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인데 8개월째 못들어가”… 유치권 다툼에 ‘등 터진’ 입주민들

조응형 기자

입력 2022-03-16 03:00 수정 2022-03-16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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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도시된 서울 신림동 주상복합
2014년 시행사 부도뒤 분양 차질…소유권 가진 신탁사, 관리권 등 넘겨
투자-관리 업체 2곳, 용역비 등 분쟁… 양측 용역고용 건물장악 몸싸움
일부 주민 현관에 용접… 출입 막아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상복합 ‘가야위드안’ 내 한 아파트 현관문에 잠금장치 3개가 용접돼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7월까지 이곳에서 살던 세입자 A씨는 “용역에게 쫓겨나 8개월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2일 이 건물 지하 2층 방재실을 장악하려는 용역 직원이 철제 바리케이드를 넘는 모습. 방재실에는 건물 폐쇄회로(CC)TV를 모두 볼 수 있는 모니터와 저장장치가 설치돼 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독자 제공

“밀어! 몸으로 밀어!” “당신들 누구야?”

2일 오후 2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상복합건물 ‘가야위드안’ 지하 2층의 좁은 통로. 건장한 체격의 남성 10여 명이 건물 방재실로 가는 철문을 강제로 열고 들이닥쳤다. 문을 막고 있던 남성 3명이 힘에 밀려 뒷걸음쳤다. 방재실엔 ‘유치권 행사 중’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남성이 방재실 앞 철제 바리케이드를 뚫기 위해 기어오르는 순간 누군가 소화기를 분사했다. 매캐한 소화기 분말이 좁은 복도를 뒤덮어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잠시 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충돌이 수습됐다.

이 건물의 관리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투자업체 주영인더스트리(주영)와 관리업체 신라씨엔디(신라)가 각각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방재실에 설치된 건물 폐쇄회로(CC)TV 모니터를 서로 장악하려고 싸움을 벌인 것. 대낮 서울 한복판이 무법도시로 변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일대 주민들까지 불안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 “집 비운 새 잠금장치 걸어”

가야위드안은 2010년 착공했지만 2014년 시행사 부도 탓에 12년이 지난 지금도 분양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복잡한 권리관계 변동과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소유권을 가진 신탁사 아시아신탁은 2019년 4월 주영에 1순위 우선수익권을 매도하면서 관리를 맡겼고, 주영은 기존 건물을 점거했던 이들과의 협상과 마무리 공사를 다시 신라에 맡겼다. 건물은 2020년 7월 준공됐지만 신라는 용역비와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전체 243개 호실 중 상가 및 아파트 60여 곳과 공용공간인 방재실 등을 대상으로 유치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신라와 주영 두 회사의 충돌이 지속되면서 입주민 피해가 커지고 있다. 분양을 받았던 이들(수분양자)과 세입자 중 일부는 신라가 집을 강탈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세입자 A 씨(48)는 “지난해 7월 신라 측 용역 직원들이 밀고 들어와 나를 쫓아낸 뒤 대문에 잠금장치 3개를 용접해 들어갈 수 없게 해 놨다”며 “8개월째 짐이 모두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신라 측은 “2014년 시행사와 맺은 사용대차 계약을 근거로 A 씨와 계약을 했는데, A 씨가 주영 측과 따로 임대차 계약을 하려고 해 내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건물 9층에 거주 중인 이모 씨(48)는 “신라가 관리실을 장악하고 전기를 차단해 우리 가족을 쫓아내려 한다”고 했다. 이 씨는 2012년 당시 시행사로부터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다. 신라 측 관계자는 “이 씨가 살고 있는 집은 다른 수분양자가 있는 상황이라 퇴거를 요구한 것”이라며 “전기를 일부러 차단한 적은 없다”고 했다.


○ “밤만 되면 싸우는 소리”

2일 방재실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벌어지던 시각, 이 건물 2층엔 강제 집행을 위해 서울중앙지법 집행관과 법원이 고용한 용역 직원 수십 명이 진입했다. 이곳 상가에도 ‘유치권 행사 중’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건물 소유자인 아시아신탁이 2021년 3월 세입자로부터 건물인도 판결을 받았지만 유치권을 주장하는 신라 측이 2개월 전부터 점유해 왔다. 이날 법원 집행관과 신라 측 관계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충돌이 계속되자 주변 주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13일 건물 인근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늦은 밤엔 가야위드안 주변으론 잘 안 가려고 한다. 밤만 되면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덩치 큰 남성들이 주변을 순찰하듯 돌아다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관악경찰서는 ‘가야위드안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든 상태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민사 권리 관계는 서로의 입장 차가 너무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접수된 형사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권리관계가 복잡한 건물에 세를 드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불가피할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전문 자연수 법무법인의 이현성 변호사는 “유치권은 공사대금 등 채권을 돌려받기 위해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 등을 점유할 때 발생하는 권리”라며 “단순히 점유하고 있다고 해서 유치권자에게 해당 부동산을 처분할 권리가 생기진 않는다. 자신이 유치권자라며 임차 계약을 하자고 하면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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