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슬림과 공존 해법 찾으려 사원 100곳 누볐죠”

김재희 기자

입력 2022-03-03 03:00 수정 2022-03-0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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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출간, 이수정 서강대 연구원 인터뷰
“15만 그들도 필수 노동력인데, 코로나후 차별적 시선 더 심해져
사원 설립 갈등, 정부가 조율을”



2018년 6월 예멘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뒤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 논란이 불거졌다. 이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집회가 열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7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메디치)을 최근 펴낸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37)이 국내 이주 무슬림을 인터뷰하기로 작정한 계기다.

당시 그는 국내 이슬람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기 위해 2018년 초부터 이슬람 사원과 예배소를 찾아다녔다. 거대한 돔이나 첨탑을 기대한 그가 맞닥뜨린 건 간판도 없이 옥탑이나 지하에 숨어든 예배소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이슬람 사원인 서울중앙성원에서 만난 그는 “건축물 연구를 접으려던 차에 예멘 난민 사태가 터졌다”며 “다양한 국적이나 종교를 가진 이주민이 늘고 있는 한국에서 장소보다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충청도의 한 예배소에서 무슬림들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위 사진)은 “경남 김해시의 한 예배소에서 이슬람 소수 종파인 ‘바렐비파’를 만났을 때 ‘이런 소수 종파 신도들까지 한국에 왔구나’라는 충격을 받았다. 이주 무슬림들은 우리 주변에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수정 연구원 제공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무슬림은 약 15만 명으로, 전국의 이슬람 종교시설은 150개가량 된다. 이 연구원은 2018년부터 2년간 이슬람 종교시설 100여 곳을 다니며 무슬림 이주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한국인과 겪는 갈등 혹은 차별의 경험, 무슬림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신간에 담았다.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서 비롯됐지만 팬데믹으로 더 심화된 양상이다. 지난해 5월 강원 강릉시에서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 식당에 모인 무슬림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터진 뒤 주변 시선은 특히 곱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공장에 다니는 무슬림 노동자가 ‘사택 밖으로 나가면 해고하겠다’는 회사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종교모임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외출을 금지시킨 거죠. 경기도가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한 것에 억울함을 호소한 분도 있었어요.”

지난해에는 대구 경북대 앞에 이슬람 사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경북대로 유학을 온 무슬림 학생들이 2014년부터 사원 설립을 추진했는데 인근 주민들이 소음과 지역 슬럼화를 이유로 반대에 나선 것. 주민들은 공사장 입구에 차를 세워 공사를 막았다. 충돌이 커지자 지방자치단체는 무슬림 학생들에게 주민들과 합의하라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 연구원은 “정부가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이슬람 사원 설립을 놓고 갈등이 생겼을 때 정부 주도로 중재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한다.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린 영국 런던 킹스턴어폰템스 지역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이슬람 단체와 정부 간 소통기구인 ‘DIK’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중재위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토론회를 열어 합의점을 찾아간다. 한국도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민을 우리가 양보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협의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상황에서 이주민과의 공존은 필수가 됐다는 것.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을 채우는 필수 노동력이 됐어요. 무슬림이 유입돼 공실이 사라지고, 죽었던 상권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왜 이들이 여기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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