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빚투’ 폭탄… 年700% 사채 쓰고, 집담보대출 날려 이자 걱정

강유현 기자 , 이상환 기자 , 송혜미 기자

입력 2022-04-04 03:00 수정 2022-04-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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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조 부채 부메랑이 온다]〈1〉 불안에 떠는 영끌족
빚투-영끌 부실 위험 점점 현실화…주식-코인-부동산 찬바람에 빈손
금리까지 올라 상환부담 눈덩이…자산시장 부진으로 사회적 문제
작년말 가계빚 8% 늘어 1862조…처분가능 소득의 1.7배 넘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빚투’(빚내서 투자)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최근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상담을 받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담당자가 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형병원에서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는 김모 씨(31)는 2020년 6월 2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2주도 안 돼 3배의 수익을 올리자 모아둔 2500만 원에 신용대출 1000만 원을 받아 코스닥 종목을 사들였다.

2020년 말 일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주식 선물에도 뛰어들었다. 선물 투자로 하루 수백만 원을 벌자 저축은행과 카드론으로 7000만 원을 더 빌렸다. 23시간 돌아가는 선물 시세를 들여다보느라 끼니를 걸렀고 업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거듭된 대출에 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지난해 7월 연이자 700%짜리 사채로 200만 원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몽땅 날린 그는 현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주로 도박중독을 상담해주는 이 센터에는 김 씨처럼 주식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이 최근 2년 새 3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이후 주식과 부동산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에 나선 이들의 부실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올 들어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뛰는 데다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이 본격적인 긴축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곳곳에서 터지는 ‘빚투 폭탄’
직장인 이모 씨(55)는 지난해 3월 지인이 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상자산 투자에 나섰다. 첫 투자금 200만 원이 1000만 원으로 불자 4000만 원을 더 넣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7∼12월)부터 코인 가격이 하락해 투자금을 날렸다. 올 초 주택담보대출 6000만 원을 받아 다시 투자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다 잃었다.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보유한 투자금은 지난해 말 52조8155억 원이다. 지난해 11월 8000만 원을 웃돌던 비트코인 가격은 올 초 4000만 원대로 반 토막 난 뒤 현재 5000만 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의 충격도 만만찮다. 지난해 6월 3,300을 넘었던 코스피는 올 2월 이후 2,600∼2,70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빚투로 주식을 사들였다가 갚지 못해 강제 처분당하는 반대매매도 늘고 있다.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가격 하락세가 크지 않지만 대출액 자체가 많은 데다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 영끌족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4년 만에 연 최고 6%를 넘어섰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윤모 씨(58)는 올 초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 입주했다. 2020년 4월 대출 4억7000만 원을 끼고 11억 원에 구입한 집이다. 하지만 최근 이 아파트를 다시 월세로 내놓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주택 매매가 얼어붙으면서 중개업 수입이 끊기다 보니 90만 원으로 불어난 대출 이자를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에서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만기 전에 대출금을 회수한 규모는 3449억 원에 이른다. 집을 경매로 넘겨 대출을 회수한 금액은 1004억 원이다.
○ “빚투-영끌족, 사회적 문제 대두 우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는 1862조653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8% 늘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3.4%로 1년 새 4.3%포인트 올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계 소득은 제자리인데 이자 부담이 늘어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직장인 강모 씨(38)는 요즘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파트와 상가 투자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으로 빌린 돈이 9억 원이 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투자 상담을 받을 때 연 2%대였던 대출 금리는 4%대로 치솟았다. 강 씨는 “한 달 대출 원리금만 400만 원”이라며 “한은이나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까 노심초사”라고 했다.

국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18조4000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가계신용(가계 빚) 급증과 주택가격 상승을 엄중히 경계해야 할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영끌, 빚투족의 부채 규모가 경제 위기로 직결될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해당되는 대출자가 많은 데다 자산시장 부진이 계속되고 있어 사회 문제로 대두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가격 추락이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같은 외부 충격이 온다면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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