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非제재은행 금융거래도 중단…교민-유학생 발동동

송혜미기자

입력 2022-03-09 14:27 수정 2022-03-0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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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윤태호 씨(58)는 3일 한국 시중은행을 통해 러시아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원화 약 50만 원을 송금했다. 윤 씨가 돈을 보낸 현지 은행은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뱅크다. 알파뱅크는 현재 한국 정부나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은행이다.

하지만 러시아 현지에 있는 가족들은 9일까지 돈을 받지 못했다. 윤 씨는 “은행에서도 언제 돈이 들어갈 수 있을지 확답을 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알파뱅크는 제재대상도 아닌데 송금이 막히니 돈을 보낼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대(對)러시아 금융제재 여파로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러시아 은행과의 금융거래가 사실상 중단되고 있다. 러시아 현지와 수출입 대금이나 생활비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모든 송금 길이 막혀 피해가 커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정부나 미국 등 서방국가의 금융 제재 리스트에 올라간 러시아 금융기관은 총 12곳이다. 러시아 중앙은행, 러시아 국부펀드 국가복지기금(NWF)·직접투자펀드(RDIF), 로씨야, 스베르방크, VEB, 프롬스비야지방크(PSB), VTB, 오트크리티예, 소브콤, 노비콤. 방크로시야 등이다.

원론적으로는 제재 대상이 아닌 러시아 은행을 이용하면 된다. 시중은행들이 모든 러시아 금융기관과 거래를 꺼리고 있어 비(非)제재 은행과의 금융거래도 전면 중단된 상태다. 비제재 은행으로 보낸 돈이 제재 대상에게 흘러들어가는 등 불법 금융거래에 연루될 경우 미국으로부터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IBK기업은행이 이란 제재와 관련해 이 같은 혐의로 미 사법당국에 약 1049억 원의 벌금을 낸 전례가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전례에 비추어 제재 대상이 아닌 은행이라고 하더라도 향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금융거래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중은행에서 제재 대상이 아닌 러시아 은행으로 송금하더라도 중간 단계에 있는 씨티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같은 중개은행이 송금을 막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재대상이 계속 추가되는 등 불확실한 상황이라 중개은행에서 거래를 지연시키거나 대금을 동결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유학생과 교민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30대 러시아 유학생 권모 씨는 “한국에서 송금해주는 생활비로 지내왔는데 송금도 막히고 카드결제까지 안 되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유에서 유학생 10명 중 7명이 귀국하고 있다”며 “나 역시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한국이나 제3국으로 떠나있으려고 항공편을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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