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4기도 완치 사례… “기적 아닌 의지가 생명줄”

김상훈 기자

입력 2022-01-15 03:00 수정 2022-01-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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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팁]말기암은 수술 포기해야 하나
10년전만 해도 말기땐 시한부 여겨… 이젠 4기 환자도 70%는 수술치료
항암 치료로 암 순화시킨 뒤 집도… 환자 투병의지 따라 생존율 달라져
췌장암 등은 아직도 수술 어렵지만, 신약-장비 발달로 성공률 향상 추세


4기 이후 난치성 암도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암 환자를 복강경으로 수술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말기 암은 시한부 선고가 아니며 투병 의지만 있으면 암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작은 사진).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2015∼2019년)은 70.7%다. 10년 전(65.6%)보다 5.1%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30%가량은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늦은 3기 혹은 4기에 암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된 뒤여서 치료 성적이 좋지 않다.


말기에 암을 발견하면 ‘시한부 선고’로 받아들이며 비관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수술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10∼20년 전만 해도 그랬다. 당시에는 4기 암 환자의 수술이 거의 불가능했다. 배를 열었다가 암이 너무 퍼져 있어 수술을 포기하고 다시 덮는 사례가 대형 병원에서조차 매주 1, 2회 정도 발생했다.

요즘은 어떨까. 말기암 환자의 수술은 아직도 불가능한 것일까.

○ 말기 암, 수술로 완치 가능

50대 남성 이형기(가명) 씨는 6년 전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간과 폐로 암이 전이된 4기 환자였다. 흔히 말하는 말기암 환자다.

처음 이 씨를 진단했던 의사는 수술이 너무 어렵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항암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씨는 포기하지 않고 암 다(多)학제 진료(여러 진료과 의사가 함께 진료)를 하는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의료진은 “4기에 해당하지만 직장, 간, 폐 수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암이 발생한 부위인 직장을 들어냈다. 이어 간과 폐의 암세포 수와 크기를 줄이기 위한 항암 치료에 돌입했고, 최종적으로 간과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에 참여한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이 씨는 수술 후 6년째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난치성 대장암 수술 분야에서 이름이 높다. 다학제 진료를 통해 다른 장기의 암 수술에도 참여한 경험이 많다. 현재 대한외과학회에서 수련교육이사를 맡고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김 교수는 “간과 폐 수술이 불가능해 ‘기적’을 바라면서 항암 치료에만 의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제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40대 초반 난소암 환자 강정민(가명) 씨도 비슷하다. 다른 장기에 전이된 4기였는데, 심지어 항암치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술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환자 가족과 상의한 후 수술을 결정했다.

난소와 자궁, 복막, 직장을 모두 제거했고 간도 부분 절제했다. 무려 9시간에 걸친 큰 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이었다. 8개월이 지난 현재 이 씨는 다시 항암치료를 하면서 재발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10년 전이었다면 효과도 없는 항암치료만 반복하다 끝을 봤을 것”이라고 했다.

○‘말기 암’은 없다

4기 암을 종종 ‘말기’로 표현한다. 김 교수는 이 표현이 옳지 않다고 했다. ‘말기=시한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결과 환자의 투병 의지가 약해진다. 게다가 4기에도 수술을 통해 완치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으니 적절치 않은 용어라는 것이다.

암과 싸우려면 우선 암의 병기(病期)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병기는 1∼4기로 나누는데, 크게 세 가지를 감안한다. 첫째가 암이 발생한 부위의 암 크기, 둘째가 림프샘 침범 여부와 정도, 셋째가 다른 장기로의 전이 여부다.

만약 위암이 생겼다고 하자.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크기 자체로는 3기다. 하지만 림프샘을 침범하지도 않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다면 최종 2기로 진단 내릴 수도 있다. 반대로 이런 상태에서 전이가 발생했다면 4기가 되기도 한다.

1기와 2기의 경우 대부분 수술로 암을 제거한다. 이후에는 상태를 보면서 항암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이 병기일 때 5년 생존율은 일부 암을 제외하면 대체로 90% 내외다. 문제는 3기와 4기일 때다. 과거에는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이런 치료를 통해 암을 ‘순하게’ 만든 뒤 수술한다.

심지어 항암 치료 없이 수술만으로 치료를 끝낼 때도 있다. 70대 여성 김순임(가명) 씨가 그런 사례다. 김 씨는 2년 전 결장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2기였고, 수술은 무난하게 끝났다. 이후 6개월마다 추적검사를 했다. 그러다 2년 만에 암이 재발했고, 폐로도 전이됐다. 암의 병기가 4기로 악화한 것이다. 의료진은 폐 절제술을 시행했다. 의료진 판단에 따라 김 씨는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았고, 현재 재발 여부를 추적관찰 중이다.

○수술 못 하는 암 점차 줄어

김 교수는 “예전에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4기나 난치성 암에 대한 수술이 늘어나면서 암 환자의 70% 정도는 수술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환자의 투병 의지만 굳건하다면 생존율은 앞으로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간암, 담도암, 췌장암 등 일부 암은 4기에 발견하면 수술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런 장기들은 항암 치료 효과가 다른 장기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을 ‘순화’시키지 못하기에 수술이 어렵다. 뼈나 뇌 부위로 전이됐거나 너무 많은 장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전이가 됐을 때도 현 단계로서는 수술이 어렵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사례도 머잖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항암제가 잇달아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환자에게 가장 맞는 약을 찾아내 암 세포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정밀영상 장비가 발달하면서 수술 기회도 더 많아졌다고 했다. 복강경이나 흉강경 등을 통해 수술 부위를 확대해 세밀하게 볼 수 있기에 수술 성공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암 세포 경계까지 명확하게 구분해 낼 정도로 영상검사 장비 해상도가 높아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폐암, 조기발견 어려워 5년 생존율 35% 불과… 30년이상 흡연자는 매년 CT검사 받아야
지난해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폐암은 2019년 2만9960건이 진단되며 갑상샘암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발생한 암에 올랐다. 그전까지는 위암 진단 건수가 더 많았지만 위암 발생이 매년 4.5%씩 줄어들면서 폐암이 사실상 최다 발생 암 1위에 오른 것이다.

폐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34.7%였다. 암 사망 원인 1위다. 모든 암의 평균 5년 상대생존율 70.7%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 미세먼지, 흡연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다른 암에 비해 조기 발견이 늦은 것도 큰 이유다.

실제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발견 시기가 대체로 늦다. 대부분 3기와 4기에 발견된다. 4기에 발견된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0%가 되지 않는다. 기침, 가슴통증, 호흡곤란, 쉰 목소리 등이 폐암의 증세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증세는 폐암이 아니더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무시하고 넘어간다. 폐암 발견이 늦어지는 이유다. 폐암은 특히 수술이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수술 이후 호흡 기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암의 경우에는 다른 암보다 조기 발견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난치성 암으로 꼽히는 폐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은 80%를 넘어선다.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으면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줄여서 보통은 ‘폐CT’라 부른다. 노출되는 방사선량을 6분의 1 정도로 줄여 방사선 부작용을 줄였다. 55세 이상, 30년 이상 매일 담배 한 갑을 피웠으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최소한 3년마다 검사받는 게 권장되지만 가급적 매년 받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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