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철길 지나자 올레길과 숲길… “사색하며 구로 한바퀴”

이청아 기자

입력 2022-03-23 03:00 수정 2022-03-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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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스트리트]〈13〉 구로구 ‘천왕산 성공회대 순환길’

22일 오전 시민들이 서울 구로구의 천왕산 성공회대 순환길과 나란히 뻗은 항동철길 위를 걷고 있다. 천왕산과 성공회대를 감싸고 도는 2km가량의 순환길은 푸른수목원, 더불어숲길, 구로올레길 등으로도 이어진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괴테, 헤겔, 하이데거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는 길이다. 서울에도 사색을 하고 싶은 시민들이 자주 찾는 길이 있다. 구로구에 있는 ‘천왕산 성공회대 순환길’이다.

2km 남짓한 이 길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고 신영복 선생을 기념해 만든 ‘더불어숲길’과도 이어진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구로구 전체를 커다란 자연공원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 항동철길 따라가면 나오는 푸른수목원
21일 오후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로 나와 항동철길에서 순환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항동철길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과 경기 시흥시를 잇는 ‘오류동선’ 중 구로구 항동 지역을 통과하는 구간(4.5km)이다. 1959년부터 비료를 나르던 단선철도인데,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아 주민들의 단골 산책로로 사용된다.

항동철길은 다른 철길인 경의선숲길이나 경춘선숲길에 비해 개발이 덜돼 더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주택가에 있는 도입부를 제외하고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걷다 보면 투박한 수풀과 소박한 간이정류장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10분쯤 철길을 따라 걸으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곧바로 가면 계속 철길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쪽문으로 푸른수목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구로올레길로 더불어숲길과 이어진다. 기자는 우선 600m 정도 철길을 더 걸어 푸른수목원 정문으로 향했다.

2013년 문을 연 푸른수목원은 서울시 최초의 시립 수목원이다. 수목원 안의 항동저수지 역시 서울시민의 인기 나들이 장소로 꼽힌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푸른수목원은 2013년에 문을 연 서울시 최초의 시립 수목원이다. 약 6만 평(약 20만 m²) 규모로 20개의 테마정원과 식물 1400여 종이 있다. 항동저수지 역시 수목원 안에 있어 서울시민의 인기 나들이 장소로 꼽힌다. 수목원 내부에 도서관도 새로 짓고 있다. 해가 저물어 가로등이 켜진 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 신영복 선생과 함께하는 더불어숲길
수목원 구경을 마치고 후문으로 가면 순환길은 성공회대 ‘구두인관(Goodwin House)’으로 이어진다. 1936년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사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붉은 벽돌의 서양식 근대건축물로 아름다운 외관이 유명하다.

훗날 대한성공회가 매입하면서 한국의 신학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친 ‘구두인 신부’의 이름을 붙였다. 유신 치하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됐다. 민청학련 사건의 산실이어서 민주화의 성지로도 불린다. 지금은 성공회대가 창업지원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두인관에서 나와 성공회대 캠퍼스를 가로지르면 다시 순환길이 나온다. 순환길은 더불어숲길로 이어진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야자매트도 깔려 있어 체력에 자신이 없는 이들도 손쉽게 걸을 수 있다. 고 신영복 선생 추모공원도 근처에 있다.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 더불어숲길 곳곳에는 신 선생의 서화 작품 31점이 전시돼 있다.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 유명 저서들을 남긴 작가인 만큼, 좋은 글귀를 읽으며 사색에 잠기고 싶은 날에는 이 숲길이 좋은 선택이다.

순환길에서 더불어숲길로 접어들지 않고 반대편을 택하면 구로올레길이 나온다. 구로구가 도림천, 안양천과 천왕산, 매봉산 등에 걸쳐 총 9개 코스로 조성한 산책로인데, 순환길과 이어지는 올레길은 천왕산을 가로지르는 산림형 3코스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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