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소리꾼이 토해낸 80대 英리어왕의 광기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3-03 03:00:00 수정 2022-03-03 0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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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17일부터 창극 ‘리어’ 공연
셰익스피어 비극, 우리 소리에 담아
성별-나이 안 가리고 폭넓은 연기
“춘향가 8시간 완창 기대하세요”


창극 ‘리어’에서 주연을 맡은 김준수가 공연 하이라이트로 꼽은 1부 후반부 독창 파트를 연습하고 있다. 그는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가 분노, 회한에 휩싸여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버티는 모습을 우리 소리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제공

소리꾼 김준수(31)는 무대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서편제’의 남자아이 동호부터 ‘트로이의 여인들’의 젊은 여성 헬레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기 폭은 넓다. 17일 개막하는 창극 ‘리어’에서는 80대 노인 리어왕을 연기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1일 그를 만났다.

“과거 여성이나 어린아이를 연기했을 때처럼 의식적으로 리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리어 하면 노인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저절로 등이 굽고 몸이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노인을 연기하는 그의 몸짓이 작위적으로 바뀌는 걸 경계하기 위해 연출가 정영두는 한 영상을 보여줬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것이었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는 움직임을 활용해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령 리어가 미쳐갈 때도 무의식 중 나오는 몸짓이 있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찾아가는 중입니다.”

창극 ‘리어’는 셰익스피어 비극을 우리 언어와 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각본은 ‘3월의 눈’을 쓴 배삼식, 작창(作唱)은 한승석, 작곡은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정재일이 각각 맡았다. 김준수가 연기하는 리어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 딸에게 속아 분노로 점점 미쳐가는 인물. 극이 진행될수록 격해지는 감정을 소리에 담아 쏟아낸다. 1막 후반부에서 증오와 광기를 품은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극의 백미(白眉)다.

“‘지금 제게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로 시작하는 소리에서 믿었던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리어가 간신히 버티죠. 측은지심을 느끼게 돼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서른한 살 소리꾼’이 생경할 수 있겠지만 김준수는 여러 상을 휩쓴 실력파 국악인이다. 2012년부터 2년 연속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은상과 금상을 받았고 2013년 국립국악원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퓨전국악밴드에서 활동하고 창극에 출연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최장 8시간에 달하는 춘향가 완창(完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천생 소리꾼이다.

“4년 전 첫 완창을 하고 나서 2년 내 또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부’인 완창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17∼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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