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길에서 죽어가는 코로나 환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1-12-31 03:00 수정 2021-12-3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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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서 환자들이 코로나19 문진표 작성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응급실 입구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격리실 입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최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포화에 응급실 내 격리 병상까지 활용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현재 전국적으로 17개의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돼 있다. 외상센터는 일반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총상, 다발성 골절, 출혈 등의 중증외상환자가 도착하면 즉각 응급수술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춘 치료센터다. 이런 외상센터와 함께 환자를 재빨리 병원으로 옮겨 주는 닥터헬기 등 응급 의료체계 덕분에 응급 환자들이 길거리에서 죽지 않고 생존할 확률이 2배 가까이로 높아졌다. 권역외상센터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면서 중증을 담당할 센터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대한신경외과학회 산하 대한신경중환자의학회 의료진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가 매일 수천 명씩 나오고 있는데 이들이 뇌출혈 심근경색 뇌종양 등 응급질환이 생기면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을 구하지 못해 치료를 못 받고 사망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환자들은 이런 경우 바로 응급실에서 조치받을 수 있지만 코로나19 환자는 별도의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격리실 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치가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의학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70대 코로나19 확진자 한 명이 중소병원에서 낙상으로 뇌출혈이 생겼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여러 종합병원을 찾다가 결국 치료시기를 놓치고 사망했다. 또 선천적으로 뇌출혈이 잘 생기는 모야모야병을 앓는 50대 환자 역시 코로나19 확진 이후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 결국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이들 모두 제때 수술을 했다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코로나19 환자들의 뇌출혈 심근경색 등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응급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제때 수술을 못하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환자가 뇌손상 뇌출혈 악성뇌종양 등 응급질환으로 수술을 받으려면 음압시설을 갖춘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있어야 한다. 의료진도 ‘레벨4’에 준하는, 우주복처럼 생긴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빨리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수술할 수 있는 병원도 거의 없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이처럼 음압 수술실과 중환자실, 의료진을 제대로 갖춘 곳은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아주대병원 등 몇 곳에 불과하다. 이미 대부분의 병원 시설이 꽉 차 있어 환자들을 받을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일부 종합병원은 음압수술실을 1, 2개 정도 마련해 놨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음압수술실과 일반수술실의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만약 코로나19 환자가 수술을 받을 경우에는 일반수술실까지 운영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환자의 응급수술이 밤늦게 이뤄지거나 한참 대기하다가 평일이 아닌 주말에 수술 받는 경우도 있다. 어떤 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환자로 인해 수술실 의료진이 격리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예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약 2년이 지났지만 감염 환자들이 수술이나 응급치료를 받기에 병원 환경이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이다.

응급상황이 생긴 코로나 환자들이 병원을 찾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코로나19 응급질환 환자들을 집중 치료하는 병원을 지정하고, 의료진을 모집하거나 파견받아 치료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전국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의료진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신경중환자의학회가 내놓은 대답은 명확했다. 의학회 관계자는 “중증 응급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대개 일주일 중 2일 수술하고, 2일 외래를 보며, 하루 쉬게 된다”며 “하루 쉬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당번을 정해 파견받으면 지금처럼 응급 수술을 받기 위해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중환자의학회의 목소리를 참고해 길에서 사망하는 코로나19 환자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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