있다. 이달 1일 문을 연 이곳은 갤러리 카페와 전시관을 갖춘 실내 공간으로 지상 2층, 연면적 1247m² 규모다.

다음 달 31일까지 ‘뜻을 세우다, 나라를 세우다’라는 첫 기획전시가 열린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8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중랑구 관계자는 “중랑망우공간 시설과 묘역을 함께 관람하는 ‘올인원’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며 “학교 현장체험학습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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