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내리면” vs “집값 더 내리면”…서울 9000채단지 한달 거래 딱 1건

최동수 기자 , 정순구 기자 , 김호경 기자

입력 2021-12-30 03:00 수정 2021-12-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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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끊긴 서울 아파트 시장]
부동산 정책 ‘대선 변수’에… 서울 아파트 거래 ‘실종’
다주택자 매도 미루고 호가 안 내려… 실수요자들은 하락 기대감에 관망
매수문의 끊겨 중개업소 개점휴업



#1. 결혼 3년 차 30대 직장인 김동석(가명) 씨는 평소 점찍어 둔 서울 중구 20평대(전용 59m²) 아파트에 다녀온 후 내 집 마련을 미뤘다. 처음엔 시세보다 낮게 나왔다는 소식에 연차까지 내고 한달음에 갔지만 호가가 예상보다 높았다. 김 씨는 11억5000만 원을 원했지만 집주인은 “12억1000만 원 아래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집값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2. 같은 아파트 전용 84m²를 매물로 내놓은 60대 2주택자 전승수(가명) 씨는 최근 집을 반(半)전세로 돌렸다. 올해 600만 원으로 오른 종합부동산세가 부담이었지만 이를 팔면 양도소득세를 3억 원 내야 한다. 결국 매도를 미루기로 했다. 그는 “일단 공인중개업소에 매물로 올려놓았지만 양도세가 완화되기 전엔 팔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얼어붙었다. 시장에 매수세가 자취를 감추면서 매물도 점점 쌓이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9일 거래가 끊긴 서울 아파트 시장 현장을 진단하고 내년 집값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5000채가 넘는 대단지 인근 공인중개업소 3곳과 아파트 매수 및 매도 희망자 25명을 심층 취재했다.

현재 매수자들은 집값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대출규제와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당장 집을 매수하기보다는 관망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매수 문의가 끊기며 잠재 매수자 리스트 작성을 포기하거나 개점휴업을 선언한 공인중개업소도 나왔다.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매수, 매도 호가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확인한 다주택자 매물은 가격대를 알아보려는 ‘간보기 매물’이 대부분이었다. 양도세가 완화될 때까지 매도를 보류한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취재팀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 지회장 등을 대상으로 시장 상황을 물어본 조사에서도 감지됐다. ‘아파트의 매도 호가가 직전 최고가 대비 상승했다’고 답한 공인중개업소가 절반이 넘었다. 이들은 시장이 정상화되려면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주택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고 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부장은 “내년 대선 이후 부동산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거래 절벽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호가-희망가 차이 최소 1억… 서울 9000채 단지 한달 거래 단 1건
“稅부담에 내놓지만 호가 못낮춰”…집주인들 대선후 稅완화 기다려
“더 떨어질텐데 지금 매수할수야”… 수요자, 집값 하락 기대하며 미뤄
서울 아파트 매매 3분의 1토막… 대선때까지 거래 절벽 이어질 듯
전문가 “결국 공급 확대로 풀어야”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아파트를 1채씩 보유한 60대 A 씨는 올해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보고 송파구 아파트(전용면적 84m²)를 팔기로 했다. 지난달 거래된 역대 최고가(24억5000만 원)보다 5000만 원 낮은 24억 원에 내놓았다. 최근엔 23억 원으로 낮췄지만 매수 문의는 아직 없다. 그는 “보유세 부담에 집을 내놓긴 했지만 더 이상 매매가를 양보할 순 없다”고 했다.

같은 단지에 사는 70대 1주택자 B 씨도 23억 원에 매물을 내놓았다. 은퇴 후 고정 수입이 없는데 올해 종부세가 급등하자 서울 아파트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아파트가 유일한 노후 자산인 만큼 매수 문의가 없는데도 호가를 내리지 않고 있다.

24일 만난 인근 중개업소 대표의 수첩에는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의 연락처는 빼곡했지만 매수 희망자는 전무했다. 이달 가격을 묻는 전화가 딱 2건 왔는데 그마저 연락처도 안 남긴 ‘떠보기 문의’였다. 그는 “집주인 호가와 수요자 희망가격 차는 최소 1억 원 이상이다. 협상으로 좁혀질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이 단지 매물은 29일 230여 건(부동산정보업체 ‘아실’ 집계)으로 10월 이후 계속 쌓이고 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9000여 채의 대단지인데도 이달 거래는 단 한 건이었다.

