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김성모 기자

입력 2022-03-25 12:00:00 수정 2022-03-25 1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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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06〉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트렌드세터 뉴욕, ‘패션법’ 본격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2011년 11월 25일,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낸 광고다. 자사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는 내용을, 돈을 들여 가장 유명한 매체에 광고를 내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것도 1년 중 제품이 최고로 잘 팔릴 날에 말이다. 파타고니아는 제품 생산부터 판매, 매출의 활용까지 수익보다 환경을 우선시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 광고도 물건을 구매할 때 깊이 생각하고 적게 소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지구는 목적이며 사업은 수단”이라는 사명과 맞아떨어진다.

앞으로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파타고니아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전 세계 패션 수도’로 꼽히는 미국 뉴욕주(州)가 패션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기 위해 입법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뉴욕주 상원과 하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패션 지속가능성 및 사회적 책임법’(패션법)을 추진하고 있다.


패션법에 따르면 의류 회사는 원자재 생산부터 제조, 배송까지 전 과정에 걸쳐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온라인에 관련 내용을 공개해야만 한다.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의류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각종 화학물질의 관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을 점검하고 알려야 한다.

또 기업들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매년 사용하는 목화와 가죽, 폴리에스터 등 원자재의 양도 공개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제공했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사실상의 ‘패션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다. 법을 위반한 사례가 드러나면 연 매출의 2%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뉴욕타임스 광고.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 샤넬의 깜짝 CEO 발탁
패션법은 본사 소재지와 무관하게 연 매출이 1억 달러(약 1200억 원) 이상이고 뉴욕에서 영업을 하는 모든 의류업체에 적용된다. 샤넬, 루이비통의 LVMH그룹, 프라다 등 유럽 명품업체뿐만 아니라 패스트패션(SPA·제조유통일괄형) 업체도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알레산드라 비아지 뉴욕주 상원의원은 “뉴욕은 세계 패션의 수도로서 패션 업계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규제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패션법이 환경뿐만 아니라 패션업계의 노동과 인권 등도 보호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아지 의원은 6월 전에 법안의 표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NYT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가 노예 노동을 규제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패션 업계를 전반적으로 규제하는 법이 통과된 국가는 없다. 뉴욕주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세계에서 첫 번째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의류 산업에서도 ESG 경영이 필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샤넬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프랑스 명품 기업 샤넬은 지난해 말 인도계 영국인인 리나 나이르(53)를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했다. 샤넬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 CEO다.

더 놀라운 건 나이르의 이력이다. 그는 패션 업계 근무 경력이 없는 인물이다. 나이르는 바세린 로션, 도브 샴푸 등으로 유명한 영국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에서 30년을 근무했다. 유니래버는 2010년 기업 경영 가치인 ‘지속가능한 삶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친환경 생산을 도입하고, 포장재를 감축해왔다. 나이르는 유니래버에서 인사관리자를 거쳐 최연소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역임했다.

업계에서는 샤넬이 직원 관리와 친환경적인 생산 등 ESG 경영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샤넬은 나이르 CEO에 대해 “진보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리더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장기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리더”라고 밝혔다.

리나 나이르 샤넬 CEO. 페이스북



● 발등에 불 떨어진 패스트패션 업계
사실 패션법은 명품업계보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에게 발등의 불이다. 싼 가격에 물건을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급 몇백 원 수준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무 환경, 어마어마한 양의 원자재 투입, 각국 배송에 따른 탄소 배출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한 패스트 패션 업체의 하청사인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이 무너져 1100여 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저렴한 SPA 브랜드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H&M(2020년 매출, 약 24조5500억 원)이나 스페인의 자라(약 3조 원) 모두 규제 대상이 된다. 이외에 여러 중견 업체들도 규제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옷 때문에 법까지 만들어야할까.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옷을 만드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과 재료들이 들어간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목화밭에 뿌려진 살충제부터 청바지 세탁물 등으로 1㎏의 직물을 만들 때 평균 23㎏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섬유 소재도 문제다. 현재 거의 모든 의류는 폴리에스터 등을 포함한 혼합 재료로 만들어진다. 천연 소재보다 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활용을 하려면 이를 분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기계적으로 분리하면 품질이 떨어진다. 화학적으로 분리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버리는 비용이 더 싸기 때문에 의류 회사들이 재활용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버려지는 의류폐기물은 약 9200만 t에 달한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할 만큼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유럽의 한 폐기물 처리장. 출처 :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


