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임원직급 통합’ 바람… CJ, 사장도 상무도 없애

곽도영 기자 , 홍석호 기자 , 사지원 기자

입력 2021-12-24 03:00 수정 2021-12-2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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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사장 이하 6단계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 하나의 직급으로 통합
역할-성과 따라서 처우 보상 결정… 삼성전자, 지난달 부사장-전무 합쳐
한화-현대重도 임원 단계 축소, 의사결정 속도 내고 세대교체 포석
직장인 사이선 “사실상 정년 단축”



CJ그룹이 ‘상무대우-상무-부사장대우-부사장-총괄부사장-사장’ 6단계로 나뉘었던 임원 직급 체계를 ‘경영리더’ 하나의 직급으로 통합한다고 23일 발표했다. 국내 주요 그룹 대기업이 사장 이하 임원 직급을 하나로 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CJ그룹은 이런 내용이 담긴 직제 개편안을 이날 이사회에서 승인했다. 임원 승진 후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려면 6단계를 거쳐야 했던 데서 경영리더 한 단계만 거치면 가능하게 바뀌었다. 경영리더의 처우, 보상, 직책은 역할과 성과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체류 연한과 관계없이 임원 누구나 부문장이나 CEO가 될 수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달 3일 그룹의 중기 비전을 발표하면서 “역량과 의지만 있다면 나이, 연차,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022년 새해 경영 준비를 앞두고 재계의 임원 직급 통합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각 기업은 기존 임원 직급을 통폐합하는 한편 신임 임원으로의 진입 연차도 낮추고 있다. 경영 일선 전반에서 세대교체 속도가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11월 말 5년 만의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며 2022년도 정기 인사부터 부사장·전무 직급을 통합해 사장 이전의 임원 직급 체계를 부사장-상무 등 2단계로 단순화했다. 한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8월과 11월 기존 상무보 직급을 폐지해 사장 이하 임원 단계를 사장-부사장-전무-상무 등 4단계로 줄였다.

주요 그룹 중 임원 직급 통합을 선제적으로 단행했던 곳은 SK다. SK는 2019년 7월 부사장·전무·상무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같은 해 이사대우·이사·상무를 모두 상무로 합쳤다.




주요 그룹들이 직급 단순화와 임원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는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신산업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한편 이를 기회로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직급 단순화는 보고 체계를 단축해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를 당김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과 산업에 익숙한 신예를 전진 배치할 수 있게 한다.

국내 주요 그룹들의 최근 임원 인사에는 이런 방향성이 반영됐다. 삼성전자, SK, LG 등 주요 기업들의 2022년도 정기 인사에서 30대 임원, 40대 대표이사(CEO)가 대거 발탁됐다.

임원, 직급 통폐합으로 ‘때 되면 승진하는’ 연공서열이 사라지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선 ‘정년 단축의 우회적 표현’ ‘회사 인사가 더 가차 없어진 것’이란 푸념도 나오고 있다. 5대 그룹 계열사에 재직 중인 김모 부장(51)은 “몇 년 전까지는 ‘아직 임원 달긴 이르다’며 기다리라더니 이젠 ‘임원 달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라고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상무로 승진한 뒤에도 전무, 부사장 등으로 몇 단계 올라가면서 임기를 늘릴 수 있었지만 한 번에 바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 평가에 따라 일찍 물러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원이나 CEO까지 가는 계단 수가 줄어들면서 기존의 연공서열식, 피라미드형 조직이 아닌,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단계를 뛰어넘는 실리콘밸리식 조직 형태와 분위기가 국내 대기업에도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주요 그룹 계열사 CEO는 “이제 회사에서 어떤 한 사람이 오랫동안 모든 걸 이끌어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경영진에게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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