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부터 명재고택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유교의 정수

지명훈 기자

입력 2022-04-15 03:00 수정 2022-04-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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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권 봄여행 가이드]충남
대한민국 ‘관광의 중심’… 낮에는 꽃, 밤에는 빛이 반기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긴 겨울을 견뎌낸 대지가 드디어 기지개를 켠다. 봄의 산과 계곡, 강과 바다가 우리에게 손짓한다.

중부권의 지방자치단체들도 관광 시설과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대전과 세종, 충남, 충북, 강원 등 중부권은 수도권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길목이다.

코로나19의 세월 동안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들이 생겨났다. 지난해 12월 충남 보령의 해저터널이 개통했다. 이전에 개통된 원산(보령)∼안면(태안) 대교와 연결돼 국내 최대의 관광벨트를 형성했다.

대전은 ‘노잼 도시’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힐링, 과학, 음식, 문화예술 분야 킬러 콘텐츠로 승부를 걸었다.

세종시의 도심 한복판 금강에는 거대한 돋보기 모양의 금강보행교가 개통됐다. 주변의 국립수목원 및 예술의전당과 더불어 금세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충북 청주의 옛 대통령 휴양시설 청남대(靑南臺)는 16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꽃대궐’로 변한다.

청남대는 새 정부의 청와대 개방 방침으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충북도는 청남대에 임시정부 기념관도 마련했다.

강원 춘천의 꿈의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는 다음 달 5일 공식 개장해 조용한 ‘호반의 도시’의 관광지형을 바꾼다.

중세시대 왕궁과 마을, 당장 전투를 벌일 태세의 해적선, 영화로 잘 알려진 닌자 마을 등 레고로 만들어진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중부권으로 떠나 보자.》


‘유학의 도시’ 논산



4월 따사로운 햇볕 아래 고즈넉한 기호 유학의 향취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서원과 고택 사이를 걸어보면서 과거와 오늘의 나를 이어보는 것은 잔잔한 기쁨을 준다.

조선시대 중앙 정계 중심축의 하나였던 기호학파의 중심인물들은 대부분 충청도 출신이다. 논산은 이 가운데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예학의 대가로 꼽히는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 부자, 명재 윤증(尹拯·1629∼1714)을 비롯한 수많은 사림을 배출했다.

논산에는 향교와 서원, 고택 등 147개에 달하는 유교 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연산면에 위치한 돈암서원은 가장 중요한 유적 가운데 하나다. 돈암서원은 2019년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유네스코의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된 철학이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사계 제자를 비롯한 지역 사림이 1634년 건립했다. 조선 현종이 즉위하자마자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됐다. 고종 8년(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유서 깊다.

충남 논산시 돈암서원
돈암서원 여행은 건축학 기행이기도 하다. 돈암서원은 강학 건축물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각 건축물의 현판과 목판 등은 예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과 사우, 장판각 등의 건물과 하마비, 송덕비 등이 남아 있고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도 잘 보존돼 있다.

응도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원 강당으로, 유교적 고례를 재해석해 완성한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돈암서원은 ‘돈암, 동고동학’과 ‘사계의 길-돈암캘리그래피’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돈암서원 홈페이지로 참가 신청 등을 하면 된다.

돈암서원에서 논산시내를 거쳐 노성면으로 이동하면 그 유명한 윤증의 명재고택을 만날 수 있다. 개인의 주택이지만 대중적인 인기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고택 옆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장독은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소위 ‘사진맛집’으로 사랑 받는 이유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노성면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윤증은 효종 때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의 벼슬길에 여러 번 천거됐다. 숙종 시대에도 호조참의, 대사헌, 좌찬성, 우의정, 판돈령부사 등에 제수됐다. 하지만 윤증은 이 모든 제안을 사양했다. 이 때문에 ‘백의정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명재고택은 1709년 제자와 자녀들이 선생을 위해 지었다. 윤증은 사치스럽다며 거주하지 않고, 인근 작은 거처에서 살았다. 명재의 손때가 묻지 않은 명재의 집인 셈이다.

윤증은 후손들에게 지나친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종가는 그 가르침대로 지역사회에 대한 나눔을 실천했다. 그 덕분에 전쟁 등 혼란기에도 고택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옥 체험 등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명재고택에서 4.6km, 자동차로 8분 정도 이동하면 종학당(宗學堂)이 나온다. 종학당은 파평윤씨 노성 대종중의 교육시설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문과 42명, 무과 31명, 생원·진사 250여 명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종학당을 세우고 그 기틀을 잡은 이는 동토 윤순거(尹舜擧·1596∼1668)다.

윤순거가 쓴 ‘무이구곡가’ 초서 병풍은 보물로 지정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명필이다. 윤증은 초대 사장(師長)을 맡아 교육체계를 세우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윤증은 교육 과정 및 학규인 ‘초확획일지도와 위학지방도’를 제정, 학생들이 이 규범에 따라 인성을 기르고 지식을 쌓아 인격을 갖춘 선비가 되도록 했다. 현재 종학당은 충남 유형문화재 152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종학당에서 직선으로 1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는 새롭게 지은 전통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초 완공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다. 우리나라 최초 유교문화 전문기관이다. 충남도가 ‘K-유교 세계화’를 이끌 핵심 거점으로 삼기 위해 건립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충청 성현의 정신과 문화를 미래지향적으로 계승하고, 충청 기호유교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유교문화를 세계에 전하기 위해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의 일환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규모는 대지 3만 8000m²에 연면적 4927m²로, 본관과 한옥연수원 7개동으로 구성했다. 총 280억 원의 사업비를 들였다. 부지는 파평윤씨 종중이 내놨다.

전통과 현대 건축양식을 결합해 만든 본관은 청소년체험관, 북카페, 강당, 도서관·기록관·박물관 성격을 통합적으로 갖춘 라비키움, 수장고, 보존 처리실, 유물 정리실 등이 들어섰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소통하는 유교문화, 미래를 여는 국학 진흥’을 비전으로 삼는다. 한국 대표 유교문화 전문기관으로 육성해 충청권역 국학 진흥과 관련된 정부 정책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진흥원은 △세계로 통하는 유교문화 구현 △시대를 아우르는 유교문화 구현 △지역과 함께하는 충청 국학 진흥 △융복합 실현 충청 국학 진흥 △세대 공감 국학 전통문화 진흥 등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전략 아래 △K-유교문화 글로벌 콘텐츠 개발 △국제 교류 플랫폼 구축 △환황해 유교 교류 추진 △한국 유교문화의 현대적 가치 발굴 △충청유교문화권 진흥 사업 추진 △생활 밀착형 유교문화 발굴 등을 중점 과제로 추진한다.

아울러 △범충청권 국학 진흥 추진 △권역별 지역 상생 특화사업 추진 △ICT-문화예술 융복합 콘텐츠 개발 △국학 자료 디지털 헤리티지 구현 △충청 국학 대중화 및 보급 △미래 청년 국학 인력 양성 등의 과제도 추진한다. 공식 개관은 9월이다. 하지만 개관 전에도 밖에서 아름다운 자태는 구경할 수 있다.

충남도는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설립에 발맞춰 종학당 일원에 한국문묘공원, 세계예절문화관, 한국공자마을 조성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을 중심으로 논산 노성 일대를 유교문화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돈암서원과 명재고택 등을 비롯한 충청권 유교문화유산과 충남도가 조성을 추진 중인 공자마을 등을 결합해 유교문화 클러스터를 구축하면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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