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배역 소화 아들 대견” “아버지 혼신 연기에 배우 꿈”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3-02 03:00:00 수정 2022-03-02 03: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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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연극상 최초 ‘父子 연기상’ 박지일-박용우
아들 첫 연기 보고 기뻤다는 아버지
집안 반대로 무대인생 고민할 때 18년 전 동아연극상은 큰 응원군
아버지 인정 받고 예종 진학한 아들
공연 뒤 탈진하신 모습 아직 생생… 한 무대서 앙숙연기도 보러오세요


부자(父子) 배우 박지일(오른쪽)과 박용우는 서로를 ‘용우 아버지’ ‘박지일 플러스알파’라고 부른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로이(박지일), 벨리즈(박용우)로 분장했다. 박지일은 “나이 든 배우로서 이제 막 꿈을 펼치기 시작한 젊은 배우인 아들이 참 부럽다”며 웃었고, 박용우는 “아버지 말씀처럼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먼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올 것이 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목전에 둔 고3 아들은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당황했다.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무대를 숨죽여 보던 어린 아들이 배우를 하겠다니…. 아들은 수년 뒤 배우의 꿈을 이뤘고, 올해 1월에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18년 전 아버지가 탔던 바로 그 상이다.

동아연극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박지일(62)과 박용우(33) 이야기다. 두 배우를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박용우에 대한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이랬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여러 배역을 유연하게 소화해 작품의 받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심사평을 접한 둘은 놀랐다. 박지일이 아들에게 늘 건네던 조언과 같았기 때문이다.

“배역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줄이고 역할의 전형적인 특성, 보편성을 살려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 왔죠. 그런데 용우가 그런 연기를 해냈다니 감개무량했습니다.”(박지일)

“저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보다 배역이라는 가면 뒤에 잘 숨었을 때 쾌감을 느껴요. 직접 해보니 아버지 말씀 그대로더라고요.”(박용우)

지금은 아들의 무대를 봐도 전혀 떨지 않는 박지일이지만 처음부터 강심장은 아니었다. 특히 10여 년 전 입시를 앞둔 아들의 ‘첫 연기’를 지켜봤을 때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연기를 가르쳐주던 그때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배우를 하고 싶다는데 재능이 없을까 봐…. 재능이 모자라는 배우는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요. 처음엔 독백을 시켰다가 다르게 바꿔 이것저것 해보라고 했죠. 근데 그걸 해내는 거예요. 자신을 변화시켜 수용하는 게 배우의 능력이거든요. 속으로 굉장히 기뻤습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아들은 그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했다. 그런 아들과 달리 박지일은 오랜 시간 아버지의 반대를 견뎌냈다. 한창 활동하던 중에도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그 무렵 받은 동아연극상은 ‘연기를 계속하라’는 묵시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안겨준 연극 ‘서안화차’의 주인공 ‘상곤’을 연기했을 때였죠. 그땐 무대에서 내려올 때 몸에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으면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박용우도 그때 기억은 생생하다.

“공연 끝나고 분장실이었나? 아버지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계단에 걸터앉아 계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정말 멋있었어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에서 흑인 간호사 ‘벨리즈’(박용우·왼쪽)가 에이즈에 걸린 백인 변호사 ‘로이’(박지일)를 돌보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두 사람은 2월 28일 막을 올린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에 서고 있다. 지난해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오다’를 함께한 후 두 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1985년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 인종차별, 종교 문제를 짚으며 배제와 용서, 화합을 그린 대작으로 지난해와 올해 두 파트로 나눠 각각 공연한다. 박지일은 에이즈에 걸린 극우주의자 백인 변호사 ‘로이’ 역을, 박용우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흑인 간호사 ‘벨리즈’ 역을 맡았다. 둘은 서로를 혐오하는 앙숙이다. 욕하고 싸우는 장면도 숱하다.

“연습 때문에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 붙어 지냈어요. 처음엔 ‘사내 연애’하는 것처럼 멀리서 눈만 마주쳤는데 이젠 다른 배우들도 ‘선생님’ 대신 ‘용우 아버지’라고 불러요.”(박용우)

“용우는 제게서 물려받은 것도 있겠지만 성실함과 노력으로 실력을 갖춘 배우예요. 그러니까 ‘박지일 플러스알파’인 거죠(웃음).”(박지일)

3월 27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3만∼6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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