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송금 길 막혀, 기업-교민 피해 확산

송혜미 기자

입력 2022-03-10 03:00 수정 2022-03-10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금융제재 대상에 돈 유입땐 처벌”… 제재대상 아닌 은행도 거래 안돼
수출입 대금-생활비 등 못받아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윤태호 씨(58)는 3일 한국의 한 시중은행을 통해 러시아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약 50만 원을 송금했다. 윤 씨가 돈을 보낸 현지 은행은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뱅크였다. 이곳은 한국, 미국 등의 제재 대상에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은 9일까지 돈을 받지 못했다. 윤 씨는 “은행에서도 언제 송금이 완료되는지 확답을 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제재 대상 은행도 아닌데 송금이 막히니 돈을 보낼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대(對)러시아 금융제재 여파로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러시아 은행과의 금융 거래까지 중단되고 있다. 러시아 현지와 수출입 대금이나 생활비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송금 길이 사실상 막혀 피해가 커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정부의 금융 제재 대상이거나 국제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망에서 빠진 러시아 금융기관은 총 12곳이다. 러시아 중앙은행, 러시아 국부펀드 국가복지기금(NWF)·직접투자펀드(RDIF), 로시야, 스베르은행, VEB, 프롬스뱌지은행(PSB), VTB, 오트크리티예, 소브콤, 노비콤, 로시야은행 등이다.

원론적으로는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은행을 이용하면 러시아로 송금 등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비(非)제재 은행과의 금융 거래까지 사실상 막아놓은 상태다. 비제재 은행으로 보낸 돈이 제재 대상에 흘러 들어가는 등 불법 금융거래에 연루될 경우 미국 사법당국의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IBK기업은행이 이란 제재와 관련해 이 같은 혐의로 약 1049억 원의 벌금을 낸 전례가 있다.

한국 시중은행에서 비제재 은행으로 송금하더라도 중간 단계에 있는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중개은행이 송금을 막기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재 대상이 계속 추가되는 등 불확실한 상황이라 중개은행에서 거래를 지연시키거나 대금을 동결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은행으로서는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금융거래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유학생과 교민 피해는 커지고 있다. 30대 러시아 유학생 권모 씨는 “한국에서 송금해주는 생활비로 지내왔는데 송금도 막히고 카드 결제도 안 돼 지출을 최소화하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이나 제3국으로 떠나기 위해 항공편을 알아보는 중이다. 지난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통해 러시아 유학생, 주재원에게 송금된 자금 규모는 624만7438달러(약 77억 원)였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