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으로 덮힌 설악산 만경대와 용대리 황태마을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입력 2022-02-26 14:00:00 수정 2022-02-2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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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 설악산 깊은 숲 속엔 아직도 흰 눈과 얼음이 덮여 있다. 강원 인제군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수렴동 계곡이 펼쳐진다. 흰 눈 위로는 따스한 햇살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고, 계곡의 얼음장 밑으로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늦추위에 계곡의 얼음은 쩌렁쩌렁 갈라지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막을 수 없다. 백담사 입구 인제 용대리 마을 황태 덕장에는 매서운 바람 속에서 황태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오세암 만경대
백담사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潭)이 100개가 있는 곳에 사찰을 세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은 수렴동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수많은 담과 소,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수렴동 계곡은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과 더불어 대표적인 설악의 계곡이다. ‘수렴(水簾)’은 ‘물로 된 발’이라는 뜻으로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산이 한번 돌면 물도 한번 구비치고, 돌은 기묘함을 보여준다. 물은 수렴이 되기도 하고, 뿜어내는 폭포가 되기도 하며, 누워서 흐르는 폭포가 되기도 한다.” (홍태유 ‘내재집’·1730년)

조선 중기의 문신 홍태유(1672~1715)는 ‘유설악기(遊雪嶽記)’에서 “금강산의 명성은 중국까지 퍼졌으나 설악산의 승경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적으니, 산 가운데 은자”라고 했다. 그는 특히 수렴동 계곡의 폭포가 발처럼 흘러내리고, 뿜어내기도 하고, 누워서 흐르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노래했다. 겨울의 수렴동 계곡에도 얼어붙은 물살의 무늬와 모양은 그대로였다.



수렴동 계곡길을 따라 걸은지 6km. 영시암을 거쳐 오세암(五歲庵)이 나타난다. 1444년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죽음을 목격한 뒤 머리깎고 출가했던 암자다. 오세암의 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어 이 절의 이름은 원래 관음암이었다.




그런데 대웅전 뒤편에 ‘동자전(童子殿)’이라는 자그마한 건물이 눈에 띄어 들어가본다. 문을 여니 밤톨처럼 파리라니 깎은 머리가 예쁜 동자가 모셔져 있다. 동자의 뒤편에 있는 나한들도 모두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라 귀엽기 그지 없다.




오세암 설화에 따르면 스님이 다섯 살짜리 동자를 데려다 절에서 키우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 장터에 갔다가 큰 눈이 내린 바람에 절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은 이듬해 봄이 돼서야 눈이 녹아 돌아올 수 있었는데, 혼자 굶어 죽었을 줄 알았던 동자가 대웅전에서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목탁을 치고 있었다는 것. 소년은 엄마라고 생각한 관음보살이 밥을 해주고, 자신을 돌봐주었다고 한다. 오세암 이야기는 정채봉 시인에 의해 성불한 소년 길손이와 눈 먼 누나 감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오세암 바로 옆 봉우리인 만경대에서 바라본 내설악의 풍경은 잊을 수 없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소청봉, 중청봉 등 설악산의 웅장한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진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를 보듯, 흰 눈이 쌓이 봉우리와 골짜기가 병풍처럼 첩첩이 쌓여 있다.


● 겨울의 맛, 황태
산행을 마친 후 백담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오면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마을이 나온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만나는 용대리 삼거리는 겨울 내내 고개를 넘어온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이다. 용대리 삼거리엔 인공폭포가 얼어붙어 있는 매바위가 있어 빙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황태 마을 뒷산에는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가 쌩쌩 돌아가고 있고, 수백만 마리의 황태를 나무에 걸어 말리는 덕장들이 즐비하다.




국내산 황태의 70% 이상을 건조하는 용대리 황태마을은 주민 80%가 황태 덕장과 판매점, 황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12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 한 겨울 용대리 덕장에서 말려지는 황태는 4000만 마리 수준.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 한 마리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명태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밤새 얼었다가, 영상으로 올라가는 낮에 녹는 것을 반복하면서 통통하게 부풀면서 포슬포슬한 황금색 속살과 향을 갖는 황태로 변신한다.



“명태는 춥지 않은 속초와 같은 동해안 바닷가에서 말리면 붉은 색을 띠고 딱딱한 ‘북어’가 됩니다. 동결건조 기계를 이용해서 사흘만에 말리면 호프집에서 안주로 즐겨 먹는 ‘먹태’가 되지요. 황태로 해장국을 끓이면 깊은 감칠맛이 느껴지는데, 기계로 말린 먹태로는 해장국을 끓일 수가 없습니다.”

진부령 덕장 대표 최종국 씨(53)는 “맛좋은 황태를 말리려면 공기가 맑고, 바람이 많이 불고, 일교차가 커야 한다”며 “용대리는 ‘풍대리’라고 불릴 정도로 바람이 무지무지하게 불고, 다른 곳엔 비가 와도 여긴 눈이 올 정도로 항상 춤기 때문에 황태를 말리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60년 전통의 진부령 덕장은 그의 아버지 최귀철 씨(82)가 용대리에서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황태 덕장이다. 그의 덕장에는 올해도 150만 마리의 황태가 걸려 겨울 바람에 잘 말려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용대리에서 겨울에 얼음을 만들어 속초 어시장 냉동창고에 파는 얼음공장을 했었어요. 그런데 6.25 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권유로 황태 덕장을 시작했다고 해요. 북한에서 황태를 말리셨던 분인데 속초에서 말려도 그 맛이 안나고 하다가, 진부령 고개를 넘어서 용대리에서 황태 말리기 좋은 곳을 발견하셨던거죠.”



최귀철 씨는 처음에는 동해안에서 잡힌 생태를 가져다 용대리 개울가에 담궈 꽁꽁 얼렸다가,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파내 지게로 날라서 덕장에서 말렸다고 한다. 지금은 냉동상태로 온 러시아산 명태를 곧바로 덕장에 거는 것에 비해 엄청난 수고를 해야하는 작업이었다. 3월 초까지 말린 황태는 섭씨 10도 가량의 저온창고에 보관돼 1년 내내 판매를 한다. 가공공장에서 배를 갈라 포를 뜨고, 채를 뜯고, 뼈를 발라내 고품질의 황태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명태는 정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명태를 처음에 배를 가르면 창란(내장), 명란(알)으로 젓을 담고, 서거리(아가미)는 깍두기를 담습니다. 머리는 머리대로, 뼈는 뼈대로 팔려 국물내기용이나 찜으로 먹습니다. 콜라겐 덩어리로 유명한 껍데기는 ‘황태 껍질 부각’으로 만들어져 없어서 못 팔 정도예요. 내피하고 지느러미까지 갈아서 애완견 사료로 활용됩니다.”



용대리 황태길에는 황태덕장과 황태판매점, 식당이 즐비하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겨울철 수백만 마리의 황태가 걸려 있는 덕장은 인증샷 촬영지로도 인기다. 인근 황태요리 전문점에서 정식 메뉴를 시키면 다양한 황태요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황태구이, 더덕구이는 물론 황태해장국, 황태껍질 무침, 황태채 볶음, 각종 산나물까지 정갈한 솜씨로 만든 15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부흥식당 주인 이필자 씨는 “황태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식용유와 들기름을 넣고, 양념을 발라서 만드는 황태구이”라며 “황태가 덜 말랐을 때 코다리로도 먹는데, 용대리 코다리는 시중의 코다리와 맛이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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