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상하수관-부실공사가 부른 땅꺼짐… “정밀 지하지도 시급”[인사이드&인사이트]

김기윤 기자 , 최동수 기자

입력 2022-01-12 03:00:00 수정 2022-01-12 14: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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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지뢰’ 싱크홀 공포

지난해 9월 1일 충남 당진시 시곡동의 한 주차장에 폭우 뒤 대형 싱크홀이 생기면서 주차돼 있던 차량 한 대가 싱크홀 안으로 빠진 모습(위쪽 사진). 지난해 12월 3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의 한 상가 건물 지하 3층 기둥이 파손됐다. 지반 침하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가운데 사진). 2014년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인근 6차로에서 발생한 싱크홀로 도로가 전면 통제됐다. 당진소방서·동아일보DB·독자 제공

《“여기를 지나는 행인들이 몇 년째 땅이 꺼진 곳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거나 뛰어넘어 다녔어요. 갑자기 땅이 푹 꺼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지난해 12월 3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 3층 기둥 일부가 굉음과 함께 파손됐다. 건물 앞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직경 5m, 깊이 0.5m가량의 지반 침하가 관측됐다. 이 도로 바로 옆 건물 1층에서 5년 넘게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해 온 안모 씨(57)에 따르면 이 도로에서 지반 침하 현상이 처음 관측된 건 4, 5년 전이다. 안 씨는 “당시 상수도관이 터져 공사한 뒤로 지반 침하가 있었는데, 최근 한 달 새 더 크게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도심 속 지뢰’로 불리는 ‘싱크홀’(땅 꺼짐 현상)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고양시에서는 지하철 3호선 주변을 따라 최근 7년 동안 지반 침하 사고가 9차례 발생했다. 백석동과 마두동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만 도로 균열을 포함해 8차례다.》

2019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공사 현장에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숨졌고, 앞선 2014년에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땅 꺼짐 사고가 되풀이되는 지역 주민들은 발밑이 불안하다. 근본적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 “과도한 개발과 지하수 유출이 문제”

마두동 건물 기둥 파손과 도로 지반 침하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건물 앞 지반 침하가 건물 기둥 파손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초기 진단 결과만 나왔다. “건물의 붕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진단 결과도 나왔지만 입주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현재 이 건물은 입주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사용제한 명령이 내려져 있다. 건물 내 학원과 병원, 상점 등 78곳은 안전진단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길게는 한 달 이상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물에 입주한 한 상인은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질까 봐 두렵다. 다시 입주해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전문가들은 일산 일대의 일부 지역 지반이 원래 약한 것이 잇따른 지반 침하 사고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심 개발 과정에서 지하수가 다량 빠져나가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생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석환 대진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강 하류에 있는 고양시 일대는 지반이 약한 곳이 곳곳에 있고, 지하수 수위도 높다는 특징이 있는데 지하철이 건설되고 빌딩이 들어서면서 지하수 수위가 낮아진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0년 여름 큰비로 지하수가 차 있다가 빠져나가며 물길이 생겼고, 물길이 골을 만들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5개 신도시의 지반을 조사했던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도 “일산은 강과 가까운 데다 진흙과 미세모래 지반 지역도 곳곳에 있어 흙이 지하수와 함께 쓸려 나갈 위험이 비교적 높다”고 지적했다.

지반 침하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인근 지역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반이 약하다고 일대 전체가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건설·건축 시) 기초공사를 확실히 했거나 위험이 예상될 때 보강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일산 전체 지반이 취약한 건 아니다”라며 “건물 균열이나 도로 침하를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지역의 건물 기초를 보강하면 된다”고 말했다.

○ “지하 공간 통합지도 구축해야”

결국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지반이 약한 곳을 미리 파악하고, 위험이 감지되면 단단히 보강해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고양시는 최근 마두동 건물 기둥 파손 사고가 벌어지자 연약 지반 위에 조성된 도로에 대한 전수조사와 복구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왕복 8차로 이상 도로를 시작으로 이면도로와 보도 등을 포함한 110km 구간에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투입해 땅속에 공간이 생겼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고양시는 앞서 지반 침하 사고가 이어지자 결함이 발견된 하수관을 정비해 왔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싱크홀이 잇따르자 본격적으로 싱크홀에 주목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600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지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제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싱크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싱크홀 예방 시스템 구축에 투입된 정부 예산 647억 원 중 지반 함몰 발생 및 피해 저감을 위한 기술, 지하 공간 탐사, 지하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에 200억 원 이상이 들었다. 가장 많은 예산이 쓰인 건 총 401억 원이 들어간 ‘지하 공간 통합지도’ 구축 사업이다. 싱크홀 발생 취약 구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도다.

전문가들은 이 지도를 더욱 세밀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만든 지도는 연약한 지반에 대한 정보가 주를 이루는데 싱크홀의 원인이 되는 지하 시설물 노후도, 지하수 수위 등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 노후한 상·하수도관 교체 시급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 1431건 가운데 ‘상하수도관 손상 또는 노후화’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782건으로 전체의 54.7%에 이른다. 한데 지난해 말 기준 노후도가 확인되지 않은 전국의 상·하수도관이 총 4만5627km에 이른다. 설치된 지 40년 이상인 상·하수도관이 8424km, 30∼40년인 것이 2만6350k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석환 교수는 “지하 공간 통합지도에는 지반의 특성과 지하수위 변동 등 기초 조사는 물론이고 상하수도관로 노후도 등의 정보까지 담아야 한다”며 “위험한 지하 공간을 파악하고 신규 공사 시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를 더 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직 한국교통대 건설환경도시교통공학부 교수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대도시에 지역별 지질학적 특성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면서 “한국도 이같이 지역별 지질학적 특성을 정리해 두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시설물 공사 시 현장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하 공사 후 다짐(되메우기) 불량, 굴착공사 부실, 폐자재·폐관 방치 등도 싱크홀의 주요 원인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굴착 깊이가 10m 이상인 공사나 터널 공사 때는 착공 전후 지하안전영향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공사가 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절차를 소홀히 하는지 잘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가 관련 인력을 늘리고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기정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노후 상하수도관을 보수하고 교체할 필요성이 작지 않지만 지자체의 인력과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5년마다 이뤄져야 하는 지하시설물 조사도 사실상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만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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