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값 2년새 2배… “40억 빚 원리금 내면 재료값 못댈판”

인천=김자현 기자 , 송혜미 기자

입력 2022-04-07 03:00 수정 2022-04-0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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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조 부채 부메랑이 온다]〈3〉‘원자재-이자’ 이중고 겪는 中企

지난달 25일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 있는 한 금속가공업체 공장에서 회사 임원이 출고를 앞둔 알루미늄 생산품을 내려다보고 있다. 최근 2년 새 알루미늄 원재료 가격은 2배 넘게 급등했지만 납품 단가는 50%밖에 올리지 못해 적자가 쌓이고 있다. 인천=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지난달 25일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서 만난 S금속가공업체 이모 이사(57)는 원재료 가격이 월별로 적힌 서류를 보여줬다. 2020년 1월 2351원이던 ‘알루미늄 비레트’ 1kg 가격은 올 3월 4750원으로 2배 넘게 치솟아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 수입원인 중국이 셧다운된 데 이어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친 결과다.

회사 매출은 2020년 72억 원에서 지난해 93억 원으로 늘었지만 오히려 5억 원의 적자를 냈다. 결국 직원 3명을 내보냈다. 여기에다 이달부터 회사 대출금 40억 원의 상환이 시작된다. 이 이사는 “매달 원리금 6500만 원을 갚으면 재료값을 못 댈 것 같다”며 “본격적인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걱정이 크지만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기업 빚이 역대 최대로 불어난 가운데 원자재 가격 폭등과 금리 인상의 이중고를 떠안은 중소기업의 부실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뿌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고용 및 금융시장의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매주 원재료 가격 인상 공문 받아”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부채 잔액은 지난해 말 2361조1000억 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말(1948조9000억 원)에 비해 21.15% 증가했다. 이 중 대기업 대출은 15.27%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33.14% 급증했다. 코로나19 위기 2년을 거치면서 빚에 기대어 연명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금리 상승이 본격화된 데다 사상 최악의 원자재 대란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제조업체 체감 경기는 얼어붙었다. 지난달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는 84로 13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20년 넘게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해온 최모 대표(58)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원재료 업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주일 단위로 가격 인상 공문을 보내왔다.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원유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1년 전 배럴당 6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는 현재 110달러대로 급등했다.

이 회사도 공장을 지으면서 50억 원의 대출을 받아 매달 1500만 원을 갚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출 금리가 0.4%포인트 더 오른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고채 금리가 8년 만에 최고치로 뛰면서 기업 대출 금리와 회사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3년 만기 ‘AA―’급 회사채 금리는 5일 연 3.542%로 10여 년 만에 가장 높았다.
○ 중기 절반,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아”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를 딛고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리면서 부실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중소기업의 50.9%는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었다. 중소기업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잠재적 부실기업이라는 뜻이다. 이와 달리 대기업 비중은 23.2%에 그쳤다.

화장품용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강모 대표(49)는 “남동공단에서 최근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회사가 늘었다”고 했다. 경매전문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경매로 넘어간 전국 공장과 제조업체는 7600건을 넘어선다.

남동공단에서 20년 넘게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를 했던 최모 씨(64)도 올해 초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한때 180명의 직원을 두고 월 매출 40억 원을 올리던 건실한 회사였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미국 수출 길이 막혀 버리자 버틸 방법이 없었다.

2019년 현재 중소기업 종사자는 1744만 명으로 전체 기업의 82.7%를 차지한다. 뿌리산업인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고용 불안과 경기 위축 등 도미노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 부실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만큼 원자재 수급 문제나 기업부채 증가에 대한 선제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천=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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