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영감 한 스푼]

김민기자

입력 2022-01-15 11:00:00 수정 2022-01-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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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살에 MoMA 첫 회고전 연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솔직한 목소리는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관객을 만난다.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이번주 문화계에 기쁜 소식이 있었죠. 50여 년간 묵묵히 무대와 스크린에서 연기해 온 배우 오영수 씨가 한국인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배우는 물론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시할 수 없지만, 너무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대중의 인정인 것 같습니다. 과도하게 인기를 신경쓰면 자칫하다 고유의 색채를 잃을 수 있고, 그렇다고 대중을 무시하다가는 소통에 실패해 잊혀질 위험이 있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예술가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에게도 홍보와 마케팅은 언제나 큰 과제입니다. 오영수 씨의 삶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뚝심있게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도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창의성을 입증했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솔직함으로 소통에 성공한 루이스 부르주아


유칼립투스의 향기: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1.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 유행하던 사조(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와 관계 없는 예술을 했다.


2. 예술가가 사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지만,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미술사에 살아 남았다.


3.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었던 부르주아는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풀어 놓아 사조와 관계없이 관객과 소통에 성공했다.




○ 미술계의 외로운 늑대(lone wolf)



루이스 부르주아, 엄마(Maman), 1999년. 사진출처: Flickr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입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엄마’가 가장 유명한데요. 특히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이 2000년 첫 문을 열 때 이곳의 거대한 전시장인 ‘터빈홀’을 처음으로 채웠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리움미술관에도 최근까지 전시되다 호암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죠.

작품은 거대한 사이즈의 거미를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조각입니다. 가까이 보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알을 품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부르주아는 이 작품이 제목에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엄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땅을 딛고 있는 다리는 가냘프게 보일지언정 단단한 강철로 되어 있으며, 크기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죠. 그 위협적인 겉모습 속에 자식들을 부드럽게 품고 있는 모양. 때로는 연약해 애틋한 마음이 들게하지만 모든 아이를 세상에 낳아 기른 누구보다 강인한 존재, 엄마를 표현했다는 걸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표현은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에서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에는 흔히 당대 주목을 받는 흐름이나 표현 방식이 있고, 많은 작가들은 이 흐름에 올라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며 생존하기 때문이죠. 부르주아가 활동할 무렵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 대세였습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 사진출처: Flickr


추상표현주의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쉽게 말해 추상화라고 이해할 수 있고, 이들 작품에서는 작가 개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미니멀리즘 예술은 아예 제목을 ‘무제’로 하는 등, 작가를 더욱 숨기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이런 가운데 부르주아는 아주 직설적으로 삶에서 이야기를 끌어와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그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30년 간 단 8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에 익숙해져 있는 미술계 사람들에게 작품이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 그녀를 미술사가 피터 바이어마이어(Peter Weiermair)는 “20세기 조각계의 외로운 늑대(Lone Wolf)”였다고도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는 어떻게 미술계의 아웃사이더에서 주류가 될 수 있었을까요?


○ 나는 비밀 없는 여자가 되고 싶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버지의 파괴, 1974년.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부르주아가 수십 년 동안 조용히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이 많은 대중을 만난 것은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개인전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전시 개막에 맞춰 그녀는 미술저널 아트포럼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개인사를 솔직하게 털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내 모든 작품은 내 삶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그녀 인생의 어떤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들어간 것일까요?


위 사진에서 보이는 1970년대 설치 작품의 제목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파괴’(Deconstruction of Father)라고 되어 있지요. 연극 무대처럼 꾸며진 이 작품은 동그란 형체들이 식탁을 둘러싸고 있고, 식탁 위에는 해체된 듯한 무언가가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가졌던 복잡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1982년 아트포럼에 기고한 사진 에세이 ‘아동학대’. 사진출처: 아트포럼



