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사박 雪雪 걸어 눈꽃나라… 하얀 가지에 새해 희망 걸어둘까

글·사진 평창=전승훈 기자

입력 2022-01-15 03:00 수정 2022-01-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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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아트로드]강원 계방산 눈꽃여행
반짝이는 겨울왕국 활짝
전나무숲이 둘러싼 방아다리 약수터
찰지고 고소한 평창 송어회


강원 평창군과 홍천군 경계에 있는 계방산은 눈꽃여행의 명소다. 맑고 차가운 공기에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꽃터널을 지나가다 보면 깊은 바닷속 하얀색 산호 군락지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산의 최대 묘미는 눈꽃여행이다. 영화 ‘겨울왕국’처럼 하얗게 피어난 ‘설화(雪花) 터널’을 만나는 순간 평생 잊을 수 없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강원 평창과 홍천의 경계에 선 계방산은 겨울철 눈꽃을 잘 볼 수 있는 설화 명산으로 유명하다. 백두대간의 서편에 우뚝 서서 시베리아 북서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계방산은 높이도 높을뿐더러 눈꽃이 만들어지기 좋은 여러 조건을 갖춘 산이기 때문이다.》

○ 평창 겨울올림픽 피켓 요정의 추억

계방산 정상의 설경.
강원 평창군 계방산(해발 1577m)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러나 산행은 의외로 쉽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운두령 정상(해발 1089m)까지 차로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계방산 정상까지 표고차는 488m도 되지 않아 5, 6시간 정도면 왕복 산행을 마칠 수가 있다.

간밤에 약간의 눈이 내린 다음 날 새벽. 서울에서 차를 몰고 오전 8시 반쯤 운두령 쉼터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맞은편 계방산 탐방로 계단을 올라 숲 속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요정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듯했다. 영화 ‘겨울왕국’처럼 온 산의 나뭇가지에 은빛 구슬이 맺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눈꽃요정 의상을 입은 피켓 요원.
어! 이 장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데?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피켓 요원들이 입고 있던 의상이 떠올랐다. 흰색 와이어에 반짝이는 구슬을 엮은 드레스와 손에 든 나뭇가지는 흡사 겨울나라에 사는 공주와 같은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전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금기숙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가 디자인했던 ‘눈꽃 요정’ 의상은 평창 계방산의 눈꽃터널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이 쌓인 산속에서는 아이젠을 끼운 등산화로 걸을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 소리만이 적막을 깨운다. 등산로 중간쯤에서 만나는 물푸레나무 군락지에서는 몸통까지 하얗게 얼어붙은 나무들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설악산과 오대산, 태기산, 가칠봉 등 백두대간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해가 떠오르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순백의 눈꽃터널 사이로 코발트색 하늘이 비친다. 겨울 계방산을 더욱 청초하고 오묘하게 하는 시그니처 풍경이다. 상고대를 두툼한 솜옷처럼 입고 있는 나뭇가지들은 영락없이 푸른 바닷물 속에서 춤추고 있는 하얀 산호의 모습이다. 지난해 여름 울릉도에서 스킨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수심 45m 바닷속에 본 은빛 해송(海松·천연기념물 456호)을 산속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계방산의 ‘상고대’는 눈꽃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생기는 눈꽃과 달리 상고대는 공기 중에 수증기가 얼어붙은 서리꽃이다. 그래서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면 상고대는 녹아서 사라진다. 상고대가 녹으면서 나뭇가지에 얼어 있던 얼음조각들이 눈 위로 떨어진다. 부스러지는 얼음조각이 흰 눈에 떨어진 모습은 시루에서 막 꺼낸 백설기 떡 같다.

“상고대는 습도와 기온, 바람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산에 눈이 쌓여 있고, 눈이 녹았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공기 중의 수증기가 나뭇가지나 잎에 엉겨 붙어 상고대가 생기지요. 눈이 온 다음 날 눈꽃과 상고대가 함께 피어나는 게 최고입니다. 일기예보를 잘 보고 산행 날짜를 고르면 돼요.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정상 부근에서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습니다.”(‘커피볶는 계방산장’ 박대원 대표)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세 개의 갈림길로 나뉜다. 다시 운두령으로 돌아가는 길과 계방산 삼거리 방면, 그리고 계방산 오토캠핑장 쪽으로 하산 길을 잡을 수 있다. 오토캠핑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를 볼 수 있고, 노동계곡과 이승복 생가를 볼 수 있다.

○밀브릿지 방아다리 약수터

계방산 입구에서 차로 20여 분 만에 갈 수 있는 방아다리 약수터는 조선 숙종 때부터 약수의 효험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한국관광공사의 7대 약수에 선정된 곳으로 위장병과 빈혈증, 신경통,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폐쇄돼 마셔볼 수는 없다.

방아다리약수터 전나무 숲속에 있는 밀브릿지 숙소
방아다리 약수터 일대는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됐는데 고(故) 김익로 선생이 1950년대부터 숲을 조성하기 시작해 지난 60여 년간 가꾼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전나무, 낙엽송 등 10만 그루 넘는 나무가 이곳에 인공으로 심어졌다. 밀브릿지 입구부터 약수터까지 이어진 300m가량의 전나무 숲길이 그 결실이다. 방아다리 약수터는 주변 지형이 디딜방아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들어선 ‘밀브릿지(Mill Bridge)’도 ‘방아다리’의 영문명이다. 이곳에는 숙박시설, 산책로, 약수 체험장, 명상원, 미술관, 카페, 식당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밀브릿지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평창 여행’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소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전나무 숲길과 갤러리를 닮은 모던한 숙소가 관광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전나무 숲과 어우러지는 차분한 톤의 건물들은 건축가 승효상이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총 18개 객실로 이뤄진 숙박시설은 몇 달 전부터 미리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넓은 창에는 전나무 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긴다. 커플 여행객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창밖 숲속 풍경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다.
○평창 송어 맛집

선연한 주홍빛이 입맛을 당기는 평창 송어회.
평창은 송어 양식을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한 곳이다. 송어는 12도 이하 맑은 물과 조용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냉수성 어종으로 1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양식이 쉽지 않다. 소나무 색깔처럼 분홍빛을 띠기에 송어(松魚)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살색이 연어와 비슷하지만 고소한 맛이 나며 훨씬 탄력이 있다. 평창 송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살이 찰지고 맛이 뛰어나다. 힘이 세서 손맛도 좋다. 해마다 진부면 오대천에서는 얼음을 깨고 송어를 낚시로 잡는 평창송어축제가 펼쳐졌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취소됐다.

속사 나들목에서 이승복기념관을 지나 계방산 가는 길에는 송어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인 남우수산은 1980년 무렵부터 송어 양식장과 송어횟집을 연 노포다. 가게 앞 계곡에 설치된 송어 양식장에는 여름에는 송어가 헤엄을 치지만, 현재는 얼어 있어 송어를 볼 수는 없다. 잘게 썬 양배추 더미에 콩가루, 초장, 들깨가루, 들기름을 살살 섞어 입맛에 맞는 꾸미를 만든 다음, 주홍빛이 선연한 송어 한 점을 고추냉이 간장에 살짝 찍어 채소와 함께 먹는다. 적당히 회를 남겨 튀김으로 먹어도 별미고, 매운탕으로도 끓여준다. 머루주, 오디주, 더덕주 등 평창산 민속주도 판다.





글·사진 평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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