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펀드 41% 폭락-환매중단… ‘개미’의 눈물

박민우 기자 , 이상환 기자 , 송혜미 기자 , 신지환 기자 , 부산=김화영 기자

입력 2022-03-03 03:00 수정 2022-03-0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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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금융제재 본격화… 1628억 투자 9개 펀드 불안
러 정부, 외국인 자산 회수 제한… 최대규모 한화 등 4곳 환매중단
MSCI, 러 신흥국지수 제외 검토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국내에서 판매된 러시아 펀드들의 환매도 잇달아 중단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 증시 폭락으로 펀드 수익률이 40% 넘게 폭락한 가운데 1600억 원이 넘는 펀드 자금이 묶이게 돼 국내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용되는 해외 주식형펀드 중 러시아 펀드는 상장지수펀드(ETF) 1개를 포함해 9개이며 설정액은 1628억 원에 이른다.

9개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41.3%로, 올 들어서만 펀드 자산이 반 토막 났다. 전쟁이 발발한 24일 러시아 증시가 39% 이상 폭락하는 등 현지 증시가 고꾸라진 탓이다.




지난달 28일부터 러시아 증시가 문을 닫은 데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 정부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의 자산 회수를 제한하자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러시아 펀드의 환매를 무기한 중단하고 나섰다.

규모가 가장 큰 ‘한화러시아’(590억 원)를 운용하는 한화자산운용은 2일 해당 펀드의 신규 설정과 환매 중단을 결정했다. 이 펀드의 러시아 주식 투자 비중은 56.6%로, 지난달 28일 신청분부터 환매 중단이 적용된다. 신한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도 이날 러시아 펀드의 환매 중지를 결정했다. KB자산운용은 앞서 지난달 25일부터 러시아 펀드 환매를 무기한 연기했다.

러시아 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운용사 5곳 가운데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제외한 4곳이 펀드 환매를 중단하면서 설정액 기준 1183억 원의 투자금이 당장 묶였다. 미래에셋운용 관계자는 “당사 펀드가 투자한 러시아 주식의 90%가 영국 증시에 상장돼 있어 아직 환매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영국에서 러시아 주식 거래가 중지되면 펀드 환매도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주식 ETF도 거래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거래소는 ‘KINDEX 러시아MSCI’ ETF의 괴리율(지표 가치와 시장 가격의 차이)이 30%를 넘자 투자유의종목 지정을 예고했다. 이날 이 ETF는 16.68% 급락했다.

여기에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러시아를 신흥국지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가 지수에서 제외되면 대규모 자금 이탈로 러시아 증시와 관련 펀드는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 “러 수출대금 못받으면 어쩌나” 비상


한국 은행들도 일제히 러 금융기관과 거래 중단
일부는 전직원 무급휴가도 검토
유학생들도 생활비 못받아 애로




러시아 유학생 아들을 둔 A 씨는 지난달 28일 국내 시중은행을 통해 러시아 현지 스베르방크 계좌로 아들의 생활비를 보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인 2일 A 씨는 “오늘부터 스베르방크 등 러시아 은행으로 송금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금융 제재에 한국이 동참하면서 2일부터 국내에서도 러시아 주요 은행들과의 금융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러시아 현지와 수출입 대금과 유학비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송금 길이 막혀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금융 제재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제재 대상인 7개 러시아 은행별로 거래 중단 시기를 다르게 정했다. 하지만 국내 은행 대부분은 당장 2일부터 제재 대상인 러시아 7개 은행과의 거래를 일제히 중단했다. 5대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은행은 제재가 유예된 현지 5개 은행에 대해서도 거래를 중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큰 만큼 선제적으로 모든 제재 대상 은행과의 거래를 중단시켰다”며 “개인 송금과 기업 간 신규 거래는 할 수 없고 기존 계약만 유예기간 내에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제재가 현실화되면서 기업들과 금융소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러시아 현지에 친척이 있는 B 씨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현지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송금까지 갑자기 막히니 걱정이 크다”며 “가상자산을 보내거나 교민들을 통해 암암리에 돈을 보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화장품을 수출하는 C사는 수출대금 회수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전 직원 무급휴가를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95% 이상을 차지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수산물을 수출하는 부산 중소기업 D사도 수출대금을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달 선박으로 수출한 수산물이 다음 달 초 러시아에 도착해도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8일까지 금융감독원 비상금융애로센터 등에 접수된 러시아 수출통제, 무역투자, 금융제재 관련 기업 애로사항은 총 374건이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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