● 우리는 ‘쾌락의 쳇바퀴’를 달리고 있다
의류 업계도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케네스 퍼커 플레처스쿨 교수는 지난달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지속가능한 패션은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팀버랜드의 임원(COO)이었던 퍼커 교수는 “탄소중립, 유기농, 비건부터 버섯으로 만든 요가 매트, 사탕수수로 만든 운동화 등 패션만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산업도 없다”면서 “재활용, 대여, 재사용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까지 등장했지만 환경 개선에는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셔츠와 신발은 25년 간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 중 4분의 3은 소각되거나 매립지에 묻힌다. 개인적인 실패로도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재활용으로 재탄생한 의류는 1%가 안 된다. 중고 거래를 통한 탄소 배출량 감소율 역시 지난 10년간 연평균 0.01% 미만에 그쳤다.
패션계의 환경 개선 노력이 허울이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패션의 속성 때문이다.

정보기술(IT) 등 기술을 향상됐지만, 유행을 예측하긴 어렵다. 무엇을 갖고 싶은지 고객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패션 재고는 불가피하게 축적된다. 상품의 일부는 할인된 가격으로 소비자를 자극한다. 마이클 스탠리 존스 유엔 지속 가능패션연합 공동 사무국장은 “더 많이 팔고 소비자들이 더 많이 구매하도록 하려는 욕구는 여전히 업계의 DNA에 남아 있다”며 “옷은 수명이 매우 짧아서 결국 쓰레기 더미로 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패션 기업은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기술 개발만으로는 고객의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것이다. 퍼커 교수는 “더 효율적인 블라우스, 핸드백, 양말을 만드는 것으로는 소비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더 나은 게 아니라 단지 다르거나, 저렴하거나, 빠른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고 했다. 기업은 성장 압박에 빠른 트렌드 변화로 고객의 소비를 부추기고, 고객은 유행에 뒤쳐지기 싫어서 또는 그냥 갖고 싶어져서 물건을 사게 된다.

그는 이처럼 원하는 만족 수준을 얻어도 곧 새로운 상태에 익숙해지며 만족 수준이 떨어지는 현상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표현했다. 패션업계의 무한한 창의력과 고객의 욕구는 쳇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옷장을 열어본다면 누구든 공감할 것 같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15년 전과 비교해 의류 보관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 낭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빨라지는 유행만큼 버려지는 옷도 많다는 의미다. 매체는 “가장 빠르게 유행하는 제품의 절반 이상이 1년 내에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명품 ’오픈런‘. 동아일보DB



● ‘북한산 사나이’가 만든 파타고니아
의류 기업들도 억울할 수는 있다. 고가 브랜드도 아닌데, ‘박리다매’를 포기하라니. 조금 먹고 배 부르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를까. 파타고니아와 프라이탁 같은 브랜드 속에 해답이 있다. 이들은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라는 상극을 맞대는데 성공한 회사들이다.

