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심장 사람에 첫 이식… 장기이식 대기자 희망 ‘쿵쾅쿵쾅’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2-01-12 03:00 수정 2022-01-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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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7세 남성에… “사흘째 안정적”, 이식 성공 핵심 ‘면역 거부 반응’
유전자 교정-복제기술 통해 없애… 의료진 “맥박과 압력 정상 생성
완전 성공 여부 논하기엔 일러”… 돼지 심장, 인간과 크기-구조 비슷
판막-피부는 이미 이식에 사용, 장기 부족 문제해결에 큰 도움 기대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진이 7일 세계 최초로 유전자 조작 돼지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하면서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의 심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메릴랜드대 의대 제공
유전자 교정으로 면역 거부 반응을 없앤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으로 시도돼 성공했다.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심장병 환자인 57세 남성 데이비드 베닛에게 유전자 교정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고 10일(현지 시간) 밝혔다. 의료진은 “수술을 받은 환자는 3일간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며 “유전자 교정 동물의 심장이 즉각적인 면역 거부 반응 없이 인체에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진은 “수술이 완전히 성공했는지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덧붙였다.

유전자 교정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주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왼쪽)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환자인 데이비드 베닛. 메릴랜드대 의대 제공
수술을 받은 베닛은 부정맥으로 병원에 입원해 6개월 이상 에크모(ECMO·인공심폐기)에 의존했다. 기존의 심장 이식 수술은 불가능했고 인공 심장 펌프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전날 베닛은 “죽거나 돼지 심장을 이식받는 것 외에 선택지는 없었고, 나는 살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에게 더 이상 치료 가능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 진행하는 응급수술로 메릴랜드대 연구진의 유전자 교정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허용했다. 수술은 7일 메릴랜드대병원에서 8시간 넘게 진행됐다. 수술 후 3일이 지난 10일에도 베닛은 에크모를 연결하고 있지만 이는 심장 이식 수술 환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수술을 이끈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식된 심장은 맥박과 압력을 정상적으로 생성했으며 그의 심장이 됐다”며 “현재 상태라면 곧 에크모를 제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생의료기업 리비비코어는 유전자 교정과 복제기술을 적용한 돼지를 이번 수술에 활용했다.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3개와 성장 유전자 1개를 비활성화시키고 인간의 면역체계를 견딜 수 있는 유전자 6개를 새로 넣었다. 면역 거부 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로는 기존 면역억제제와 제약사 키닉사 파머슈티컬스가 새로 개발한 신약도 활용했다.


미국은 이식용 인간 장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의 장기이식 시스템을 감독하는 기관인 장기공유연합네트워크(UNOS·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이뤄진 장기 이식 수술은 약 4만1354건으로 이 중 심장 이식 수술은 약 3800건에 불과하다.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면역 거부 반응 문제로 대부분 실패했다.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에게 개코원숭이의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했지만 면역 거부 반응으로 21일 만에 사망했다.

영장류와 달리 돼지는 사육하기 쉽고 약 6개월 만에 성년으로 자라기 때문에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동물로 주목받아 왔다. 심장의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이고 해부학 구조도 유사하다. 이 때문에 최근 돼지 심장 판막은 일상적으로 이식되고 있다. 일부 당뇨병 환자는 돼지의 췌장 세포를, 화상 환자들은 돼지의 피부를 이식받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로버트 몽고메리 미국 뉴욕대 랭곤헬스 이식센터장 연구팀이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의 신장을 뇌사자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한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수술을 이끈 몽고메리 이식센터장은 “이번 메릴랜드대 연구진의 돼지 심장 이식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클래슨 UNOS 최고의료책임자는 “이번 수술은 장기 이식 수술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도 “인간의 장기가 이식된 경우에도 장기적으로 거부 반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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