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창작한 ‘금성에 핀 꽃’, 뉴욕 패션무대 수놓다

홍석호 기자

입력 2022-02-16 03:00 수정 2022-02-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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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AI아티스트 ‘틸다’ 패션쇼 데뷔




“금성에 핀 꽃을 그리고 싶어.” 14일(현지 시간) 오후 7시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미국 뉴욕 패션위크 현장. 메인 스테이지에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화면 속 단발머리 여성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말하자 형형색색의 이미지가 빠르게 화면을 채웠다. 잠시 뒤 무대에 등장한 모델들은 화면 속 이미지 패턴을 디자인에 활용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초거대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AI 휴먼 아티스트 ‘틸다(Tilda)’가 데뷔한 순간이다.

AI 예술가의 등장이 현실로 다가왔다. 틸다는 LG AI 연구원 초거대 AI ‘EXAONE(엑사원)’을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 여성의 형상에 가깝지만 ‘젠더리스’ 설정이라는 게 LG의 설명이다. 틸다는 박윤희 디자이너와 함께 이번 패션위크에서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한 의상 200여 개를 선보였다. 의상에 들어간 패턴 디자인은 틸다가 만든 3000여 장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LG AI 연구원은 “초거대 AI를 시각 분야 창작에 사용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AI를 뛰어넘는 연산 및 학습능력을 갖고 있는 초거대 AI는 인간의 뇌 수준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엑사원은 약 3000억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바탕으로 언어와 이미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멀티 모달리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틸다와의 협업은 기존 패션쇼와 달랐다. 과거 디자이너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수개월, 수년간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수십 명이 협업하기도 했다. 틸다는 일당백의 모습을 보이면서 시간까지 단축시킨다. 질문을 받는 즉시 ‘금성’, ‘꽃’, ‘피다’, ‘모습’ 등의 단어를 이해하고 질문의 목적을 분석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 질문이 정교할수록 결과물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제공한다. 디자이너는 이 이미지를 패턴화해 최종 의상을 만드는 작업만 하면 된다. 박 디자이너는 “틸다와 작업한 덕에 한 달 반 만에 모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제까지의 AI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데이터베이스(DB)에서 관련 있는 캡션을 찾고, 그 캡션이 붙은 이미지를 찾아주는 정도였다. 틸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찾는 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데서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예술 분야에서 AI의 도전은 수년 전부터 여러 단계를 밟으며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주로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유명 화가의 화풍이나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 학습시켜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바둑 AI ‘알파고’를 만들었던 구글의 AI ‘딥드림’이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을 습득한 것이 대표적이다. 딥드림에 사진을 입력하면 고흐가 그린 그림처럼 바꿔준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원한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의 AI도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이 그린 것 같은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AI가 300점 이상의 렘브란트 작품을 학습해 물감의 질감, 붓의 방향 등을 익힌 결과다. 여기에는 MS의 그림 그리는 AI ‘드로잉 봇’ 기술이 적용됐다.

틸다는 한발 더 나아갔다. 말 뭉치 6000억 개 이상, 텍스트와 결합된 고해상도 이미지 2억5000만 장 이상을 학습시킨 초거대 AI 엑사원을 기반에 두고 있어서다. 특정 화풍을 비슷하게 재현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 배경이다. LG AI 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환경을 우선시한다는 특성을 가진 틸다도 단계별로 캐릭터를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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