파타고니아는 암벽 등산가 겸 환경 운동가인 이본 쉬나드가 1973년 창업한 아웃도어 브랜드다. 원래 그는 원래 암벽 등반용 쇠못인 강철 피톤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 이 피톤을 암벽에 박고 빼는 과정에서 산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루미늄 너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쉬나드는 1960년대 초반 서울에서 군복무를 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당시 틈만 나면 그는 북한산 인수봉을 올랐다고 한다. 쉬나드가 북한산에 개발해 놓은 등반 코스 두 개는 지금까지 ‘쉬나드 A길’, ‘쉬나드 B길’로 불리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매출 성장률 50%를 달성했다. 2013년 이후 미국 아웃도어 시장 2위로 올라섰고,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재밌는 일화도 있다. 2010년대 후반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인들 사이에서 파타고니아 플리스(Fleece) 조끼가 유행처럼 번져 ‘교복’이 된 것. 당시 “월스트리트를 걸을 때 이 조끼만 보면 누가 금융업 종사자인지 알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9년 일부 금융권 직원들이 이 옷을 단체 주문을 하기도 했는데,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회사와 일하겠다”며 대량 주문을 거절했다. 기업의 무한 성장을 부추기는 업계에서 ‘우리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회사에 푹 빠졌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5월 파타고니아의 ‘배기스 팬츠’의 인기를 조명하기도 했다. WSJ은 “이 재활용 나일롱 반바지는 1982년부터 파타고니아의 주류였다”며 “최근 배기스를 색상별로 모으는 수집가들이 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교복‘처럼 입었던 파타고니아 플리스 조끼. 출처 : 트위터

● 컨테이너 박스가 본사인 프라이탁
프라이탁은 1993년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르쿠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만든 스위스 가방 브랜드다. 형제가 살던 낡은 아파트 창밖에는 화물용 고속도로가 보였다고 한다. 이들은 먼지를 풍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들을 주시했다. 그리고 트럭들이 덮고 있는 방수포에서 영감을 얻었다. 방수포를 재단해 가방의 몸통을 만들고, 어깨끈으로는 자동차 안전띠를 이용했다. 올이 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전거 바퀴의 내부 튜브로 가방 덮개의 모서리를 둘렀다. 프라이탁에서 1년에 가방을 만들기 위해 재활용하는 재료는 트럭 천막 200t, 자전거 튜브 7만5000개, 차량용 안전벨트가 2만5000개다. 모든 제품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화물용 트럭에서 출발했지만, 프라이탁의 디자인은 현대적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수포마다 광택이나 색깔, 무늬가 다르고, 거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똑같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 Z세대)가 여기에 푹 빠졌다. 이 때문에 중고 거래에서도 사용감이 있는 제품도 정가와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프라이탁은 사업 기간이 30년이 채 안 되지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2개국에서 47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연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9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린 스위스 취리히 프라이탁 본사. 컨테이너 좌측에 작업실이 있고, 우측에는 4층으로 이루어진 컨테이너 박스 매장이 있다. 출처: 프라이탁 홈페이지

1993년 프라이탁 형제가 처음 만든 기본형 제품(왼쪽)과 현재 판매 중인 프라이탁 제품들. 출처: 프라이탁 홈페이지

● 품질, 디자인은 기본
이 기업들은 어떻게 고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을까. 품질, 디자인부터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품질에 굉장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쉬나드의 저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는 ‘제품 디자인 철학’이 맨 앞에 등장한다.


쉬나드와 수석 디자이너였던 케이트 라라멘디와의 대화가 눈길을 끈다. 라라멘디는 “우리가 최고의 옷을 만들려고 한다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셔츠는 이탈리아산”이라고 했다. 그러자 쉬나드가 “그 셔츠를 세탁기와 건조기에 넣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되묻는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제품 범주를 만들고, 그 안에서 최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브랜드답게 필요한 기능을 갖췄는지, 다 기능적인지, 내구성이 있고, 수선이 가능한지 등을 세밀하게 살폈다.


