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으로 만나는 ‘젊은 리어왕’…서른살 소리꾼 김준수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3-02 13:46 수정 2022-03-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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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에서 17일 개막하는 창극 ‘리어’에서 리어를 연기하는 소리꾼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

소리꾼 김준수(30)는 무대에선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흥보, 몽룡 같이 젊은 남성이 ‘맡을 법한’ 배역뿐 아니라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패왕별희’의 우희, ‘서편제’의 어린 동호까지. 이번엔 본인 이력상 최고령 인물을 맡았다. 창극 ‘리어’에서 리어 역을 연기하는 그를 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여성이나 어린 아이를 연기했을 때처럼 오히려 리어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리어하면 늙은 노인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절로 등이 굽고 몸이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배역을 인위적으로 연기하려고 하다보니 몰입감을 해치더라고요.”

서른 살의 김준수가 노인을 꾸미려 만들어내는 작위적인 몸짓을 경계하기 위해 연출가 정영두는 그에게 최근 한 영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평소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동작들,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활용해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령 리어가 미쳤을 때도 넋이 나간 듯한 몸짓도 있겠지만 무의식 중에 나오는 움직임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찾아가는 중입니다.”

창극 ‘리어’ 연습에 한창인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에서 올리는 창극 ‘리어’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우리의 언어와 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연출은 현대무용가 정영두, 각본은 ‘3월의 눈’을 쓴 배삼식, 작창(作唱)은 한승석 중앙대 교수, 작곡은 ‘기생충’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인 정재일이 맡았다. 김준수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 딸에게 속아 분노로 점점 미쳐가는 리어를 말과 소리로 연기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리어는 격해지는 감정을 소리에 담아 쏟아내게 된다. 특히 1막 후반부, 증오와 광기, 파멸의 소용돌이를 내면에 품은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극의 백미(白眉)다.

“‘지금 제게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로 시작하는 소리예요. 하늘에게 애원하기도 하고 자기를 배신한 딸들을 원망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간신히 버티는 리어에게서 안타까움,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서른 살 리어’ 만큼이나 ‘서른 살 소리꾼’도 생경하다. 하지만 김준수는 젊은 나이에도 각종 상을 휩쓴 베테랑 국악인이다. 동아국악콩쿠르에서 금상(2013년)과 은상(2012년), 2013년 국립국악원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선 금상을 받았다. 퓨전국악밴드를 만들고 각종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창극 무대에도 서는 그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뮤지션이지만, 여전히 최장 8시간에 달하는 춘향가 완창(完唱)을 목표로 삼는 소리꾼이다.

“2018년에 첫 완창을 하고 나서 2년 안에 또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퓨전 국악이나 창극 같은 공연도 좋지만 전 소리꾼이거든요. 많이 늦지 않은 시기에 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부’인 완창에 또 도전할 계획입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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