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치료 중요한 ‘만성폐쇄성 폐질환’ 국가 차원 관리 필요

홍은심 기자

입력 2021-12-22 03:00 수정 2021-1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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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폐 조직 등 염증 진행성 질환… 코로나19 유행에 관리 필요성 증가
1차 의료기관에선 검사 어렵고 환자 본인 부담금 탓 검사 꺼려
정부, 만성관리 사업대상 포함 등 국가적 관리 지원 체계 마련해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초기 증상이 의심되는 환자가 폐활량을 측정받기 위해 폐기능 검사를 받고 있다. 폐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폐기능검사는 현재 국가건강검진 중 하나로 검토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으로 인한 질병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COPD는 흡연이나 실내외 먼지 또는 가스 등으로 기도와 폐 조직에 염증이 발생하는 진행성 질환이다. 기관지가 좁아져 숨을 쉴 때 공기가 잘 이동하지 않아 숨이 차는 ‘기류제한’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염증 때문에 기도가 손상돼 만성기관지염, 만성세기관지염이 발생하거나 폐 조직이 파괴돼 폐기종이 생길 수 있다. 질환 진행을 늦추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기 치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종합적으로 COPD 관리 환경이 미흡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제일 큰 이유로 진단 환경이 미흡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전부터 관련 학계에서는 COPD 진단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1차 의료기관의 실정에 맞는 체계적인 지원과 국가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을 지속적으로 제기 중이다.


COPD 진단의 필수 요소로 꼽히는 ‘폐기능검사’


폐기능검사는 호흡기 질환의 조기 진단과 질환 관리에 있어 필수 요소다. 40세 이상의 성인이 흡연 등 원인에 노출된 이력이 있고 호흡곤란, 기침, 가래를 만성적으로 호소하는 경우 COPD를 의심해야 한다.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 폐기능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류제한 지표인 노력성폐활량(FVC)과 1초간 노력성 호기량(FEV1)을 측정하는데 FEV1/FVC 비율이 0.7 이하로 나타나면 COPD로 진단한다.

무엇보다 국내 COPD 흡입제 급여 인정 기준에는 FEV1의 일정 수치가 명시돼 있어 해당 데이터가 없으면 환자들이 보험급여를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폐기능검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원활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광하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개원가에서 폐기능검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COPD로 예상되는 환자 수 300만 명 중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는 5% 미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검사는 반드시 의사 혹은 임상병리 기사가 진행해야 하는데 1인 개원의가 혼자 운영하거나 간호사 혹은 간호조무사가 주로 근무하는 병원이 많은 국내 환경상 폐기능검사를 자주 시행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COPD 환자의 75%는 상급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며 “개원가에서는 COPD 진료와 진단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환자가 1차 의료기관에서 양질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본인부담금 때문에 검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환자도 많아 진단 자체를 피하게 되는 상황도 적잖이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COPD에 대한 체계적인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학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정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해 왔다. 첫째는 COPD,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을 만성질환관리 사업 대상에 포함해 관련 인력 및 교육, 그리고 환자들의 검사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것, 둘째는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검사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역할을 의료 현장에 지우기보다 국가 차원에서도 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1차 의료기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성질환관리 사업 질병군 확대에 대한 검토는 2019년부터 거론되고 있는 의제이나 본격적인 사업 시행은 요원한 상태다.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당시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발표된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 계획에서 올해 4분기까지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대상 질환군을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시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으로 관련 일정이 지연됐다”며 “연내에 시범사업 확대 계획을 보고하고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유 교수는 “COPD를 비롯한 호흡기 질환자가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코로나19로 지연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가속도를 붙여 시행됐어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만약 계획대로 연내에 만성질환관리제가 시행이 된다면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1차 의료기관 호흡기질환 진료능력 향상 프로그램(개원의 교육)에 힘쓸 예정”이라며 “1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폐기능검사의 지속적인 시행과 흡입제 치료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어 사업 결과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유 교수는 하루빨리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검사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D를 개원가에서 현실적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환경을 생각했을 때 국가 검진에 폐기능검사를 포함하는 것이 국민 건강관리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COPD를 제때 진단·치료하면 급성 악화가 줄어 결국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유 교수는 “정부에서도 관련 방안에 대한 언급이 몇 차례 있긴 했으나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계획이 나온 적은 없었다”며 “폐기능검사에 대한 국민 인지도가 낮은 만큼 국가건강검진 체계에 포함시키면 국민건강을 증진하고 COPD로 인한 사회적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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