프라이탁은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디자인이 더 부각되는 편이다. 스위스 ‘2011 디자인 프라이스’ 등을 비롯해 각종 디자인 대회에서 상을 탔고, 미국 현대미술관에 제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지금은 스위스 국민가방으로 불린다. 젊은층 못지않게 중장년층의 제품 구매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저렴한 제품도 20만 원이 넘어 ‘감성 쓰레기’로 불리지만, 젊은층은 이러한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옷을 수선 중인 파타고니아 직원. 출처: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 환경에 ’진심‘인 브랜드들
하지만 품질과 디자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것들을 갖춘 제품은 수두룩하다. 답은 ‘진성성’에 있다. 환경에 ‘진심’인 회사를 보고 제품 구매를 결심한다는 것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차세대 소비자로 꼽히는 Z세대 중 90%가 ‘브랜드가 환경 이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ESG의 정석’으로 불릴 만하다.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선언한 파타고니아는 1993년 플라스틱 빈 병으로 신칠라(인조 양모) 재킷을 만들었고, 1996년에는 모든 면제품을 100%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면직물로 대체했다. 또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재품 재사용과 수선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연 매출액의 1%를 매년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제품이 많이 팔리는 만큼 기부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또 사내 임팩트 투자펀드를 통해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단순히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드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전반에서 ESG가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한다. 쉬나드는 “공급업자에게 ‘유기농’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화나 기타 농산물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목화를 키운 농부부터 조면공, 방적공, 후가공 업자까지 모두 체크해야 한다는 의미다. 파타고니아는 이를 제3자 인증까지 받고 있다.


불의를 참지 않는 자세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2018년 1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가량을 기업 감세 정책으로 절세하자, 1000만 달러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환경 단체에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사용돼야 하는 세금을 줄였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직원들에게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환경 캠페인을 위해 전 세계 직원이 문을 닫고 참여하는 일도 있었다. 회사는 환경 문제와 관련된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걸 용인해준다. 심지어 비폭력 평화 시위를 하다 잡혀가면 회사에서 보석금을 대신 내 줄 정도다.

2011년 5월 미 캘리포니아 본사 앞에서 파타고니아 직원들이 칠레 자연보존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형 댐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출처: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 “우리 재킷은 준비됐는데, 로켓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에게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 용감한 창업가도 있다. 영국의 쌍둥이 형제 닉과 스티브 티드볼이 2015년 창업한 의류 브랜드 볼레백(Vollebak)은 2019년말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 본사 앞 옥외광고판에 “우리 재킷은 준비됐는데, 로켓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라는 내용의 광고를 올렸다. 자사의 제품을 ‘화성 여행’ 때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처럼 읽힌다.


볼레백의 ‘숙면 보호막 재킷’은 빛과 소리, 불필요한 자극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어서 숙면을 돕는다. 하루 16번 일출을 경험하느라 심각한 수면장애를 안고 사는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비행사들이 탐낼 만하다.


디자이너 겸 운동선수였던 이 쌍둥이 형제는 의류 업체 대표보다 발명가에 가까워보인다. 낮에 태양광을 충전하고 밤에는 체온을 보호해주는 ‘태양열 충전 재킷’은 2018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됐다. ‘그래핀 재킷’도 있다. 이는 높은 열전도성을 가진 그래핀 소재를 섬유에 코팅해 만들어졌다. 네팔에서 어떤 사람이 트레킹을 하다가 길을 잃었는데, 이 재킷 덕분에 밤을 무사히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타임이 2020년 꼽은 혁신 제품 ‘풀 메탈 재킷’도 볼레백 제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는 구리에 닿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옷은 11㎞의 구리 원사로 만들어졌다. 금속이라 딱딱할 듯한데, 부드럽고 신축성도 좋은데다가 방수와 방풍까지 된다고 한다. 인류의 구할 재킷으로 불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비쌀 것 같다.


