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이 서양의학과 함께 발전하려면 언어장벽부터 넘어야”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12-20 03:00 수정 2021-12-20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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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경희대 한의대 교수 인터뷰


“과학자들이 한의학에서 쓰는 천연물 가운데 고혈압에 잘 듣는 물질을 찾고 싶어도 검색조차 어렵습니다. 한의학에선 고혈압이란 말이 없기 때문이죠. 간양상항이나 허혈과 같은 한의학적 용어를 정보 라이브러리에 넣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이달 13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호철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사진)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함께 발전하려면 언어가 비슷해야 한다”며 “서양의학이 한의학 언어를 배우기 어렵다면 한의학 용어를 서양의학 용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초학은 한의학에서 질병 치료에 쓰이는 약초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2일 서울 홍릉강소연구개발특구에 천연물 치매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 ‘엔프로’를 창업했다. 바이오 강소특구인 홍릉특구에서 기업을 설립한 한의사는 김 교수가 처음이다. 김 교수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한의학에서 중풍에 잘 드는 약재를 실험해 성능을 검증했다”며 “이 약물을 치매치료제로 개발하는 임상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93년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로도 미국 코넬대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 교환교수를 지내며 한의학 약재에서 추출한 천연물 효능을 현대의학으로 밝혀내는 연구에 주력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유전자 동의보감’ 사업에도 한의사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해 약재 추출 천연물 정보 1100여 건을 담은 동의보감 소재은행을 구축했다. 현재 100여개 기업이 이 소재은행에 가입해 천연물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내년 마무리되는 이 사업은 한의학에서 쓰이는 약재에서 나오는 천연물의 효능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천연물별로 과거에 한의학으로 분석된 효능과 같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한의학을 현대과학에 결합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의보감에 담긴 철학이나 의학, 한의학적 배경을 과학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국가 사업이다 보니 논문과 같은 가시적 성과 위주로 진행돼 아쉽다”고 했다.

최근 천연물 분야는 다른 소재연구와 마찬가지로 연구에 쉽게 쓸 수 있도록 특성과 정보를 디지털로 저장하는 추세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천연물은 동의보감처럼 언어의 장벽이 특히 높다. 과거 한의학에서 쌓은 정보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한의학계에서 이를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똑같은 것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한의학 특성을 고려해 기초적인 용어를 점차 통일을 시켜가며 조금씩 연결하고 있다”며 “천연물 산업화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100% 일치하지 않는 용어들에 가중치를 부여해 통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3년 경희대에서 천연물 연구개발기업 뉴메드를 창업하기도 했다. 뉴메드에서도 천연물의 정보와 추출 공정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소재를 탐색하는 플랫폼 ‘아이메드’를 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소재은행과 별도로 내년 초 경희대에 연구자들이 약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본초표본박물관을 연다는 목표도 밝혔다. 국내 천연물 연구자들이 한의학에서 쓰이는 정확한 약재를 직접 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1000건의 한약재 표본을 구축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당귀라는 한약재 하나도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난 약재의 효능이 제각기 다르다”며 “한의학에서는 같은 약재라도 어떤 종을 활용하느냐 하는 ‘기원’이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직접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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