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땐 稅감면 등 ‘특혜세트’… 베이비부머 인생 2막 무대로[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2-03-19 03:00 수정 2022-03-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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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제시하는 지방소멸 해법
재경 지방향우회, 특별법 초안 내놔
1680만 베이비부머가 움직여야
“이대론 공멸” 민간이 팔걷고 나서


2020년 한국의 인구구조는 두 가지 분기점을 맞았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됐고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2020년 한 해 동안 27만 명이 태어나고 30만 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 68만 명이 고령자로 편입했다. 이후 1974년생까지 20년간 1600여만 명이 순차적으로 고령자 대열에 들어가게 된다.

지방은 텅텅 비어가는데 인구 절반이 국토의 12.6% 면적 수도권에 몰려 바글대는 통에 집값은 올라가고 경쟁은 격화됐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 저출산과 지방소멸을 더욱 촉진시킨다는 점이다.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합계특수출생률은 2020년 0.84명을 찍은 데 이어 2021년에는 0.81명(잠정)으로 떨어졌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대한민국은 지속가능할까.


○턴 어라운드(Turn Around),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 뿌리를 내린 재경 지방향우회가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은퇴세대의 ‘턴 어라운드(Turn Around)’, 즉 귀향을 통해 고향의 기사회생을 도모해보자는 취지다.

재경 7개 도와 4개 광역시 향우회를 대표해 2019년 설립된 사단법인 대한민국시도민회연합(공동 대표회장 강보영 최대규)이 지난해 지방소멸의 국가적 위기대응을 위한 특별법안 초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3년간 100여 차례 회의를 열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 초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강보영 공동대표 회장(80)은 “다양한 시도민 행사에 참석해보면 고향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모인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고향이 비어간다면 머잖아 대한민국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대표인 강 회장은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이고 최 회장은 재경 광주전남향우회 회장.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감은 영호남이 한마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특별법안은 수도권 인구와 기업의 지방 전입에 대해 지금까지 해온 것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지원과 특례를 담고 있다. 관건은 ‘사람이 움직이게 한다’는 것. 이 초안에 기초해 지난해 11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초안이 같으니 내용도 유사하다.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안에 담긴 내용


특별법안은 정부의 지방소멸대응 마스터플랜 책정을 의무화하고 대통령 소속 지방소멸대응특위를 설치할 것을 규정한다. 또 지방소멸위기 특별지역을 지정하고 이곳으로 이주하는 개인과 기업에 각종 특혜를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예컨대 특별지역에 전입하는 주민에게는 양도소득세 취득세 상속세 증여세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전입하는 기업에도 법인세 취득세를 감면하고, 기업 상속 요건도 대폭 완화한다. 건강보험료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한다거나 관내 문화 관광시설 입장료, 골프장 입장료를 낮춰주는 등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위한 지원책도 포함됐다. 또 노년층의 지방살이에 가장 큰 걸림돌인 의료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 의료 인프라에 대한 폭넓은 지원책도 담겼다.

법안 초안의 산파 역할을 한 강 회장은 “관건은 실효성”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혜택이 있어야 한다. 지방 이전 결심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30년 이상 자신의 삶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지원이 너무 파격적이면 역차별 논란이 있지는 않을까.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출산장려금, 정착지원금, 농어촌 살리기 등의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지만 인구절벽은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지방이전 결심이 가능할 정도로 혜택이 있어야 한다. 고향을 지키러 가는 선택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줘도 되지 않을까.”


○은퇴 베이비부머가 지방 살릴 주인공


초안을 만들면서 이들은 베이비부머와 젊은층의 공간 분업론을 주창한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에게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 교수는 2020년 저서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에서 지방을 살릴 주역으로 은퇴를 맞는 베이비부머에 주목했다.

1차와 2차 베이비붐 세대를 합한 1955∼1974년생은 대략 1680여만 명, 그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그중 절반은 산업화와 함께 이촌향도(離村向都)한 지방 출신이다. 약 60% 이상이 자기 주택을 갖고 있다. 이들이 은퇴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 제2의 인생을 꾸린다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지방도시의 쇠퇴를 막고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로 인해 지역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젊은 인구를 끌어들일 수도 있고 이들을 정기적으로 찾는 ‘관계인구’도 늘어난다.

베이비부머들에게도 귀향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지방에는 중장년이나 노년층이 인생 2막을 시도할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고 조금 덜 벌더라도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 도시에서 얻지 못할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고 사회에 기여하며 늙어갈 수 있는 노후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문제는 귀향을 실천에 옮기는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되느냐다. 마 교수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은 다양한 조사에서 적게는 30%, 많게는 50∼60%까지 귀향 의사를 밝히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 사는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 440만 명 중 10%만 이동해도 수도권에서 44만 명이 빠져나가고 이들이 살던 집은 매매나 임대시장에 나오게 된다. 지방 출신이 대도시에서 살다가 근처 중소도시로 가는 J턴, 대도시 토박이가 연고 없는 지방 중소도시로 가는 I턴 등을 합치면 지방 이주 인구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토 균형발전 정책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갔지만 수도권→지방 인구이동은 미미했다. 예컨대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이 가장 활발했던 2013∼2016년 ‘수도권→지방’의 순인구 이동은 5만8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민간이 나선 이유 “이러다가 다 죽어”

강 회장은 지방소멸 대응법안 작성에 적극 나선 이유에 대해 “개인과 기업 등 수요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지는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방소멸 문제는 분야별 칸막이가 있는 국회나 정부가 융합적 관점에서 법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착목했다. 수요자는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초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에는 법안의 국회발의 보고회를 열어 여야 대선후보들로부터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해 12월 28일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안 국회 발의 보고회’에 참석한 여야 대통령 후보와 강보영 시도민회연합 공동대표 회장(가운데). 동아일보DB
물론 정부도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간 국가균형발전, 지방자치분권을 내세운 정책을 펼쳐왔지만 가시적 성과를 얻는 데 미흡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89곳(기초단체)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 고시하고 올해부터 10년간 1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13일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에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위원장 김병준)가 설치돼 향후 기대를 모으기도 한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걱정이 많다. 시간이 많지 않고, 국회 통과 과정에서 법안이 손질되면서 실효성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크다.

“우선은 국회 통과가 급선무다. 가급적 현재의 상임위가 흩어지기 전인 4월 임시국회에서는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이러다가 다 죽는다.”

법안 발의자이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기도 한 서영교 의원은 “4월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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