이 쌍둥이 형제의 철학도 파타고니아, 프라이탁 못지않다. 인류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100년 컬렉션’을 만들었다. 100년 동안 입을 수 있는 후드티, 조끼 등을 제조한 것이다. 엄청난 내구성을 지녀서 칼로도 찢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2019년에는 식물성 티셔츠까지 내놓았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이 티셔츠에는 유칼립투스, 너도밤 나무, 미세조류 등이 소재로 사용됐다. 땅에 묻으면 12주 안에 완전히 생분해돼 곤충이나 지렁이의 밥이 된다. 심지어 미세조류는 직접 재배했다. 옷이 해졌거나 싫증이 나서 더 입고 싶지 않을 때는 집 앞 마당의 흙 속에 묻으면 된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 본사 앞 옥외광고판에 올린 볼레백의 광고(왼쪽부터), 숙면 보호막 재킷과 풀 메탈 재킷. 출처: 볼레백 홈페이지

● “우리의 유일한 집에 불을 지르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만, 황사가 짙게 낀 날만, 코로나19 같은 질병이 불어 닥쳤을 때만 진심으로 지구를 걱정한다.


지난달 유엔이 발표한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보고서는 직설적이다. ‘언제까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후변화의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오염원들이 우리의 유일한 집을 방화했다”고 했다. 또 “인류가 생존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투자에 대한) 지연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기후 변화가 20년 전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파괴적이고 광범위하다고 분석했다.

IPCC의 보수적인 추정에 따르면 세계는 100년 전보다 1.1도 따뜻해졌다. 각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5년마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점검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평균기온 상승 억제 목표치를 1.5도로 삼고 있는데, 각국이 NDC를 달성한다고 해도, 이번 세기 말이 되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 기온이 2.4도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면역력이 30% 가량 뚝 떨어지는 우리 몸처럼, 생태계도 온도 변화에 따라 엄청난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도 상승하면 모든 육지 종의 18%가 높은 멸종 위험에 처한다. 4도 올라가면 50%가 생존을 위협받는다.


AP 뉴시스


● 곤충겟돈(insectageddon)과 경제학자
생태계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는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 이변 탓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전국적으로 벌통 50만 개 이상, 100억 마리가량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졌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벌들이 밖에 나갔다가 못 돌아온 ‘월동 폐사’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따라 죽는 벌집 군집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날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개화 시기인 봄이 짧아져 벌들이 활동할 시간이 줄어든 데다 가을에는 저온현상으로 벌들이 많이 크지 못했다. 겨울잠에 들어간 벌들은 12월 고온현상으로 일찍 바깥에 나왔다가 체력을 잃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꿀벌이 사라지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성장하는 농작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농작물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더 심층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곤충겟돈은 얼마나 현실적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곤충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표현하기도 했다. ‘곤충겟돈’(insectageddon)은 곤충과 ‘선과 악이 싸우는 최후의 전쟁’이라는 의미의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친 조어로 보인다.


브래드퍼드 리스터 미국 렌슬레어 폴리테크닉대 생물학 연구팀은 푸에르토리코 열대림에서 꾸준히 곤충과 거미를 잡았는데, 1977년과 2013년 사이 4분의 1에서 8분의 1로 중량이 준 것을 발견했다. 끈끈이로 포획한 곤충의 양도 30분의 1∼60분의 1로 감소했다. 곤충의 감소는 이들을 먹이로 삼는 척추동물에 영향을 미친다. 생태계는 어느 하나 단순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고스란히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와인 생산자들은 기온 변화로 포도 재배지를 조금씩 옮기고 있다. 와인 포도가 기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파 밸리 와인 업계는 최악의 더위와 물 부족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ESG를 신경 쓰지 않거나, 정부 규제·여론을 피하기 위해 ‘그린 워싱’(친환경 위장 전략)을 펼친 일부 기업들이 뜨끔할만한 대목이다.


어쩌면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재무제표에 ESG 관련 항목이 생겨날지 모른다. 매출이나 영업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판단될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에서 성장보다 ‘지속성’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유럽연합은 해외 기업들에게까지 ESG 규제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저서에 언급된 내용 중 인상 깊은 한 줄을 전한다. “유한한 지구 위에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일 것이다.” (미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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