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에 마이크로칩 싫어요”… ‘코 무늬’에서 답 찾았다[Question & Change]

김하경 기자 , 김선미 기자

입력 2022-02-18 10:17 수정 2022-02-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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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유기견 13만 마리… 코 무늬 인식으로 주인 찾고 펫보험 가격도 내릴 수 있어

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


▶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6/111845153/1
휴대전화에서 펫나우가 개발한 앱을 켜고 강아지를 비추자 앱이 강아지 비문을 인식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펫나우 제공.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받은 CES2022 ‘최고 혁신상’을 펫나우라는 스타트업이 받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말로만 스타트업이지 규모가 꽤 큰 회사는 아닐까.

서울 서초구 AI양재허브에 위치한 펫나우 사무실에 들어서자 의구심이 무색하게 직원 규모도, 사무실 규모도 단출했다. 설립된 지 만 4년이 채 안 된, 직원 12명의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 내에선 인터뷰를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AI양재허브에 입주한 회사들과 함께 쓰는 공용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준호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CES에 전시부스를 설치하려면 수 천만 원이 들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직원들과 ‘상 받게 되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이번에 상을 받게 됐지 뭐예요. 그냥 혁신상이면 모르겠는데 최고 혁신상이어서 바로 미국 가는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최고 혁신상은 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휩쓸기 때문에 사실 꿈도 안 꿨습니다.”

CES에 갔을 때의 상황과 펫나우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어떤 점을 인정받아 CES2022 최고 혁신상을 받게 된건가.

미국은 반려동물 천국이다보니, 반려동물 관련 회사들이 상을 제법 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 목걸이 등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나왔고, ‘비문(鼻紋·코의 무늬)’과 같은 생체인식은 굉장히 혁신적이라고 느낄 만큼 없었던 기술이었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가 CES2022 펫나우 부스에서 최고혁신상 트로피를 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고 있다. 펫나우 제공.
―CES에 가서 어떤 점을 부각시켰나.

미국에 가기 전에 미국의 반려인을 인터뷰해 한국 반려인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봤다. 대체로 비슷했지만 미국이 한국보다 좀 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동물의 신원확인을 위해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의 많은 반려인들은 “우리 강아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이라며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미국은 유기동물이 1년에 1000만 마리씩 나오기 때문에 마이크로칩 삽입은 대부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관리 차원에서 쓰이고 있었다. 일반 반려인이 펫나우의 비문 인식 기술에 대해 듣더니 깜짝 놀라며 ‘이렇게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뭐하고 있는 거냐’고 하더라.

이런 반응을 듣고 ‘아이(반려견)에게 피해주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등록할 수 있고 조회할 수 있다’는 점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사실 마이크로칩의 단점은 명확하다. 반려견 몸 속에 삽입하는 것을 반려인이 굉장히 싫어하고, 침습행위라 수의사에게 가야해서 번거로운데다 비용도 10만 원가량 든다. 일반인은 마이크로칩을 인식하는 스캐너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길가다 길 잃은 강아지를 만났을 때 바로 주인을 찾아줄 방법이 없다. 결국 스캐너가 있는 동물병원이나 보호소로 데려가야 하는데, 거기로 데려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반면 펫나우의 앱은 비용도 안 들고, 아무데서나 등록할 수 있다. 신고도 바로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장점이 훨씬 많다보니 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더라.



―동물 신원인증 수단으로 왜 하필 비문을 선택했나.

사람의 경우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지문, 홍채, 귀의 정맥무늬 등 7가지가 있다. 하지만 접근성과 보편성, 편리성 등을 따졌을 때 지문이나 안면을 많이 쓴다.

강아지도 홍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람만큼 계속) 눈을 뜨지 않는다. 또 미용 전후로 얼굴의 윤곽선이 달라져 안면인식도 어렵다. 그래서 비문을 선택하게 됐다.



―비문 아이디어는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반려동물이 워낙 많은 미국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비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코에 잉크를 묻혀서 도장을 찍는 방법이 나왔는데 불편해서 더 이상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다 5년 전쯤 휴대전화에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되면서 이 기술을 동물 신원확인에 활용해보자는 니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10여 개의 회사가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인식율을 높이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초기 비문 데이터는 어떻게 확보했나.

