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뛰어넘는 무대영상, 이젠 예술이 되다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2-08 03:00 수정 2022-0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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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주인공 심리 묘사하고, 북극 밤하늘 한폭 그림처럼 구현
아바타 주인공 연극도 선보여… 가상현실로 무대경계 허물어
“창작자 표현 범위 넓히는 수단”… 독립적인 예술요소로 자리잡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의 창조물인 괴물이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장면. 두 사람 뒤에 걸린 영상을 통해 오로라가 번지는 북극의 밤하늘을 표현했다. 뉴콘텐츠컴퍼니 제공

연극 ‘리차드3세’의 막이 오르면 관객은 무대 정중앙 상단에 걸린 가로 10m, 세로 5.5m 크기의 스크린을 마주한다. 왕관을 차지하려는 리차드(황정민)가 무대 위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스크린에선 죽임을 당하는 이들의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 크게 확대돼 나타난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마다 리차드의 탐욕과 잔혹함을 상징하는 가시덩굴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몇몇 가구 외엔 소품이 거의 없는 ‘리차드3세’ 무대의 핵심요소는 다름 아닌 이 영상들이다. 영상으로 리차드를 사로잡고 있는 죄책감,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 콘셉트다. 조수현 아트디렉터는 “잔혹한 행동을 일삼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리차드의 심리를 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강하자는 게 연출 의도”라고 설명했다.

영상은 무대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핵심적인 표현수단이 됐다. 2005년 국내에 본격적으로 무대영상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배우의 연기와 무대 위 실물들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연예술의 본질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창작자의 표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부상했다. 무대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무대 디자인 그 자체로 활용되는 것이다. 조 아트디렉터는 “6, 7년 전만 해도 무대영상은 전체 무대디자인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영상 예산을 별도로 책정할 만큼 독립적인 예술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무대와 영상의 만남은 화려한 볼거리를 중시하는 뮤지컬에 더욱 널리 쓰인다. 20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선 무대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을 활용해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등 작품 속 여러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실물로 구현하기 힘든 호숫가 배경이나 북극의 밤하늘을 한 폭의 그림 같은 영상으로 표현해 작품의 미적 요소를 배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켄슈타인’의 영상을 담당한 송승규 영상 디자이너는 “인간의 세상은 차갑게, 괴물이 있는 공간은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며 “독일의 표현주의나 인상주의 화풍에서 따온 그림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독일 연출가 주자네 케네디의 연극 ‘울트라 월드’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게임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가상현실에 갇힌 아바타가 주인공이다. 100평짜리 무대에서 게임이 벌어지는 가상현실을 표현한 영상은 무대와의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자네 케네디는 “새로운 기술로 무대를 꾸민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서 관객과 만난다’는 연극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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