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신도 수 많지 않지만 ‘깨어있는 부처’들이 많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2-03-21 03:00 수정 2022-03-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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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째 ‘여의도 포교’ 현진 스님, 1980년 신군부 법난 계기 포교나서
2010년 ‘월드 머시 코리아’ 설립… 종단 개혁-국제구호 활동도 활발
최근 산불-우크라 성금에 1억 기탁… “지금 세상에 필요한건 저스트 러브”


서울 여의도에서 38년째 포교원을 운영 중인 현진 스님.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여의도에서 불교 포교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개신교회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한 몇몇 불교 종단들이 포교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고 떠났다. 불교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1985년 설립 이후 3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교당이 있다. 여의도포교원장이자 국제구호단체 ‘월드 머시 코리아’ 대표인 현진 스님(72)을 18일 만났다. “왜 여의도로 왔냐?”고 묻자 그의 말머리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모든 게 하나의 인연이다. 일본에서 유학을 위해 어학연수를 하던 1980년 신군부가 법당에 난입해 스님들을 강제 연행하는 10·27 법난(法難) 화면이 TV에 나왔다. 사찰이 쑥대밭이 됐다는 얘기에 바로 귀국했다.”

그해 12월 찾은 조계사에서 그의 귀에 들어온 신도들의 대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스님들이 얼마나 잘못했으면 이런 일을 당했겠느냐”는 것. 자신의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불교가 정말 많이 아프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세상사에 어둡고, 복만 바라는 신앙관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은 잘잘못이 있고 부패하고 달라질 수 있지만 불법(佛法)은 영원한 진리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제대로 진리를 전하는 ‘대중 불교’가 필요했다.”

유학은 뒷전, 거리에서 불교를 알리는 복사물을 만들어 나눠주는 일에 매달렸다. 그 모습을 며칠간 지켜보던 한 불자가 “스님 하고 싶은 일 하시라”며 서울 용산구의 한 공간을 내줬다. 포교원은 다시 목동을 거쳐 1985년 여의도에 자리를 잡았다. 어린이 한문교실과 성인들을 위한 불교 교양대학, 일요법회를 시작했다.

어렵다는 여의도 포교를 38년째 이어가는 비결을 묻자 그는 “전통사찰과 비교할 때 신도 수는 많지 않지만 이곳에 ‘깨어 있는 부처(신도)’들이 많다”고 했다.

현진 스님은 3선 연임을 시도하던 서의현 총무원장에 맞서 1994년 종단 개혁에 나서는 한편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설립된 국제구호단체 ‘월드 머시 코리아’는 국내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미얀마와 라오스 등 동남아 지역에 15개 학교를 건립했다.

여의도포교원은 개원 당시와 달라진 모습이 거의 없다고 한다. “화려한 외관의 절이 없어서 한국 불교가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보시하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도록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현진 스님은 최근 동해안 산불 피해자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성금으로 각각 5000만 원을 조계종에 기탁했다. “인류가 하나라는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우크라이나인이자 산불 피해자들이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을 영어로 하면 ‘저스트 러브(just love)’, 그냥 사랑하는 것 아니겠나.”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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