○ 집값 하락 기다리는 수요자들

서울 집값이 조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지표가 늘고 있지만 현장에선 집값 하락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면 집주인이 부르는 가격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가격보다 여전히 높아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매수 희망자들은 “굳이 서둘러 매수할 생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신혼부부인 C 씨는 이달 서울 금천구 4억 원대 아파트를 사려고 계약 준비까지 마쳤다. 하지만 부모가 “집값이 곧 잡힌다”고 만류해 2년간 전세로 더 살기로 했다. 불과 2, 3개월 전만 해도 ‘더 늦기 전에 사야 한다’는 불안감에 추격 매수에 나섰던 수요자들이 지금은 집값 하락 기대감에 매수를 미루고 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매수 문의가 끊긴 탓에 2개월간 집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했다.

○ 양도세 완화 전엔 호가 못 내린다는 다주택자


서울에 아파트 3채를 가진 60대 E 씨는 거주 주택만 남기고 나머지 주택을 처분할지 고민하고 있다. 매년 수천만 원의 보유세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알아 보니 다주택자에겐 중과세율이 적용돼 시세 차익의 82.5%(지방세 포함)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했다. 그는 “사실상 정부에 수억 원을 뺏기는 셈”이라며 “다주택자 양도세가 완화될 때까지 버티겠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 아파트 2채를 보유한 70대 F 씨는 세를 주던 전용 44m²를 이달 4억5000만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가장 최근 거래가(3억9000만 원)보다 6000만 원 높다. ‘호가가 너무 높다’는 중개업소 설명에도 수리비와 양도세를 고려할 때 이 금액 이하로 팔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집주인들이 서울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건 올해 보유세 부담이 급등한 게 계기다. 하지만 양도세 중과만큼은 피하겠다는 생각도 확고했다.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중과 유예 등 정책 변수가 해소되는 내년 대선 이후로 처분 결정을 미루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30대 신혼부부인 G 씨는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려고 올 9월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를 12억5000만 원에 내놓았다. 3개월째 팔리지 않자 최근 중개업소에서 ‘가격을 낮추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새로 매수하려던 아파트 가격이 그대로인데 싸게 팔면 자금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 “내년 대선이 집값 가를 것”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439건(잠정치)으로 지난달(1350건)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 같은 거래 절벽은 내년 대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파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빨리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은 스스로 전단을 만들어 중개업소에 돌린다”며 “대다수 집주인은 대선 이후 움직이겠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6월 전에만 팔면 내년 보유세 부과를 피할 수 있는 데다 양도세 중과를 감수하고 서둘러 팔았다가 다음 정부가 양도세를 완화하면 손해 볼 수도 있다.

양도세 중과 유예 등 ‘퇴로’가 생기면 처분하겠다는 잠재 매도자가 적지 않았다. 다만 ‘덜 똘똘한 집’부터 팔겠다고 했다. 양도세 완화에 따른 매물 유도 효과는 지방, 수도권, 서울 외곽 순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공급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다주택자 양도세와 보유세를 낮추는 동시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당장 보유세 부담이 줄어도 도심 공급이 늘어 향후 손실이 예상되면 처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매도 희망자 51%, 직전 최고가보다 호가 높여… 매수 의향자 71%는 “가격 같거나 내려야 살것”
전국중개사-서울 지회장 65명 조사… “대출 규제 탓 서울 거래 감소” 45%


아파트 거래가 얼어붙고 있지만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직전 최고가격 대비 높은 호가를 고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직전 최고가보다 비싸도 사겠다는 사람은 30%에도 못 미치는 등 양측이 원하는 가격차가 커 거래가 거의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동아일보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 지회장 등 전국 공인중개사 65명을 대상으로 최근 부동산 시장 상황을 조사한 결과 주변 아파트의 매도 호가가 직전 최고가 대비 상승했다는 응답은 50.8%에 달했다. 직전 최고가와 비슷하다는 의견과 직전 최고가 대비 떨어졌다는 답변은 각각 24.6%에 그쳤다.

매수 의향자가 원하는 호가는 정반대였다. 매수 의향 가격이 직전 최고가 대비 높다는 응답은 전체의 29.2%에 그쳤다. 직전 최고가와 비슷한 가격(32.3%)이나 내린 가격(38.5%)에 매수하려는 수요가 있다는 응답은 70%를 넘겼다.

정부의 대출 규제도 거래 감소에 영향이 컸다. 서울 아파트 거래 감소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4.6%는 ‘대출 규제’를 꼽았다. ‘집값 하락 예상한 수요자의 추격 매수 자제(19.7%)’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눈치보기(16.9%)’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중개업소로의 문의도 급감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최근 매수 및 매도 문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이 73.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약간 감소했다’도 9.2%여서 전반적으로 문의가 줄었다는 응답이 83%에 달했다. 반면 문의가 늘었다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부동산 정책으로는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26.2%)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26.2%)를 선택한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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