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결론 난 열풍, ‘돈 버는 게임(P2E)’ 논란과 남겨진 과제들[김도형 기자의 휴일IT담]

김도형 기자

입력 2021-12-18 16:00 수정 2021-12-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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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업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IT담], 오늘은 최근 불거진 ‘돈 버는 게임’, 이른바 ‘P2E(Play to Earn)’ 논란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올해 국내에서는 대체불가토큰(NFT)을 연결한 게임 ‘미르4’를 내놓은 게임사 ‘위메이드’가 P2E라는 새로운 단어를 던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르4’는 불법성 논란을 감안해 국내 서비스에서는 P2E 서비스를 아예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P2E라는 개념은 게임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주로 조명돼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라는 게임이 실제로 국내에서 첫 P2E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 게임 화면



이 게임을 일주일 정도 실제 플레이해보면서 저도 3만 원 가량의 돈(아직은 가상자산인 ‘클레이(KLAY)’ 상태이긴 합니다)을 버는 경험을 해봤는데요.


게임 해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불법으로 결론 내고 후속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행법상 국내에서는 서비스가 쉽지 않은 상황임에 분명합니다만…


메타버스, NFT 등 올해를 뜨겁게 달군 ‘가상세계’라는 개념이 가진 확장성을 감안하자면 여러 가지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이슈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사회적인 고민거리와 더불어 게임사들에게는 또 어떤 과제가 주어져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인앱결제 강제가 금지된 이후의 상황을 살펴본 지난 [휴일IT담]에 보내주신 관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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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3396311

● 국내에서 처음 ‘P2E’ 선보인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



페이 투 윈(Pay to Win). 게임을 제대로 즐기고 또 승리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한다는 것이 그동안 국내 게임업계에서 작용하던 주요 논리였습니다.


한국 멀티플랫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니지W’. NC소프트 제공



이런 구도를 뒤흔드는 P2E를 국내에서 처음 선 보인 게임은 ‘나트리스’의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입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서비스된 이 게임에서는 정해진 일일임무를 수행하면 매일 일정한 양의 ‘무돌토큰’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무돌토큰을 ‘클레이’로 바꿔서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는데요.


초반에는 하루 몇 만 원도 벌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 게임은 주요 앱 장터에서 다운로드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네이버에 개설된 공식카페의 회원은 6만5000명을 넘겼습니다.


이달 초에 제가 실제로 플레이해 봤을 때는 하루에 20분 가량(첫 날은 캐릭터 성장에 시간이 더 걸림) 플레이하고 7000~8000원 정도는 벌 수 있었습니다.


●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서비스 불가’ 판정



논란이 커지면서 상황을 살펴보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주에 ‘등급분류 결정취소’ 판단을 내리고 후속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사행성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서비스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해당 게임사의 소명을 듣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판정을 내려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네이버 공식카페에 올라온 ‘등급분류 결정취소 예정통보’ 관련 게임사 공지



소명 절차를 거치더라도 최종적으로 현재의 방식으로 서비스할 수는 없다는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지만 게임사에서 소송으로 대응할 경우 논란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게임사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해 공지하면서 계속 서비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요. 아직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게임은 기존처럼 서비스 중입니다.

● 게임 속 재화의 현금화는 ‘불법’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로서는 불법으로 판단하다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누구든지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ㆍ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한다)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무돌토큰을 발행하는 것까지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 무돌토큰이 ‘클레이’를 거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 가상자산은 현금화 되고 게임 속 재화는 현금화 불가능?



불법이니까 논란은 끝난 것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이번 논란은 게임 속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언제까지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를 던진 것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PC 시절의 리니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 속에서 일군 자산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요 게임사가 주력해 온 MMORPG 장르에서는 ‘유료 아이템’까지 구매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필요한 아이템을 갖춰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시간을 들인 노력에 더해서 돈까지 투입했고 그에 따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가치’를 인정받는 이런 캐릭터·아이템에 자산적인 가치가 없다고 하긴 힘든 노릇입니다.


불법이지만, 캐릭터 자체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런 게임 속 자산을 거래하는 ‘그레이 마켓’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최근 다양한 종류의 가상화폐, 가상자산 거래가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누군가는 게임 속 캐릭터·아이템 거래는 불법이고 가상자산 거래소에서의 코인 거래는 합법인 이유를 물었을 때는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요.


게임업계에서 국내에서는 ‘게임’에 유독 강력한 규제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 게임의 ‘사행성’이라는 기준도 과제



게임 속 자산의 현금화를 막는 이유 가운데 핵심이라고 할 ‘사행성’이라는 개념도 고민해 볼 대목입니다.


사전은 ‘사행성’을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라거나 노리는 성질. 또는 그러한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런 점에서 비춰보면 대표적인 P2E 게임인 ‘미르4’와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는 사행성과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 게임의 구조 속에 ‘확률’이 작용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주사위 게임 같은 확률 게임과는 성격이 다른 게임들이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들여서 게임을 하면서 캐낸 혹은 길러낸 가상자산, 캐릭터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라면 여기에 얼마나 ‘사행성’이 있는 것이냐는 고민 역시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열풍 만들어낸 게임사들에는 ‘콘텐츠’라는 큰 숙제



불법성 논란과는 별개로 게임사들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주어진 모습입니다.


P2E라는 개념이 과연 지속가능하냐는 물음입니다.


미르4의 경우 게임 속에서 채굴한 흑철을 드레이코, 위믹스로 바꿔서 현금화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현금에 가장 가까운 재화인 위믹스 가격의 경우 한참 치솟았을 때에 비하면 지금 많이 낮아진 상황입니다.

위메이드의 P2E 게임 ‘미르 4’. 위메이드 제공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에서 획득할 수 있는 ‘무돌토큰’ 역시 일일임무 수행 후에 받을 수 있는 양이 절반(100개→50개)으로 줄었을 뿐더러 클레이와의 교환 비율을 감안한 가치가 최근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일일임무 수행으로 하루에 벌 수 있는 돈(혹은 무돌토큰)이 최근에는 원화 1000원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게임 속에서 만들어진 재화가 현금화돼 밖으로 흘러나오기만 할뿐 내부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속 세계에서 가치가 있어야 게임 밖의 세계에서도 그 가치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P2E라는 새로운 개념 자체에 대한 열광이 식었을 때 어떤 일이 펼쳐질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일 수 있습니다.


게임사들 스스로 결국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과도 통하는 부분입니다.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올해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이라는 용어가 대세가 되서 사용하고 있지만 저에게 다시 용어를 정하라고 한다면 ‘플레이 앤 언(Play and Ear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결국 게임이 주는 ‘재미’라는 중요한 전제가 성립해야만 ‘P2E’도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 ‘메타버스’가 예고하는 가상세계 확장과도 연결



그저 게임 속 이야기라면 이런 논란의 사회적 의미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 한해 산업계 전반을 뜨겁게 달군 메타버스, NTF, 가상자산 같은 단어들은 모두 가상세계의 확장이라는 미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게이머들이 자신의 게임 속 캐릭터를 키워가면서 미션을 해결해나가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MMORPG라는 게임은 메타버스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구축된 ‘나이키랜드’. 나이키 제공



메타버스 안에서 나를 대체하는 디지털휴먼(가상인간)으로 생활하면서 가상자산으로 NFT 기반의 유명 브랜드 패션 소품을 구매하고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보는 모습.


머지않은 미래에 일상화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게임산업 자체가 P2E를 통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더불어 가상세계와 현실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됐다는 점까지.


P2E 논란을 계기로 계속 고민해볼 대목이 적지 않은 듯 합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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