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 250km 산악마라톤…“말리는 사람에 말하죠, ‘해봤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2-03-12 14:00 수정 2022-03-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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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웅 씨가 국내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해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 이무웅 씨 제공.
사막을 달리던 그의 도전은 산으로 바뀌었다. “사막은 다 가봤으니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로 한국나이 80세인 이무웅 씨의 도전은 끝이 없었다. 그는 “내 몸을 극한으로 치닫게 한 뒤 그것을 이겨내면 밀려오는 쾌감, 언젠가부터 그것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2018년 8월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돌아온 뒤인 8월 18일 dongA.com에 소개했던 인물이다. 사막에서 산으로 바뀐 그의 도전 스토리를 전한다.

“올 6월 유럽 조지아에서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신청을 마쳤습니다. 그 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좀 잠잠해지겠죠? 제가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말립니다. 그 나이에 어떻게 하냐고. 그럼 ‘해봤어?’라고 하죠. 어느 순간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께서 했던 말을 제가 쓰고 있어요.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씨는 코로나19 탓에 2년 넘게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바로 직전인 2020년 2월 초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있는 상투메프린시페라는 조그만 섬나라에서 열린 5박6일간 20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이 마지막 도전이었다. 올해 다시 그 도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씨는 1990년대 중반 골프에 입문했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다른 운동을 찾다 달리기에 빠져들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2015년 작고)이 조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무웅 씨가 국내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해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 이무웅 씨 제공.
“처음 달릴 때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냅다 뛰었습니다. 그런데 150m인 운동장 트랙 절반도 못 돌고 숨이 막혔죠. 허허, ‘한바퀴도 못 도내’하며 한탄하고 돌아섰어요. 다음 날 또 달렸어요. 또 한바퀴도 돌지 못했죠.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것을…. 천천히 달리면 되는 것을…. 천천히 달렸더니 한바퀴, 두 바퀴 계속 달릴 수 있었습니다. 많이 달리니 땀이 흘렀고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운동장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 외곽을 달렸다. 매일 달리니 한번에 뛰는 거리도 늘었다. 공식대회에서 검증을 받고 싶었다. 1998년 10월 춘천마라톤 10km에 신청했다. “당시 내 나이가 55세였다. 속칭 중늙은이였다. 혹시나 달리다 변이 생길까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엔 심각했다.” 56분45초. 첫 완주 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1999년 3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동아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1시간56분51초.

“솔직히 마라톤대회를 잘 몰라 10km 다음엔 15km, 20km 등 차근차근 출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들 딸 대신 회사 직원들과 야유회를 함께 가는 식으로 경주로 갔죠. 역시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웠어요.”

풀코스는 전문적인 훈련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꿈도 꾸지 못했다. 2000년 10월 춘천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리려 했는데 그해부터 하프코스가 없어졌다. 낭패였다. 어쩔 수 없이 풀코스를 신청했다.

이무웅 씨가 2020년 2월 초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있는 상투메프린시페라는 조그만 섬나라에서 열린 5박6일간 20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참가해 적도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무웅 씨 제공.
“참가신청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프인 21.0975km를 달렸으니 그 거리 이상으로만 달리자는 생각으로 출전했어요. 사실 미리 포기를 생각하고 갔어요. 25km를 넘기고 마의 35km에선 모든 관절이 아프고 근육 경련이 일어 포기하고 싶었죠. 하지만 달려온 게 아까웠습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해 결국 완주했습니다. 4시간56분48초. 그것도 제한시간인 5시간 이내 완주였죠.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다 그렇듯 달린 땐 고통 속에서 ‘내가 다시 풀코스에 출전하면 바보다 바보’라고 하다가도 결승선만 통과하면 ‘내가 언제 그랬지’하며 다음 대회를 찾듯 이 씨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달렸다. 어느 순간 풀코스가 싱겁다고 느껴졌다. 좀 더 고통스러운 게 없나 찾았다. 100km 울트라마라톤이 보였다. 이 씨의 풀코스 개인 최고기록은 2004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9분 25초다.

