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비 3900원” 공시, 실제론 5800원… 고객도 라이더도 불만[인사이드&인사이트]

이승우 사회부 기자 , 최미송 사회부 기자

입력 2022-04-06 03:00 수정 2022-04-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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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료 공시제’ 시행 2개월 실태

《“급격히 상승한 배달 수수료를 안정화하기 위해 매달 배달 수수료를 조사해 공개하겠습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올해 1월 21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2월부터 ‘배달비 공시제’를 시행한다”며 이같이 도입 배경을 밝혔다. ‘배달비 1만 원 시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배달비 부담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일자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배달비 공시제’ 도입 2개월이 지났지만 소비자와 음식점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측은 물론 배달 라이더까지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치솟은 배달비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배달 수요의 증가 및 배달 앱의 단건 배달 서비스 도입, 라이더 부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현상임에도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접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뒤늦게 “정보 제공 차원이었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 공시와 실제 배달비 달라


동아일보 조사 결과 공시된 배달비부터 실제와 차이가 났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소단협)는 정부 위탁을 받아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3개 앱의 배달비를 조사해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2월 발표에 이은 두 번째 공시였다. 서울의 중국 음식점 485곳과 피자 전문점 413곳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달 1∼3일 해당 배달 앱 3곳에서 서울 강남구와 관악구 중국음식점 40곳(각 20곳)의 배달비를 조사해 보니 18곳은 소단협이 공시한 최고가보다 배달비가 비쌌다.

관악구는 ‘단건 배달비’가 ‘2km 이내 최고 3900원’이라고 공시됐지만 조사결과 20곳 중 절반인 10곳이 그보다 비쌌다. 5810원이나 받는 경우도 있었다. 강남구는 거리별 최고가가 2540∼5000원으로 공시됐지만 20곳 중 8곳이 공시 가격을 초과했다. 소단협과 취재팀의 조사 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도 차이가 상당한 것이다.

‘배달 앱별 배달비 차이’도 실제와 다른 점이 발견됐다. 같은 음식점에서 주문해도 배달 앱별로 배달비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공시제를 도입하면 앱별 배달비 차이가 드러나 소비자의 배달 앱 선택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공시에는 강남구 중국음식점의 경우 앱별로 배달비가 최고 3000원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취재팀 조사 결과 배민과 쿠팡이츠의 배달비 차이는 4000원으로 그보다 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경기 지역 일부 자영업자들은 공시 자료를 못 믿겠다면서 배달비를 자체적으로 조사해 공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근본적으로 각 식당의 상호명이 배달비와 함께 공개되지 않는 이상 공시를 들여다볼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배달비 공시로는 업소별 상세 배달비를 알 수 없다. 거의 매일 배달 앱을 사용한다는 강모 씨(29)는 “공시를 봐도 식당의 앱별 배달비가 얼마인지 몰라, 실제 주문할 때는 다시 배달앱에서 배달비를 확인해야 한다. 한마디로 쓸모가 없다”고 혹평했다.

○ 점주, 라이더도 “도움 안 된다”

자영업자들도 배달비 공시제를 외면하고 있다. 음식점주는 배달 앱에 내는 수수료와 별도로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배달비를 소비자와 나눠 부담한다. 하지만 배달 업체에서 배달비 분담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시제 역시 소비자가 내는 배달비만 조사하는 까닭에 전체 배달비가 어떻게 분담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 씨(39)는 “배달 앱에서 주문이 올 때마다 식당이 내야 하는 배달비가 먼저 떠오른다”면서 “소비자와 자영업자가 얼마씩 나눠 부담하는지에 대한 전모가 밝혀져야 배달비가 오르는 근본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인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A 씨도 “지금과 같은 공시제 정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라이더들도 배달비 공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배달 라이더 박모 씨(27)는 “배달비는 경매와 유사해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변동 폭이 큰데, 매달 1회 조사만으로 이 같은 변수들이 모두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폭우나 폭설이 발생했을 때나 배달이 몰리는 점심·저녁 시간에 라이더 수가 부족하면 배달비가 건당 1만∼2만 원으로 상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위원장은 “배달비 공시제는 라이더와 배달 앱을 중개하는 배달 플랫폼 수수료 정보 등이 담겨 있지 않은 반쪽짜리”라고 지적했다.

배달 앱 업체도 배달비 공시제에 회의적이다. 배민 관계자는 “배달비는 매장 상황이나 메뉴, 라이더 낙찰 금액에 따라 변하는데 이 같은 요인이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 형식적 조사로 인하 기대 어려워

정부는 배달비 공시제 도입 당시 공시제가 배달비 부담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배달비를 낮추겠다는 목적보다 정보 제공 차원에서 한 조사”라며 “배달비는 민간 자율로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 개입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월 1회 형식적인 조사만으로는 배달비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배달 플랫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승훈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달앱, 배달 대행 등 플랫폼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단순 배달비 공개만으로 가격을 인하한다는 발상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얘기”라며 “플랫폼이 배달 과정에서 각각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배달비 인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비 인하를 위해 근본적으로 라이더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배달 수요에 비해 배달 라이더 수는 상대적으로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 앱이 늘면서 라이더 한 명이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주문의 양이 줄어든 것도 인력 부족 문제를 심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요기요 관계자도 “배달비 상승의 주요 원인은 라이더 인력 부족 문제”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 라이더 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단순히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배달비로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줄 순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배달 앱, 배달 대행업체 측 배달 건수당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 조사한 후 과도하게 수익을 챙긴 정황이 파악되면 제재하는 등의 적극적 개입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승우 사회부 기자 suwoong2@donga.com
최미송 사회부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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