글에서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녀의 상처는 바로 아버지의 혼외관계입니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스타일리시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겐 늘 연인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부르주아의 엄마가 병에 걸려 요양하기 위해 남프랑스로 이주한 후 일어납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집에 함께 살게 된 영어 가정교사가 아버지의 새 연인이 되었죠. 그 때의 상황을 그녀는 폴 가드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집으로 온 가정 교사 세이디(Sadie)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애인이었어요. 세이디는 우리집에 살았고, 아버지가 차를 운전하면 그녀가 조수석에 앉았죠. 엄마와 나는 뒷좌석에 앉았고, 나는 그런 엄마가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라도 아빠를 지켜봐야 그가 밖으로 돌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가 단순히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했을까요? 감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엄마의 수용,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 그 가운데서 수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회고합니다.


여기에 나를 위해 집으로 온 영어 선생님이 왜 내가 아닌 아버지에게 집중하는지, 그에 대한 질투와 배신감도 느꼈다고 하죠. 그러면서 때때로 세이디나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필터링 없는 적나라한 감정에 놀라셨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 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들더라도, 부모에 대해 가져야 하는 윤리적인 태도로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잊어버리려 하죠. 그런데 부르주아는 이러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했습니다.


부르주아는 이러한 예술가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힘든 과거와 타협할 수 없다면, 그 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 내면으로 향하기 #4 (난 네가 보여!), TURNING INWARD SET #4 (I SEE YOU!), 2007 국제갤러리 제공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ew York/SACK, Seoul 국제갤러리 전시에서는 이런 형태의 판화와 소규모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는 아버지와의 관계 말고도 자신이 삶에서 겪은 많은 감정들을 작품에 풀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드로잉들도 일상에서 기록한 것들로 그녀는 이것을 ‘생각 깃털’(thought feather)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이미지 가운데 발전되는 것은 더 큰 규모의 설치나 조각 작품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솔직함이 어떻게 그녀를 세상과 소통하게 해 준 것일지. 이해가 되시나요?


바로 감정을 파고들면서 내면 깊숙이 들어간 그녀가 ‘인간의 본질’을 마주하고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풀어서 이야기하면, 모든 인간이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지만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을 끄집어내주었고, 그 결과 관객은 그녀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거대한 거미 엄마를 보고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쉽게 작가와 감정적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 자신을 대면해 살아남은 작가들


에드바르트 뭉크, 불안 Anxiety, 1984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미술사에는 이렇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만나고 그것을 솔직한 목소리로 풀어 놓아 생존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질병으로 가족 구성원 절반을 떠나보내고 평생 불안에 시달렸던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의 공포를 대면해 세기에 남을 작품 ‘절규’를 남겼지요.


또 세상의 모든 대상을 점박이로 만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야요이 쿠사마, 사고를 겪고 평생 고통 속에 살았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또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혹은 개인으로서 외면받는 목소리를 직설적인 퍼포먼스로 풀어낸 이불 작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처와 고통을 대면하는 것은 나를 더 성장하게 해준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부르주아는 “내 작품 세계에는 외로움과 잔인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잔인함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예술은 그런 삶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치유의 방법이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1992년 뉴욕 집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국제갤러리 사진제공,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VAGA at ARS, NY


그녀는 결국 예술을 통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끌어안을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임을 묵묵히 작품으로 노래했으며 마침내 그 솔직한 이야기는 공감을 무기로 관객에게 가 닿을 수 있었습니다. 마케팅에서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예술에 적용해볼 수 있겠지요.


부르주아가 말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에 대해 대답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성공? 그게 뭔지 난 모르겠어요.


다만 우리 모두는 나이들수록 더 멋진 사람이 되죠. 마치 프랑스 와인처럼요.

요즘 나는 아주 부유한 여인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 줄로 보는 전시

갤러리에서 열리는 만큼 큰 작품보다는 컬렉터를 위한 간결한 판화와 작은 사이즈의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추천지수(별 다섯 만점) ★★★☆


전시 정보

유칼립투스의 향기: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2021. 12. 16 ~ 2022. 1. 30.
국제갤러리 K1, K3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작품수 5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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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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