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문제작 연극 ‘불가불가’, 새로운 버전으로 무대 오른다
이지훈기자
입력 2022-03-09 11:41 수정 2022-03-09 13:59
연극 ‘불가불가’
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 위치한 한 연습실, 장검을 든 한 남자가 서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아내를 직접 칼로 죽이는 계백장군을 연기하는 배우1(정홍구)이다.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고 헤매는 그를 연출가가 수차례 다그치고…. 이어진 다음 장면에서 배우5(주성환)가 등장한다. 조선말의 신하를 연기하는 배우5는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본인 조선 총독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가불 가(不可不 可·불가피하니 가능하다)’와 ‘불가 불가(不可 不可·절대 불가하다)’를 내뱉는다. 이를 지켜보던 배우1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와 손에 쥔 장검을 머리 위로 올려 배우5의 목을 내리친다.
검열이 일상이던 1980년대 정치적 탄압에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를 풍자한 연극 ‘불가불가’가 30여 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다. 26일부터 서울시극단이 올리는 연극 ‘불가불가’는 극작가 이현화가 쓴 원작이 각색되어 무대에 오른다. 작품엔 황산벌전투, 무신정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5가지 역사적 상황에서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88년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받고 1987년 서울연극제에서 수상했다.
각색은 연극 ‘조치원 해문이’ ‘닭쿠우스’ 등으로 알려진 이철희 연출이 맡았다. 각본은 다소 바뀌었으나 로그라인은 ‘배우1이 배우5의 목을 베는 이야기’ 그대로다. 그는 “과거 이 작품은 정치 검열에 반해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비판했다면 이번엔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서 자기 입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3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이다 보니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었다. 1980년대와는 달라진 지금의 정치 현실과 사회상을 반영했다. 또 한자어로 쓰인 대사들을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희(戲)는 희인 것을’이라는 표현을 ‘장난은 장난인 것을’로 고치는 식이다. 이철희 연출은 “충분히 역사나 한자 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세대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서 한글로 이해하기 쉽게 풀려고 했다”고 말했다.
각색 장면 중 대표적인 건 일본군이 독립군의 아내를 전기로 고문하는 장면이다. 연극이 발표됐을 당시, 반라의 여성이 공중에 매달려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많은 논란을 빚었다. 작품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철희 연출은 “당시 극에서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을 왜곡할 순 없었다”며 “연극적 놀이성을 기반으로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장면을 새로 꾸몄다”고 했다. 독립군의 아내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그대로지만 고문 장면만 남성 배우가 잠시 대체하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이 극의 백미(白眉)로 여겨지는 ‘커튼콜 없는 엔딩’도 바뀐다. 배우가 외치는 한 줄 대사로 끝나버리는 연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이철희 연출은 “이런 상황조차도 연극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엔딩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서울시극단 소속 배우들이 연극 ‘불가불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 위치한 한 연습실, 장검을 든 한 남자가 서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아내를 직접 칼로 죽이는 계백장군을 연기하는 배우1(정홍구)이다.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고 헤매는 그를 연출가가 수차례 다그치고…. 이어진 다음 장면에서 배우5(주성환)가 등장한다. 조선말의 신하를 연기하는 배우5는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본인 조선 총독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가불 가(不可不 可·불가피하니 가능하다)’와 ‘불가 불가(不可 不可·절대 불가하다)’를 내뱉는다. 이를 지켜보던 배우1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와 손에 쥔 장검을 머리 위로 올려 배우5의 목을 내리친다.
검열이 일상이던 1980년대 정치적 탄압에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를 풍자한 연극 ‘불가불가’가 30여 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다. 26일부터 서울시극단이 올리는 연극 ‘불가불가’는 극작가 이현화가 쓴 원작이 각색되어 무대에 오른다. 작품엔 황산벌전투, 무신정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5가지 역사적 상황에서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88년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받고 1987년 서울연극제에서 수상했다.
서울시극단 소속 배우들이 연극 ‘불가불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각색은 연극 ‘조치원 해문이’ ‘닭쿠우스’ 등으로 알려진 이철희 연출이 맡았다. 각본은 다소 바뀌었으나 로그라인은 ‘배우1이 배우5의 목을 베는 이야기’ 그대로다. 그는 “과거 이 작품은 정치 검열에 반해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비판했다면 이번엔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서 자기 입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3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이다 보니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었다. 1980년대와는 달라진 지금의 정치 현실과 사회상을 반영했다. 또 한자어로 쓰인 대사들을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희(戲)는 희인 것을’이라는 표현을 ‘장난은 장난인 것을’로 고치는 식이다. 이철희 연출은 “충분히 역사나 한자 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세대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서 한글로 이해하기 쉽게 풀려고 했다”고 말했다.
각색 장면 중 대표적인 건 일본군이 독립군의 아내를 전기로 고문하는 장면이다. 연극이 발표됐을 당시, 반라의 여성이 공중에 매달려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많은 논란을 빚었다. 작품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철희 연출은 “당시 극에서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을 왜곡할 순 없었다”며 “연극적 놀이성을 기반으로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장면을 새로 꾸몄다”고 했다. 독립군의 아내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그대로지만 고문 장면만 남성 배우가 잠시 대체하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이 극의 백미(白眉)로 여겨지는 ‘커튼콜 없는 엔딩’도 바뀐다. 배우가 외치는 한 줄 대사로 끝나버리는 연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이철희 연출은 “이런 상황조차도 연극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엔딩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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