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에 던져진 ‘주 4일제’… 임금-양극화 문제 어떻게 풀까

주애진 기자

입력 2022-02-22 03:00 수정 2022-02-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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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하는 ‘주 4일제’ 선결과제는
2020년 韓 근로자 1908시간 근무… OECD 평균보다 여전히 과다노동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논의 확산… 스페인-벨기에 등서도 변화 시도
임금 줄어들면 근로자 반발 크고, 기업에 부담 땐 고용 감소 우려도


게티이미지뱅크

다음 달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 4일 근무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각각 ‘주 4.5일제’,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걸며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불을 지폈다. 노동계에서는 2004년 주 5일제 도입 이후 또 한 번 근로시간의 혁신적 단축을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실제 도입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코로나19가 앞당긴 주 4일제 논의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687시간)을 웃돌았다. 2004년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주 5일제)으로 줄었고 2018년부터 연장근로도 12시간까지만 허용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노동시간이 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2년 넘게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더 앞당겼다. 재택근무와 단축근무 확산이 노동방식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적은 해외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가을부터 기업 200곳의 신청을 받아 3년간 이어질 주 4일제 실험을 시작했다. 제도 도입으로 발생하는 기업의 손해는 정부가 일정 부분 보전해준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해 4월 ‘선택적 주 4일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하는 직장인에 한해서 주 4일 근무를 허용하고 급여를 10∼20% 삭감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벨기에는 최근 유연근무 방식의 주 4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법정 근로시간은 주 38시간으로 유지하면서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9시간 30분으로 늘리되, 근무일수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 4일제 논의가 활발하지만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신중한 모습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해 2021년 7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단,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올해 말까지 노사 합의를 통해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완벽하게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로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 “노동시간 축소보다 유연화가 먼저”



주 4일제 전면 도입에 앞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근로자가 받는 월급도 감소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51%였다. 하지만 임금이 줄어든다면 주 4일 근무를 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64%로 더 많았다. 일부 정치권과 노동계는 임금 감소 없는 주 4일제를 요구하지만 이는 기업 부담으로 이어져 고용 감소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주 4일제 도입으로 근로 환경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생산성이 높고 근무형태가 자유로운 정보기술(IT) 회사나 스타트업에 비해 전통 제조업과 중소기업들은 현재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주 4일 또는 주 4.5일제를 도입한 회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IT 업종, 스타트업이나 대기업 등으로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노동 환경을 고려해 근로시간의 양을 더 줄이기보다 시간 선택의 유연화 관점에서 주 4일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총량의 축소는 생산성 향상이 동반돼야 임금 감소 없이 가능한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모호한 상황”이라며 “첨단 산업과 공장 제조업이 공존하는 이중적 산업구조를 고려해 노사 간 자율로 적합한 근로시간의 양적 배분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근로시간 단축은 비용을 수반하는데 기업, 근로자, 정부가 이를 부담해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우선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보하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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