“전 이상하게도 늘 좀 더 힘든 것을 찾았어요. 하나에 만족하지 못했죠. 더 힘든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2002년 서울울트라마라톤 100km를 13시간30분48초에 완주했습니다. 제한시간 14시간 이내 완주였어요. 마라톤 풀코스하고는 완주 감동이 달랐어요. ‘뭐 또 없나’하며 2003년 2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한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는 이무웅 씨. 이무웅 씨 제공.
극한의 극한을 찾다 2004년 사막마라톤을 접했다. 당시 사막마라톤에 빠져 있던 극지마라톤 전문가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OSK) 대표(51)와 함께 했다. 사막마라톤은 약 250km를 6박7일간 달리는 극한마라톤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이루는 등 지금까지 지구촌 극지마라톤을 약 20차례나 다녀왔다. 2번 이상 간 곳도 있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카타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남극은 추위를 이겨야 한다. 한마디로 극한과의 싸움이다.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보면 목표로 하는 곳은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달리면서 건강 하나는 자신한다. 어떤 질환 약을 아직 먹는 게 없다. “하루 세끼 다 잘 먹고 술도 잘 마신다”고.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하지 않는다. 시속 8km로는 달려야 하는데 이제 7km로 밖에 못 달린다.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게 버겁다. 밥 먹듯이 완주했던 100km 인데…. 그는 “코로나19가 없어 평소대로 계속 대회에 출전했다면 혹시 달라졌을 수도 있다. 더 열심히 준비했을 테니까”라고 했다.

이무웅 씨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 씨는 지난해 해외에서 온 친구와 10박11일간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전국 명산 투어를 했다. 이무웅 씨 제공.
이 씨는 경기 김포 집 주변 문수산(해발 376m)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또 주당 3회 평균 12~16km를 달린다. 평일 혼자 2회 달리고 과거 함께 달렸던 마라톤회원들과 주 1회 달린다. 그의 모토는 ‘살면서 건강하자’다. 그는 “사람의 수명을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환갑 때 고등학교 동창들 10명 넘게 풀코스 도전시켰는데 지금 달리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하프, 10km로 계속 줄이더니 이젠 ‘다리에 힘이 없다’고 안 달린다. 난 달리는 게 좋다. 힘들어도 그 느낌이 좋다. 내가 아프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달린다”고 했다.

이렇게 많이 달리는데 몸에 부작용은 없을까. 2014년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2010년부터 기록이 떨어지면서 달리는 게 힘들었다.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물론 그 때도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2014년 사막마라톤 입문 10주년을 기념해 모로코사하라사막 마라톤에 도전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그리고 9월 수술 받았다”고 했다. 이 씨는 “나이 들어 10kg 이상 배낭을 메고 달린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이 들면 키도 줄고 몸이 오그라드는데 10kg 이상을 메고 사막을 달렸으니 협착이 급격히 진행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척추 협착증 수술 이후 다시는 안 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땀 맛’이 또 생각났다. 수술한 뒤 한달도 되기 전에 10km를 완주했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하프, 풀, 100km 울트라…. 2015년 스리랑카 22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한 사막마라톤에 참가해 질주하고 있는 이무웅 씨. 이무웅 씨 제공.
“완전히 내 몸이 과거로 되돌아갔어요. 너무 기뻤죠. 하지만 안 다치게 노력했습니다. 몸이 부드러워야 안 다칩니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요가를 했죠. 근육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눈 뜨자마자 합니다. 각 관절 및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죠. 그래야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철칙은 몸에 맞게 달리는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고. 그는 “대회에 출전해도 내 몸이 싫다고 하면 바로 멈춘다. 그래서 내 운동 수명이 긴 것 같다.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내가 울트라마라톤 하는 최고령에 속한다. 그 자부심을 오래 느끼려면 천천히 욕심을 버리고 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250km 산악마라톤에 또 도전한다. 그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른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도전은 불가능하다. 그냥 가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도전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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