AI는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을 할 수 있다. 사람 안면인식 관련 데이터는 전세계적으로 몇십억 장이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선명한 코 사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나랑 CTO 등이 DSLR카메라를 들고 5개월 동안 전국의 반려견 카페, 유기동물 보호소, 애견미용학원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강아지 비문사진을 찍었다. 갈만한 곳은 다 다녀보니 2만 장의 비문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더 남았다. 펫나우의 비문 인식 관련 논문이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의 심사를 통과해 게재됐는데, 당시 약 10만 개의 데이터로 AI가 학습한 결과 인식률이 98.97%로 나왔다. 하지만 이건 실험실의 데이터고, 실제 환경에서는 조명과 거리 상황 등에 따라 인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려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려견의 코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려주면 AI가 더 똑똑해져 인식율이 높아지게 된다. 데이터를 많이 올릴수록 그 자체만으로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가깝게 간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펫나우 기술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비문 인식은 물론, 비문 사진 촬영에도 AI를 도입한 것이다. 강아지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고만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3개의 AI가 강아지 모습을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코에 초점을 맞춰 선명한 사진을 찍는다. 이 AI는 촬영한 사진이 선명한지 여부까지 판단하고, 만에하나 흐릿하면 사진을 버린다. 이 모든 과정이 0.08초 안에 일어난다.


휴대전화에서 펫나우가 개발한 앱을 켜고 강아지를 비추자 앱이 강아지 비문을 인식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펫나우 제공.




―펫나우의 수익 모델은 뭔가.

보험사와 연계해 펫보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려견이 진료를 받고 보험료를 청구할 때 펫나우로 신원인증을 하면 인증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신원이 확인되면 펫보험의 가격은 내려간다. 견종마다 잘 걸리는 질환이 무엇인지 통계가 하나씩 쌓여가면서 보험사에서 수가도 정할 수 있게 된다. 펫보험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동물의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데 있다. A 강아지로 펫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B 강아지가 치료받은 뒤 A 강아지가 치료받은 것처럼 속여 보혐료를 청구해도 보험사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펫나우의 원래 창업자는 따로 있다던데.

펫나우는 내가 칩스앤미디어에서 대표이사로 있었을 때 직원으로 고용했던 후배가 2018년 8월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창업 1년 뒤인 2019년 여름, 후배가 ‘창업을 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할지 모르겠다’면서 나에게 컨설팅을 의뢰했다. 문제를 진단한 뒤 나오려 했는데, 후배가 ‘회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펫나우의 대표를 맡게 됐다.

펫나우는 본래 강아지 비문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로 플랫폼 사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비문의 인식율이 잘 나오지 않아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비문 인식율을 높이려면 기술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딥테크 회사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했다. 자금 유치도 시작하고, 사업모델도 새로 만들고, 연세대에서 AI 영상처리를 전공한 박대현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회사 규모가 작으면 인정받기 쉽지 않을텐데.

아무리 공익적인 목표가 있어도 반려인 입장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회사에 자신의 반려견 비문을 등록하는 것은 꺼림칙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의 인정도 받고, 학계로부터 기술적인 공인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과 포스코의 벤처플랫폼 지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각각 30대 1,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에도 논문을 제출했고, 두달동안 검증을 받은 후 심사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게재됐다. 최고의 학회로 꼽히는 미국 전자공학계로부터 기술적으로 공인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하나씩 쌓아나갔고, CES로 향할 자신감도 얻게 됐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가 포스코가 주최한 데모데이에서 펫나우의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펫나우 제공.




―펫나우 이전에 창업한 경험이 있나.

펫나우는 내게 세 번째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창업은 2003년 반도체 설계회사 ‘칩스앤미디어’였다. 당시에 혁신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고 운도 좀 따라서 잘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가 궤도에 오르니 재미가 없었다. 내 전공이 반도체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보니 반도체 설계가 욕심이 났다.

칩스앤미디어를 매각하고 첫 창업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렸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었고, 금융위기 등이 겹쳐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 사업을 접었다.

성공과 실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경험이 있다보니 쉬는 동안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작은회사들의 미래전략 등을 세워주거나 특허전략을 세우는 등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2000년대 초반의 제1 벤처붐 시기에 이어 현재의 제2 벤처붐 시기에도 창업을 하신건데, 첫 벤처붐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벤처버블이라고 불렸던 제1 벤처붐 때는 창업이 비교적 용이했지만 성장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다. 대부분 공학자 출신이다보니 창업을 한 뒤에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전략은 어떻게 세울지, 자금은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창업투자회사가 많지도 않았고. 망한 회사도 정말 많았다.

요즘도 내 눈높이로는 아직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굉장히 좋아졌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펫나우의 모토다. 이 모토를 추구하다보면 펫보험 비용도 저렴해져 펫보험의 대중화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올 여름에는 고양이 비문 인식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 CES에서 고양이 비문 인식 서비스를 정식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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