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된 표적단백질도 쉽게 찾아 분해… 불치병 치료 새 길 열어[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2-02-26 03:00:00 수정 2022-02-26 04: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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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표적항암제 개발 선도 ‘유빅스테라퓨틱스’
‘세포 청소부’ 이용 손상 단백질 없애… 저분자 화합물 디그래듀서로 특허
내성 생긴 암세포까지 찾아 제거… 저해제 방식 기존 항암제 한계 극복
“혈액-전립샘암 신약 개발에 초점… 치매-파킨슨병에도 적용 잠재력”


서보광 유빅스테라퓨틱스 대표(서 있는 사람)가 임직원들과 자사 ‘디그래듀서’ 기술 관련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이 회사 임직원 대부분은 연구원이다. 유빅스테라퓨틱스 제공
우리 몸의 세포 안에서는 흥미로운 현상들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손상된 단백질이나 불필요해진 단백질을 세포 내의 거대 단백질이 분해하는 작용도 그중 하나다. 분해를 담당하는 거대 단백질은 프로테아좀(proteasome). 세포 내 청소부인 셈이다. 손상된 단백질이 없어진 세포는 더 효율적으로 생명 활동을 하게 된다.

프로테아좀을 이용해 암을 일으키는 표적단백질을 분해하는 기술이 표적단백질 분해(TPD) 기술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프로테아좀이 표적단백질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특수한 화합물을 만들어 유도해 주면 표적단백질을 찾아내 분해하게 된다. 어떤 표적단백질을 겨냥하느냐에 따라 암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치료제가 없는 치매와 같은 여러 질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잠재성 때문에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한창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술이다. 화이자는 표적단백질 분해약물 개발 스타트업 ‘아비나스(Arvinas)’와 손잡고 유방암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작년 7월에 밝혔다. 국내에서는 유빅스테라퓨틱스가 가장 먼저 설립돼 관련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 기존 표적항암제의 문제점
기존 표적항암제는 암세포 내 표적단백질에 결합해 그 단백질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저해제다. 표적단백질의 신호 전달이나 필요 물질 합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암세포는 더 이상 증식을 못하거나 영양 공급이 끊겨 죽게 된다. 많은 저해제 방식의 약물이 이런 식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암세포가 조금 변형된 표적단백질을 만들어 내면 기존 표적항암제는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애초에 열쇠와 자물쇠처럼 딱 맞는 표적단백질에만 결합토록 돼 있기 때문에 표적단백질의 기능을 저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암세포에 내성이 생겼다고 말한다. 위암 등에 비해 혈액암, 전립샘암, 유방암 등에서 내성을 가진 암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빅스테라퓨틱스는 어떻게 해결하나


세포 내의 청소부인 프로테아좀이 표적단백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빅스테라퓨틱스의 기술이다. 프로테아좀은 유비퀴틴이라는 단백질이 붙어 있는 표적단백질을 골라서 분해하는데, 유빅스테라퓨틱스는 표적단백질과 유비퀴틴을 결합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저분자 화합물을 만드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디그래듀서(Degraducer)’라 이름 붙인 화합물의 한쪽은 표적단백질과 결합하고, 다른 한쪽은 유비퀴틴을 불러들이는 E3 리가제와 결합한다. 유도 미사일을 불러들일 수 있는 송신기를 표적단백질에 붙이는 기술인 셈이다.

이렇게 개발되는 ‘차세대’ 표적항암제는 내성이 생긴 암세포까지 제거할 수 있다. 표적단백질과 저분자 화합물은 느슨하게 일부만 결합된 경우에도 저분자 화합물과 연결된 물질들의 결합에는 문제가 없어 프로테아좀을 정상적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즉, 암세포가 조금 변형된 표적단백질을 만들어 내더라도 프로테아좀이 표적단백질을 찾아내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저분자 화화물로 이뤄진 디그래듀서는 세포 내에 남아서 계속 재활용되기 때문에 아주 소량만 투입하더라도 필요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빅스테라퓨틱스의 디그래듀서 기술은 미국 아비나스가 쓰는 ‘프로탁(PROTAC·단백질분해제)’ 기술과 비슷하다. 모두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의 일종이다. 미국 예일대의 크레이그 크루 교수팀 등이 2001년 프로테아좀이 특정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화합물을 만들어 프로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혈액암과 전립샘암 치료제 개발 중

유빅스테라퓨틱스의 디그래듀서 기술에는 ‘플랫폼 기술’이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표적단백질 제거로 치료할 수 있는 여러 질병의 신약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표적단백질 분해 약물의 특성이다. 서보광 대표이사(50)는 “내성이 많이 생기는 분야인 혈액암과 전립샘암 신약 개발에 우선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중인 혈액암 치료제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 중 암세포 내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우수한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으면 기존 표적항암제(저해제)인 ‘임브루비카’와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최초 임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임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8∼9년 후 신약이 나올 수 있다.

대부분의 전립샘암은 처음에는 호르몬 치료로 다스려지지만 18∼24개월이 지나면 내성이 발생한다. 내성으로 인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을 고치는 것이 목표다. 현재로선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르면 내후년부터 임상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투자사 공동 운영하다 창업


서 대표는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면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외제약과 제넥신, SK텔레콤 체외진단사업본부를 거쳐 바이오전문 투자사인 라이프코어파트너스를 공동 운영하다 2018년 독립해 유빅스테라퓨틱스를 창업했다. 서 대표는 “투자 업무를 하다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개발한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을 접하고, 우리가 만든 신약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보자며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로 미국 나스닥에 최초로 상장한 아비나스의 창업연도가 2013년이고, 다른 미국 기업인 C4테라퓨틱스와 카이메라테라퓨틱스는 모두 2015년에 생겼다. 3∼5년의 시차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창업 초기에는 관련 기술에 경험이 있는 인력이 적어 자문 교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대학 연구실에 파견된 인력들의 경험이 쌓이고, 연관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안정적인 연구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전체 직원 37명 중 28명이 연구 및 개발 인력이다.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을 목표로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최근 대신증권을 주간사회사로 선정했다.


○다양한 신약 개발 가능성

유빅스테라퓨틱스는 작년 6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 디바이오팜과 표적항암치료제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유빅스테라퓨틱스가 보유한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과 디바이오팜의 항체-약물 결합 링커 기술을 합쳐 새로운 약물 플랫폼 기술인 ‘항체-분해약물 접합체’를 개발하기로 했다. 암세포 등 다양한 표적을 공략하면서 단백질 분해 기술로 장기적인 치료 효과를 얻는 것이 목표다.

국내 면역치료제 개발기업 네오이뮨텍과도 디그래듀서 기술을 활용한 면역치료제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학계에서는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이 신약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신동윤 가천대 약대 교수(약학연구원장)는 “질환을 일으키는 단백질 4000여 개 중 기존 저해제 방식으로는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 4분의 3이나 된다”며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은 아직 치료제가 없는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에도 적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10여 개 신약이 임상에 들어가면서 표적단백질 분해 약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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