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내 자리’ 파괴… 다리 쭉 뻗고, 출근전 앱으로 찜

서형석 기자

입력 2022-03-05 03:00 수정 2022-03-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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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코로나로 달라지는 사무실 고정관념
최태원 회장 “일하는 방식 혁신”… SK이노, 지정된 ‘내 자리’ 없애
삼성전자 ‘어디서든 일한다’ 정책… “카페형 사내 자율 근무존 마련”
대기업들 ‘거점 오피스’ 만들어… 장소 선택권 등 부여해 효율 향상


서울 종로구 CBRE코리아 사무실에서 업무환경 전략(WPS)을 맡고 있는 김형주 이사가 서있거나(위 사진), 다리를 뻗은 자세(왼쪽 사진)로 일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이 사무실은 업무 성격이나 직원들의 수요를 반영해 전화부스 형태의 회의실(오른쪽 사진)처럼 다양한 형태로 꾸며졌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도서관, 카페, 공항 라운지, 전화 부스…. 사무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책상과 의자를 다양하게 바꾸거나 직원들이 매일 다른 자리에서 일하도록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이유는 뭘까.》

사무실의 이유 있는 변신


네모난 책상에 똑같이 생긴 의자. ‘사무실’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 사무실을 출근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업무효율을 이전보다 끌어올리는 시도가 재계에 확산하고 있다. 서서 일하건, 두 다리를 쭉 뻗건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디자인이 세련된 사무용 가구를 들여놓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기업들도 업무 성격에 맞는 ‘맞춤형 환경’을 컨설팅 받는 시대다.
○ SK에서 삼성까지, 재계는 ‘사무실 혁명’ 중
“이 많고 많은 건물 중 내 자리 어디 없나.”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취업난 속 도심에 빽빽이 들어선 빌딩들을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이다. 하지만 ‘내 자리’를 없앤 기업도 있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에서 근무하는 SK이노베이션 임직원들은 올해 4월이면 3년째 ‘내 자리’가 없다. 명패는 물론이고 자리를 구분하는 가벽(파티션)을 찾기도 어렵다. 그 대신 출근 때마다 앉고 싶은 자리를 도착 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지정한다. 사옥에 도착하면 우선 사물함들을 모아둔 곳부터 찾아간다. 개인 사물함에서 노트북PC와 업무에 필요한 자료들을 챙겨 예약해 둔 자리에 앉는다. 화창한 햇살을 받고 싶다면 창가에, 홀로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다소 어두운 구석자리를 고르기도 한다. 서서 일하고 싶을 때는 높낮이 조절 책상을 쓸 수도 있다. 옆자리 직원은 매일 바뀌고, 처음 마주하는 부서 직원과 소통할 기회도 자연스레 생긴다.

SK이노베이션의 ‘내 자리 파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제안이다. 최 회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같은 조직과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일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주문했다. 협업과 공유를 업무공간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 과제 중 하나로 ‘워크 프롬 애니웨어(Work from anywhere) 정책’을 제시했다. 꼭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조직원들에게 “카페형이나 도서관형의 사내 자율 근무존을 마련하겠다”고 알렸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근무환경 구축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사무실 혁명’은 삼성전자 인사팀장,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을 지낸 ‘인사통’ 성인희 사장이 이끌고 있다. 성 사장은 올해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조직문화혁신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 업무환경 개선으로 경영성과도 상승

업무환경 개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전문업체 CBRE는 2019년부터 국내에서 ‘업무환경 전략(WPS)’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다양한 사업경험을 기반으로 한국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조직이다. CBRE 외에도 경영 컨설팅회사 3, 4곳이 업무환경 개선을 미래 신사업으로 꼽을 정도로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업무 환경 개선 수요가 많다.

다국적 정보기술(IT) 업체 A사는 2020년 한국지사의 신사옥을 마련하면서 CBRE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CBRE WPS팀은 대면 인터뷰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전 임직원과 각 부서 의견을 물었다. 기존 업무환경에서 불편했던 점이 어떤 것인지와 함께 동선 최소화, 공간 효율화 같은 ‘새 사무실’에 대한 바람도 들었다. 이 회사는 도서관, 카페, 공항 라운지, 전화 부스 등 파티션을 없앤 다양한 형태의 사무실을 조성했다. 당초 계획보다 좌석 수를 11% 줄이며 아낀 공간은 카페나 회의실 등으로 꾸몄다.

환경개선 결과 임직원의 82%가 새 환경에 만족했다. 71%는 부서 간 협업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사무실 만족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채용 시 지원자 수가 이전보다 5배나 늘어나기도 했다.

IT기업 B사는 사무실 개선으로 업무생산성이 26% 올랐고, C은행은 연간 2400만 원씩 들던 사무실 구조변경 예산을 아끼게 됐다. 지난해 말까지 CBRE를 통해서만 24개 기업이 컨설팅을 받았다. 김형주 CBRE 이사는 “임직원들이 바라는 업무환경과 견해를 잘 조사, 분석해서 그 기업만의 특화된 업무환경을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재택근무 확대도 역설적으로 업무환경 개선 수요를 키우고 있다. 재택근무는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효율적 근무 방식으로 안착하고 있지만 반드시 대면 협업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이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포스코 등은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심 주요 지점에 ‘거점 오피스’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 이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들의 거점 오피스는 구성원들에게 일하는 방식과 장소에 대한 선택권과 자율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업무환경을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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