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노예 들어와” 메타버스로 번진 청소년 대상 성범죄

이채완 기자 , 김윤이 기자

입력 2022-03-08 03:00 수정 2022-03-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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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자’로 접속한 기자에게 “전화번호와 몸 사진 보내 달라”
사용자 80%가 미성년인 ‘제페토’… 신체사진 등 요구 게시물 쏟아져
청소년에 아바타 성행위 요구도… 가입자 인증 없어 범죄 악용 우려
전문가 “아바타 성범죄 처벌 공백”





“전화번호랑 몸 사진 보내줘.”

1일 저녁 네이버의 메타버스(디지털 가상 세계) 서비스 ‘제페토’에 접속한 남성 아바타 A는 동아일보 기자가 메신저로 인사하자 ‘여자친구를 구한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A는 이내 “‘폰×’(통화로 이뤄지는 성적 행위)를 하자”면서 아바타 아이템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다른 남성 아바타 B는 곧바로 나이를 캐물었다. 기자가 ‘10대’라고 하자 B는 “나는 스물한 살”이라며 “야한 것을 좋아하느냐”고 했다.

10대 사용자가 많은 메타버스가 미성년자를 타깃으로 한 성범죄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메신저 앱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뤄졌던 디지털 성범죄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 아바타 성행위 요구하기도
동아일보 취재 결과 국내 최대 메타버스 서비스이자 사용자의 80%가 미성년자인 제페토에서 아동 청소년에게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는 게시물이 다수 발견됐다.

특히 ‘기프티콘’을 주겠다며 청소년을 유혹하는 게시물이 많았다. 속옷차림의 한 남성 아바타는 “열네 살 미만의 초등학생 ‘노예’를 구한다”며 “나를 만족시키면 4만 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주겠다”고 했다. 2008년생 이용자와 나눴다는 노골적 성적 대화를 캡처해 올린 게시물도 있었다.

청소년에게 접근한 범죄자는 세밀한 동작이 가능한 아바타의 특징을 악용해 가상현실 공간에서 성적 행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제페토에는 아바타끼리 성행위 동작을 하는 게시물이나, 속옷 차림 아바타 여럿이 나란히 선 사진과 함께 “노예들을 모집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 운영사는 ‘나 몰라라’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 측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페토는 성적인 단어를 금칙어로 지정하고 인공지능(AI)으로 모니터링한다지만 단어 사이에 다른 글자를 끼워 넣으면 피할 수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가입자 본인 인증도 하지 않는 탓에 나쁜 목적을 가진 성인이 미성년자라고 속이고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프로필에 거짓 정보를 입력해도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

메타플랫폼(옛 페이스북)의 경우 아바타 간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가상 세계 앱 ‘호라이즌’에 ‘아바타 간 거리 두기’ 기능을 도입했지만 제페토 측은 이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제페토 측은 “음란 영상이나 대화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이용자끼리 영상이나 음성을 주고받는 것을 모두 막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 메타버스 맞는 처벌법 마련돼야
실제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를 제페토 대화방에 초대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메시지와 성착취물을 전송한 피의자가 지난해 말 성착취물 소지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해 5월에는 게임 아이템을 미끼로 제페토 대화방을 통해 노출 사진을 전송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메타버스 성범죄는 부모들이 알아차리거나 대응하기 쉽지 않은 탓에 실제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성범죄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메타버스의 특성을 고려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타버스에서도 청소년에게 성적 욕망, 수치심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하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아바타를 상대로 이뤄진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엄연히 정신적 충격을 입음에도 불구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어린이 외양을 가진 아바타를 상대로 이뤄질 경우 아동 성착취물로 분류해 처벌하거나 대화에서 성희롱을 하는 경우 등에만 처벌이 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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