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자 늘자 ‘주류제조키트’ 인기…미성년자 구매 무방비 우려

이기욱 기자

입력 2022-02-27 18:22 수정 2022-02-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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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사는 A 씨(42)는 지난달 가족 모두가 확진돼 재택치료를 하느라 외출이 불가능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서 술도 함께 시키려했지만 대면으로 신분증을 확인해야 했다. A 씨는 온라인으로 막걸리 키트를 알아봤다. 별도의 성인 인증 없이 키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대학원생 남장현 씨(26)도 14일 미국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하던 중 온라인으로 수제맥주 제조키트를 구매했지만, 구매 과정에서 성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남 씨는 “주소만 입력했더니 구매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최근 연일 10만 명을 웃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자가격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집에서 술을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주류제조키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키트는 그 안에 담긴 맥주 원액이나 막걸리 분말을 구매자가 직접 물과 섞은 뒤 상온에서 일정 기간 발효시키면 술이 되는 방식이다. 주류를 구매하는 것과 다름없지만 일부 온라인 판매처에서는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 미성년자도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동아일보 기자가 둘러본 온라인 판매처 10곳 중 5곳에서 누구나 쉽게 키트를 살 수 있었다. 최대 23L를 제조할 수 있는 맥주 원액이 담긴 캔은 가격이 2만 원대에 불과했다. 별도의 본인 확인 과정이 없는 비회원으로 주문하고 결제 방식을 무통장 입금으로 선택해도 주문이 가능했다. 주류제조키트의 경우 별도의 성인 인증없이 미성년자가 직접 술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이 시행하는 주류의 통신판매에 대한 명령위임 고시에 따르면 온라인 주류 판매 및 배송은 전통주만 가능하며, 미성년자에게는 판매할 수 없다.

하지만 국세청이 주류제조키트 판매를 제재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주세법에 따르면 주류제조키트가 주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알코올이 없는 원료만 판매하기 때문에 주류제조키트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이와 비슷한 형태로 ‘수제맥주키트’라고 불리는 캡슐형 수제맥주 제조기는 주류에 포함된다. 2019년 제조기가 주류로 인정되지 않아 제조사가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결과 제조기를 판매할 수 없던 상황을 개선하고자 주세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개정 취지로 수제맥주키트를 주류에 포함시키면 미성년자의 주류 구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주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추가적인 원료 주입 없이 용기 내에서 발효돼 최종적으로 알코올분 1도 이상의 음료가 되는 것이 주류에 해당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제조기는 발효까지 완료된 재료가 담긴 캡슐을 기계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하면 술이 나오지만, 주류제조키트는 구매자가 직접 용기에 원료를 담고 섞어서 발효시켜야 하기 때문에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행 주세법의 잣대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키트를 사서 만들면 결국 주류와 동일하게 알코올이 포함된다”며 “술이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해악을 막겠다는 주세법 취지에 따라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도록 키트도 주류에 포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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